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깟 커피가 뭐라고”… 광화문 뒤덮은 분노, 스타벅스 불매운동 들불처럼 번지다박종철기념사업회·5공 피해자단체 “탱크는 이벤트가 아니라 국가폭력의 기억”… 정용진 회장 퇴진 촉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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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타벅스는 탱크 데이를 젊은 실무자의 우발적 사고처럼 설명하고 있지만, 이는 40년 전 전두환 군사정권의 책임 회피 논리와 닮아 있다”고 주장(사진=박종철 기념사업회 제공) |
김학규 박종철기념사업회 이사는 스타벅스의 해명 태도를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스타벅스는 탱크 데이를 젊은 실무자의 우발적 사고처럼 설명하고 있지만, 이는 40년 전 전두환 군사정권의 책임 회피 논리와 닮아 있다”고 주장했다.
단순한 운영 실수로 축소하려는 기업 대응이 오히려 시민사회 분노를 키웠다는 지적이었다. 그는 이어 “사태의 근본 책임은 정용진 회장에게 있다”며 “즉각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용만 5·18민주화운동서울기념사업위원회 이사의 발언도 거셌다. 그는 “정 회장은 사과문만 발표했을 뿐 피해자들 앞에 직접 서지 않았다”며 “진정성 없는 사과로는 이 문제를 덮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는 최근 대기업 위기관리 방식에 대한 사회적 피로감과도 맞닿아 있다. 총수는 뒤로 숨고 실무진이나 홍보팀이 앞에 서는 구조가 반복되면서 시민사회는 점점 더 ‘책임의 실체’를 요구하고 있다.
기자회견 말미에는 퍼포먼스도 이어졌다. 참가자들은 악어가 눈물을 흘리는 사진 위에 신세계 계열사 로고와 ‘불매’ 스티커를 붙였다. ‘악어의 눈물’은 형식적 사과와 보여주기식 반성을 상징했다.
퍼포먼스 자체는 짧았지만 메시지는 선명했다. 시민단체는 이번 사태를 단발성 논란으로 끝내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셈이다.
실제 온라인에서는 스타벅스 불매 움직임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SNS와 커뮤니티에는 “역사 의식이 없는 기업”, “광고가 아니라 기억에 대한 폭력”, “이건 마케팅이 아니라 조롱”이라는 반응이 이어졌다. 특히 2030 세대 일부는 “정치적 입장이 아니라 최소한의 역사 감수성 문제”라고 지적했다.
흥미로운 지점은 이번 논란이 특정 정치 진영에 국한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군사독재와 민주주의 문제를 단순한 이념 갈등이 아니라 인간 존엄의 문제로 받아들이는 분위기가 강해지고 있다.
스타벅스 불매운동은 단순한 소비 거부 운동 이상의 양상을 띠고 있다.
과거 불매운동이 제품 가격이나 서비스 품질 문제에 집중됐다면, 최근의 불매운동은 기업의 사회적 가치와 역사 인식, 노동 문제, 정치적 태도까지 포괄한다.
소비가 일종의 정치적 표현 수단이 된 시대다. 커피 한 잔에도 윤리와 가치 판단이 결합되는 구조다.
특히 정용진 회장을 둘러싼 논란은 이전부터 반복돼 왔다. SNS 활동, 정치적 메시지 논란, 기업 이미지 관리 실패 등이 누적된 상태에서 이번 사건이 폭발한 것이다.
시민단체가 단순히 스타벅스 코리아 대표가 아니라 정용진 회장 본인의 퇴진을 요구한 것도 이런 맥락과 무관하지 않다. 기업 브랜드와 총수 개인 이미지가 지나치게 결합된 구조 속에서 책임 역시 총수에게 집중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재계 내부에서도 이번 사안을 예의주시하는 분위기다. 단순한 해프닝으로 넘기기에는 사회적 반발 강도가 예상보다 크기 때문이다.
특히 MZ세대 소비자들이 브랜드 윤리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점은 기업들에게 매우 부담스러운 요소다.
과거에는 기업이 논란 발생 후 사과문 몇 줄로 사태를 수습할 수 있었다면, 지금은 소비자들이 기업의 세계관 자체를 검증하려 든다. 브랜드는 더 이상 상품만 파는 조직이 아니라 가치와 태도를 판매하는 존재가 됐다.
이번 논란은 한국 사회의 기억 정치와도 깊게 연결된다. 군사독재 시절 피해자들에게 민주주의는 교과서 속 단어가 아니다. 고문과 체포, 감시와 죽음의 경험 위에 세워진 현실이다.
박종철 열사의 이름이 지금도 살아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책상을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국가폭력의 거짓말은 아직도 한국 사회 집단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시민단체가 스타벅스 해명을 전두환 정권식 논리와 비교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 장면은 한국 사회가 여전히 과거와 싸우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경제 규모는 세계 상위권에 올라섰고 소비문화는 화려해졌지만, 민주주의의 기억은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커피 브랜드 앞에서 5·18과 박종철이 다시 소환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어떤 이들에게는 단순 이벤트였을지 몰라도, 다른 누군가에게는 삶 전체를 뒤흔든 폭력의 기억이었다.
기업이 놓친 것은 바로 그 감각이었다. 마케팅은 숫자와 클릭률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특히 한국 현대사처럼 상처가 현재형인 사회에서는 역사 감수성이 곧 기업 리스크 관리 능력이 된다. 소비자들은 이제 제품보다 태도를 먼저 본다. “어떤 브랜드인가”보다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망각하는가”를 묻는다.
광화문 스타벅스 앞 기자회견은 규모만 보면 거대한 시위는 아니었다. 하지만 상징성은 결코 작지 않았다.
국가폭력 피해자들이 글로벌 커피 브랜드 앞에서 민주주의와 기억을 이야기하는 풍경은 한국 사회의 현재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자본과 소비의 공간 한복판에서 과거의 희생자들이 다시 역사를 호명한 것이다.
그리고 그 질문은 스타벅스만을 향하지 않는다. 한국 사회 전체를 향한다. 우리는 무엇을 소비하고, 무엇을 잊고 있으며, 어떤 기억 위에서 오늘의 일상을 누리고 있는가. 광화문 한복판에서 시작된 불매운동은 단순한 커피 문제가 아니라 민주주의 기억을 둘러싼 또 하나의 사회적 전선이 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