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년의 함성을 다시 대구에서”… 넥타이부대 주역 최재호가 말한 김부겸과 대구의 미래“군부독재에 맞섰던 87년의 정신, 이제 김부겸과 함께 대구 경제를 살리는 새로운 도전으로 이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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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7년 이한열 열사 운구행렬 (내외신문 DB) |
“그해 6월, 거리에서 존재했던 김부겸과 최재호… 민주주의를 외치던 청춘들”
1987년 6월의 서울은 거대한 분노와 희망이 뒤섞인 도시였다. 명동과 종로, 시청 앞 거리에는 최루탄 연기가 자욱했고, “호헌철폐”, “독재타도”를 외치는 시민들의 함성이 쉼 없이 울려 퍼졌다.
당시 대한민국은 군부독재 체제 아래 놓여 있었다. 대통령 직선제를 요구하는 시민들의 목소리는 철저히 억눌렸고, 민주주의는 멀고도 험한 길처럼 보였다.
그해 6월, 김부겸은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집행위원으로 거리 한복판에 서 있었다. 그는 독재정권에 맞서 민주주의와 직선제를 요구하며 시민들과 함께 행진했다.
그리고 같은 시간 또 다른 한편에서는 최재호를 비롯한 사무금융노련의 넥타이부대가 거리의 학생들과 시민들을 응원하며 시대의 벽을 흔들고 있었다.
처음에는 창문 위에서 박수를 보내던 평범한 직장인들이었다.
학생 시위대를 향해 화장지와 음료수를 내려보내며 응원의 뜻을 전하던 시민들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자 그들은 끝내 거리로 내려왔다. 양복에 넥타이를 맨 채 “독재타도”를 외치며 시민항쟁의 한복판에 섰다. 사람들은 그들을 ‘넥타이부대’라고 불렀다.
당시 사무금융노련은 단순한 노동조직이 아니었다. 침묵을 강요받던 평범한 시민들이 스스로 민주주의의 주체가 되어 나서는 통로였다.
특히 한국노총 지도부가 전두환 정권의 4·13 호헌조치를 지지하자, 사무금융 계열 노조 간부들은 “그것은 노동자의 뜻이 아니다”라는 반박 성명을 공개적으로 발표하며 정권에 정면으로 맞섰다.
직장을 잃을 수도 있고 감시와 탄압을 받을 수도 있었던 시대였다. 그러나 그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최재호는 당시를 떠올리며 “1987년은 평범한 시민들이 역사의 주인공이 된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다들 두려웠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시민들이 더는 참을 수 없다는 마음으로 거리로 내려왔습니다. 그 힘이 민주주의를 움직였습니다.”
1987년의 함성은 그렇게 대한민국 역사를 바꾸기 시작했다.
![]() ▲ (사무금융노조가 2017년 6월10일 명동성당 앞에서 ‘넥타이부대’ 재현 행사를 진행 중이다. ⓒ사무금융노조) |
“산업화의 심장이었던 대구… 40년 뒤 침체의 그림자에 갇히다”
1987년의 대구는 대한민국 산업화를 상징하는 도시였다.
섬유산업과 제조업이 도시 경제를 떠받쳤고, 수많은 공장이 쉼 없이 돌아갔다. 전국 각지의 청년들이 일자리를 찾아 대구로 몰려들었다. 경제 성장의 엔진이자 보수 정치의 중심이라는 상징성을 동시에 가진 도시였다.
당시 대구는 활력이 넘쳤다. 거리는 사람들로 붐볐고 기업들은 성장하고 있었다. 산업화 시대의 대구는 “하면 된다”는 시대 정신을 상징하는 도시 가운데 하나였다.
하지만 40여 년이 흐른 지금, 대구의 풍경은 크게 달라졌다.
청년층은 수도권으로 떠나고 있다. 지역 산업은 활력을 잃어가고 있으며, 과거 도시를 떠받쳤던 섬유·제조업 기반은 급격히 쇠퇴했다. 인구 감소와 고령화는 도시 전체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다. 과거에는 전국에서 사람이 몰려오던 도시가 이제는 “떠나는 도시”라는 위기의 진단 앞에 놓이게 된 것이다.
실제로 대구는 최근 수년간 지속적인 청년 인구 유출과 경제성장 둔화를 겪고 있다. 지역 내 양질의 일자리가 줄어들면서 청년들은 서울과 수도권으로 이동하고 있고, 지역 상권 역시 침체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최재호는 지금의 대구를 두고 “또 다른 형태의 절박한 시대”라고 진단했다.
“1987년 시민들이 민주주의를 위해 거리로 뛰쳐나왔다면, 지금은 무너지는 지역경제와 사라지는 미래를 살리기 위해 다시 깨어나야 하는 상황입니다.”
그는 지금의 대구가 단순히 경제만 침체된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오랫동안 이어진 정치적 고착과 변화에 대한 두려움이 도시 전체의 활력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 산업화 시대의 성공 경험이 오히려 대구를 멈춰 세운 측면도 있습니다. 지금은 변화가 필요한데, 너무 오랫동안 익숙한 방식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최재호는 지금의 대구가 생존의 기로에 서 있다고 강조했다.
![]() ▲ 이한열 열사 어머니와 김부겸 전 행안부 장관 (사진=행안부 홈페이지) |
지금 대구에는 87년 같은 각성이 필요하다’”
최재호는 지금의 대구에 가장 필요한 것은 1987년 시민들이 보여줬던 ‘각성의 힘’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87년 시민들은 ‘이대로는 안 된다’는 절박함으로 거리로 나왔다”며 “지금 대구도 다르지 않다. 무너지는 지역경제와 사라지는 일자리, 청년 유출 앞에서 시민들이 다시 도시의 미래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1987년 민주화운동의 본질이 평범한 시민들의 참여였다고 설명했다. 학생들만의 운동이 아니라 직장인과 노동자, 자영업자와 시민들이 함께 움직였기에 거대한 민주화의 흐름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87년에도 처음에는 아무도 세상이 바뀔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시민들의 작은 움직임이 결국 역사를 바꿨습니다.”
그는 지금의 대구에서도 비슷한 변화의 흐름이 시작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지금 대구 시민들도 압니다. 과거의 정치 구호만으로는 도시를 살릴 수 없다는 걸 체감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경제와 미래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지금의 대구에 필요한 것은 특정 진영의 승리가 아니라 도시를 다시 살리겠다는 공동의 의지라고 강조했다.
“청년이 떠나는 도시에는 미래가 없습니다. 기업이 줄어드는 도시에는 희망도 줄어듭니다. 이제는 정치 이전에 대구의 생존을 고민해야 합니다.”
그는 민주주의 역시 시민들의 삶 위에서 완성된다고 말했다.
“1987년의 민주화도 시민들의 먹고사는 현실과 연결돼 있었습니다. 지금의 대구 역시 시민들의 삶을 바꾸지 못하면 변화는 의미가 없습니다.”.
![]() ▲ 사진=김부겸 민주당 대구시장 후보 페이스북 |
1987년 신념으로 대구를 바꿔놓을 적임자가 김부겸이다.
최재호는 1987년 6월항쟁의 정신이 지금 다시 대구에서 살아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군부독재에 맞서 거리로 나왔던 시민들의 용기와 신념이 2026년에는 침체된 대구 경제와 무너지는 지역의 미래를 바꾸는 힘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특히 김부겸 전 국무총리의 정치적 도전 속에서 87년 민주화 세대의 절박함과 책임감을 본다고 말했다.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했던 보수의 심장 대구에서 끝까지 변화를 외쳐온 김부겸이야말로 대구를 다시 일으켜 세울 적임자라는 평가다.
최재호는 “1987년에는 민주주의를 위해 싸웠다면, 2026년에는 대구의 생존과 미래를 위해 싸워야 한다”며 “김부겸은 그 신념으로 대구를 다시 바꾸겠다는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