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FTA 10년을 돌아본다 ② -사라진 공장, 돌아오지 않는 기술-공장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공급망과 함께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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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태수 기자 |
[내외신문/전태수 기자] 지난 10년 동안 한국의 제조업은 ‘이동’이라는 단어로 설명되어 왔다. 생산기지가 해외로 이전됐다는 표현은 익숙하지만, 지금 벌어지고 있는 현상은 단순한 이동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공장이 옮겨간 것이 아니라, 산업을 구성하던 핵심 구조 자체가 빠져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동대문과 남대문 일대는 단순한 의류 생산지가 아니었다. 디자인, 원단, 재단, 봉제, 유통이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지는 고밀도 산업 생태계였다. 주문이 들어오면 하루 단위로 샘플이 나오고, 며칠 안에 생산과 납품이 가능한 구조였다. 이 속도와 유연성은 한국 소공인 산업의 가장 큰 경쟁력이었다.
그러나 현재 이 구조는 사실상 해체 단계에 접어들었다. 주문은 줄었고, 생산은 분산됐으며, 납기는 길어졌다. 무엇보다 중요한 변화는 ‘결정의 중심’이 국내에서 사라졌다는 점이다.
이제 생산 여부를 결정하는 주체는 국내 공장이 아니라 해외 공급망이다. 원단은 중국에서 조달되고, 생산도 중국이나 동남아에서 이루어지며, 완제품이 다시 국내로 들어오는 구조가 일반화됐다. 국내는 디자인과 유통 일부만 남은 채, 생산의 핵심 고리는 끊어진 상태다.
이 변화는 가격 경쟁 때문만은 아니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공급망 전체가 이동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원단 시장, 부자재 시장, 생산 공장, 물류가 한 도시 안에서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었다. 지금은 이 모든 요소가 국경 밖에서 하나의 패키지로 작동한다. 생산 단가뿐 아니라 납기, 물량 대응, 품질 균일성까지 해외 공급망이 더 안정적인 구조를 갖추게 된 것이다.
특히 디지털 플랫폼의 등장은 이 흐름을 더욱 가속화했다. 해외 생산업체와 바로 연결되는 온라인 플랫폼이 확산되면서, 중간 유통과 지역 기반 생산 네트워크의 역할은 빠르게 축소됐다. 과거에는 동대문을 거쳐야 했던 주문이 이제는 클릭 몇 번으로 해외 공장으로 직접 연결된다.
문제는 이러한 구조 변화가 단순한 산업 재편을 넘어 ‘복원 불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이다.
생산 설비는 투자로 다시 만들 수 있지만, 숙련된 기술과 현장 경험은 단기간에 복구되지 않는다. 봉제 기술자, 패턴사, 금속 가공 장인 등은 오랜 시간 축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형성되는 인력이다. 이들이 산업을 떠나거나 고령화로 은퇴하면, 그 공백은 쉽게 메워지지 않는다.
이미 현장에서는 이러한 단절이 현실화되고 있다. 소규모 공장 상당수가 폐업하거나 업종을 전환했고, 남아 있는 사업장 역시 인력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젊은 세대의 유입은 거의 끊긴 상태이며, 기술 전수 역시 사실상 중단된 상황이다.
이러한 흐름은 특정 업종에 국한되지 않는다. 성수동 수제화 산업, 을지로 인쇄·금속 가공 산업, 구로·금천 일대의 소규모 제조 단지 등에서도 유사한 변화가 감지된다. 산업별 차이는 있지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은 생산 기반의 약화와 기술 단절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 변화가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대기업 수출 실적은 증가하고, 플랫폼 기반 유통은 성장하고 있지만, 그 이면에서 국내 생산 기반은 점진적으로 축소되고 있다. 겉으로는 성장처럼 보이지만, 내부에서는 구조가 비어가는 형태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상황을 두고 ‘제조의 탈중심화’를 넘어 ‘제조의 외부화’ 단계로 진입했다고 분석한다. 생산이 국경 밖으로 나가면서, 국내 산업은 설계와 소비 중심 구조로 재편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구조가 고착될 경우, 한국 경제는 장기적으로 두 가지 위험에 직면할 수 있다. 하나는 공급망 리스크다. 외부 의존도가 높아질수록 글로벌 충격에 취약해진다. 다른 하나는 산업 경쟁력 약화다. 생산 기반이 사라지면 기술 혁신 역시 제한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요한 질문이 제기된다. 과연 한국의 제조 기반은 다시 복원될 수 있는가.
단순한 회귀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공장을 다시 세우고 인력을 채우는 접근은 비용과 시간 측면에서 한계를 갖는다. 따라서 새로운 방식의 산업 재구성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와 관련해 주목되는 개념이 ‘분산형 생산’과 ‘지능형 제조’다. 대규모 공장 중심이 아니라, 소규모 생산 거점을 네트워크로 연결하고, 자동화와 데이터 기반으로 효율을 높이는 구조다. 이는 기존 소공인 산업과도 접점이 있는 방식이다.
다만 이 구조가 실제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기술 도입, 인력 재편, 시장 연결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단일 정책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점에서, 보다 정교한 접근이 요구된다.
한편 일부에서는 이러한 위기를 새로운 기회로 해석하기도 한다. 글로벌 공급망이 재편되는 과정에서, 기술 기반 소규모 생산 모델이 다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자동화 기술과 디지털 설계 시스템이 발전하면서, 과거보다 적은 인력으로도 고부가가치 생산이 가능해지고 있다. 여기에 문화콘텐츠와 결합할 경우, 단순 제조를 넘어 브랜드 중심 산업으로 확장할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