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외신문/전태수 기자] 탈퇴 이후에도 메시지가 도착하는 스마트폰 화면은 단순한 알림이 아니라, 플랫폼 신뢰의 균열을 비추는 작은 균열선이다.
국내 대표 이커머스 기업인 쿠팡이 회원 탈퇴 이용자에게까지 문자 메시지를 발송한 사실이 확인되면서 개인정보 관리의 적정성과 법적 책임을 둘러싼 논란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디지털 플랫폼 시대, 데이터는 곧 권력이다. 그리고 그 권력의 사용 방식이 이번 사안을 통해 다시 시험대에 올랐다.
이번 논란은 지난해 12월 계정을 삭제한 이용자에게 ‘미사용 구매이용권 사용 종료일 안내’라는 문자 메시지가 발송되면서 촉발됐다. 해당 메시지에는 이용권 유효기간과 함께 링크 클릭을 유도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문제는 이미 탈퇴를 완료한 이용자에게까지 이러한 메시지가 도달했다는 점이다. 이는 단순한 고객 안내를 넘어, 개인정보가 완전히 삭제되지 않은 것 아니냐는 의구심으로 이어졌다.
또 다른 사례에서도 유사한 흐름이 확인됐다. 탈퇴 이후에도 ‘개인정보 유출 사고에 대한 보상’ 명목의 구매 이용권 안내 문자가 반복적으로 발송됐다는 것이다. 이용자 입장에서는 이를 ‘정보 제공’이 아닌 ‘마케팅’으로 인식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링크 클릭을 유도하는 방식은 광고성 메시지와 구분이 모호해 논란을 더욱 키우고 있다.
현행 개인정보 보호 체계에서 핵심 원칙은 명확하다. 이용자가 회원 탈퇴를 요청할 경우, 사업자는 관련 개인정보를 지체 없이 파기해야 한다. 이는 단순한 권고가 아니라 법적 의무다. 실제로 기업의 개인정보 처리방침에서도 마케팅 목적의 정보는 탈퇴 즉시 삭제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기준에 비춰볼 때, 이번 사례는 내부 정책과 실제 운영 간 괴리가 존재할 가능성을 시사한다.
다만 기업 입장에서는 일정 부분 반론의 여지도 존재한다. 전자상거래 등에서 발생한 거래 기록이나 소비자 보호를 위한 일부 정보는 관련 법령에 따라 일정 기간 보관될 수 있다. 또한 구매 이용권과 같은 혜택 안내가 ‘계약 이행에 필요한 정보 제공’으로 해석될 여지도 있다. 이 경우 해당 메시지는 광고가 아닌 필수 고지로 분류될 수 있다.
문제의 핵심은 바로 이 지점이다. 해당 메시지가 ‘광고’인가, 아니면 ‘계약 이행’인가. 이 구분에 따라 법 위반 여부가 갈린다. 하지만 법적 판단과 별개로, 소비자 체감은 이미 결론을 내린 상태에 가깝다. 탈퇴 이후에도 메시지가 도착했다는 사실 자체가 불신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도 유사한 문제의식을 제기한다. 소비자가 탈퇴를 선택했다는 것은 해당 서비스와의 관계를 종료하겠다는 명확한 의사 표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이 메시지를 발송하는 것은, 설령 선의의 목적이라 하더라도 적절하지 않다는 평가다. 플랫폼 기업이 고객과의 관계를 ‘데이터 기반 지속 접촉’으로 이해하는 순간, 신뢰는 쉽게 훼손될 수 있다.
현재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해당 사안에 대해 조사에 착수한 상태다. 조사 범위에는 탈퇴자 정보의 보관 여부, 메시지 발송 과정에서의 데이터 활용 방식, 내부 관리 체계 등이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단순히 한 기업의 문제가 아니라, 국내 플랫폼 산업 전반의 개인정보 처리 관행을 점검하는 계기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이번 사건은 디지털 경제의 구조적 긴장을 드러낸다. 기업은 데이터를 통해 서비스를 개선하고 수익을 창출하려 한다. 반면 이용자는 자신의 정보가 통제되고 안전하게 관리되기를 원한다. 이 두 축이 균형을 이루지 못할 때, 시장은 신뢰를 잃는다.
특히 플랫폼 기업의 경우, 이용자 규모가 클수록 개인정보 관리의 책임 역시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 작은 오류 하나가 수백만 명의 불안으로 확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사례 역시 단일 메시지에서 시작됐지만, 그 파장은 산업 전체로 번지고 있다.
결국 관건은 투명성과 기준의 문제다. 어떤 정보가 왜 보관되는지, 어떤 기준으로 메시지가 발송되는지에 대한 명확한 설명이 없다면, 이용자는 기업을 신뢰하기 어렵다. 기술이 정교해질수록 설명 책임 역시 정교해져야 한다.
플랫폼은 편리함을 제공하는 대신, 보이지 않는 계약을 맺는다. 그 계약의 핵심은 ‘신뢰’다. 그리고 이번 사건은 그 계약이 얼마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데이터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신뢰는 숫자보다 빠르게 무너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