[내외신문/유향연 기자] 인천 중구 개항장 일대에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듯한 풍경이 남아 있다. 현대식 건물과 관광객들 사이로 붉은 벽돌과 첨탑이 만들어내는 이국적 풍경은 인천이라는 도시가 걸어온 근대사의 흔적을 조용히 증언한다.
그 중심에는 인천을 대표하는 종교문화유산인 답동성당과 성공회 내동교회가 자리하고 있다. 이 두 건축물은 단순한 종교시설을 넘어 개항기 조선의 변화와 근대 문명의 유입, 그리고 시민들의 삶과 역사를 함께 품어온 문화유산으로 평가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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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답동성당은 인천을 대표하는 가톨릭 성당이자 한국 천주교 근대건축의 상징 (사진=내외신문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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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동성당은 인천을 대표하는 가톨릭 성당이자 한국 천주교 근대건축의 상징 가운데 하나다. 1897년 건립된 답동성당은 프랑스 선교사들이 중심이 되어 세운 건축물로, 인천이 개항 이후 국제도시로 성장하던 시기의 분위기를 그대로 담고 있다.
붉은 벽돌을 기본으로 한 외관과 둥근 돔 형태의 지붕, 스테인드글라스 창문은 서양 종교 건축의 특징을 보여주면서도 한국 근대 건축사의 중요한 흐름을 형성했다.
특히 답동성당은 단순히 오래된 건물이 아니라 시대의 굴곡을 견뎌낸 역사적 공간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일제강점기에는 민족과 신앙을 지키기 위한 중심지 역할을 했으며, 한국전쟁 당시에는 포격 피해를 입기도 했다.
이후 산업화와 민주화 시기를 지나며 시민들의 기도와 위로의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현재는 국가 사적으로 지정돼 있으며, 인천 개항장의 대표 문화유산으로 수많은 관광객과 시민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성당 내부 역시 높은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높은 천장 구조와 제단, 스테인드글라스에서 비치는 빛은 근대 서양 건축미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언덕 위에 세워진 답동성당의 위치는 개항장 일대를 내려다보는 상징적 의미를 지니며, 인천의 성장과 변화를 지켜본 ‘도시의 등대’ 같은 존재로 평가된다.
성공회 내동교회 역시 인천 개항기의 역사와 깊이 연결된 문화유산이다. 대한성공회가 인천 지역 선교를 위해 세운 내동교회는 화려함보다는 절제된 아름다움을 강조하는 성공회 특유의 건축 양식을 보여준다.
외관은 비교적 단정하지만, 오래된 벽돌과 목조 구조, 고풍스러운 내부 공간은 개항기 인천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내동교회가 위치한 지역은 과거 외국 선교사와 상인, 외교관들이 활동하던 장소와 인접해 있어 근대 인천의 생활문화와 도시구조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교회 주변 골목에는 오래된 계단과 근대식 건축물이 남아 있어 마치 하나의 야외 역사박물관 같은 풍경을 형성하고 있다.
성공회 내동교회는 단순한 종교시설을 넘어 교육과 의료, 복지 활동의 중심 역할도 수행해왔다.
개항기 당시 선교사들은 학교와 병원 운영 등을 통해 근대 교육과 서양 의술을 전파했으며, 이러한 활동은 인천 지역 사회 변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는 단순히 종교 전파에 그치지 않고 근대 시민사회의 형성과 지역 공동체 발전에 기여한 사례로 평가된다.
무엇보다 답동성당과 성공회 내동교회가 지닌 가장 큰 의미는 ‘공존의 역사’에 있다. 서로 다른 교단이지만 두 공간 모두 개항 이후 인천이라는 도시가 겪어온 변화와 아픔, 성장의 시간을 함께 견뎌왔다. 첨탑과 종소리는 단순한 종교적 상징이 아니라, 외세의 침략과 전쟁, 산업화와 민주화의 시간을 지나며 시민들의 삶과 함께 울려 퍼진 도시의 기억이었다.
최근 인천시는 개항장 문화지구 재생사업을 통해 이 일대 문화유산 보존에 힘을 쏟고 있다. 답동성당과 내동교회 주변 환경 정비, 역사문화거리 조성, 관광 콘텐츠 개발 등이 함께 진행되면서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도시 공간으로 재탄생하고 있다. 특히 젊은 세대와 관광객들 사이에서는 ‘사진 명소’를 넘어 역사와 건축, 문화가 어우러진 체험 공간으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문화유산 보존의 핵심은 단순히 건물을 유지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시대의 기억과 공동체의 이야기를 함께 이어가는 데 있다고 강조한다. 답동성당과 성공회 내동교회는 바로 그런 의미에서 인천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대표 문화유산으로 평가된다.
붉은 벽돌 사이에 남겨진 시간의 흔적과 오래된 종소리는 오늘도 인천 개항장의 거리를 울리고 있다. 빠르게 변화하는 도시 속에서도 두 성전은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며 인천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조용히 이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