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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돈균 작가, "유시민 관종에서 현자로 갈라지는 길” -유시민 비판을 넘어 드러난 ‘지식인의 한계’ 논쟁

-통제의 환상과 오만, 왜 현대 정치 담론을 흔드는가
-공화주의 시대, 권력과 책임을 다시 묻다
-스토아 철학과 손자병법이 말하는 시대 읽기의 조건
-교육과 정치, ‘평생 학습 사회’로의 전환 요구 

전태수 기자 | 기사입력 2026/03/27 [11:09]

함돈균 작가, "유시민 관종에서 현자로 갈라지는 길” -유시민 비판을 넘어 드러난 ‘지식인의 한계’ 논쟁

-통제의 환상과 오만, 왜 현대 정치 담론을 흔드는가
-공화주의 시대, 권력과 책임을 다시 묻다
-스토아 철학과 손자병법이 말하는 시대 읽기의 조건
-교육과 정치, ‘평생 학습 사회’로의 전환 요구 

전태수 기자 | 입력 : 2026/03/27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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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함돈균 작가(함돈균 뉴스쿨 화면 캡쳐)    

 

[내외신문/전태수 기자] 함돈균 작가는 현대 정치 담론의 한복판에서 한 지식인을 둘러싼 논쟁이 단순한 인물 비판을 넘어 철학적 질문으로 확장되고 있다고 말했다. 

‘왜 어떤 지식인은 현자가 되지 못하는가’라는 물음이다고 한다. 

 

최근 함돈균 작가가 제기한 문제의식은 유시민 작가 개인을 겨냥한 비판을 넘어, 지식인과 권력, 그리고 시대 인식의 관계를 다시 묻는 계기로 작용하고 있다.

 

이 논쟁의 핵심에는 고대 그리스 비극에서 비롯된 개념, ‘휘브리스(Hybris)’가 자리 잡고 있다. 인간이 자신의 한계를 망각하고 과도한 확신과 오만에 빠질 때 발생하는 이 개념은 오늘날 정치와 미디어 환경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분석 틀로 작동하고 있다.

 

이 논쟁에서 제기된 핵심 문제는 ‘통제할 수 없는 것을 통제하려는 태도’다. 이는 단순한 성격적 결함이 아니라, 정치적 판단과 시대 인식 전체를 왜곡시키는 근본적 오류로 지적된다.

 

 이러한 태도는 결국 자기 반성의 부재로 이어지고, 타인에 대한 공격과 낙인찍기로 확장된다. 이 지점에서 ‘휘브리스’는 단순한 철학 용어가 아니라, 현대 정치 커뮤니케이션의 병리 현상을 설명하는 개념으로 재해석된다.

 

특히 이번 논쟁은 한국 정치 담론의 구조적 변화와도 맞닿아 있다. 함돈균 작가는 이재명 대통령 시대를 ‘공화주의 정치의 시작’으로 규정하며, 기존의 도덕 중심 정치와 차별화되는 흐름을 강조한다.

 

공화주의는 개인의 도덕성이나 명분보다 제도, 결과, 그리고 공공의 이익을 중심에 둔다. 이 관점에서 보면, 특정 인물의 발언이나 태도를 도덕적 기준으로만 평가하는 기존 방식은 시대와 맞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대신 중요한 것은 권력이 어떻게 분산되고, 어떻게 통제되며, 어떤 결과를 만들어내느냐라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기존 정치 논객들이 과거의 프레임에 머물러 있을 경우, 현실과 괴리된 해석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와 함께 제시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축은 고전 철학과 전략 사상의 재해석이다. 함돈균 작가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을 통해 인간이 통제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분하는 지혜를 강조한다.

 

이는 스토아 철학의 핵심으로, 외부 환경이 아닌 자신의 판단과 태도에 집중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여기에 더해 손자병법의 ‘천시, 지리, 인화’ 개념이 현대 정치 분석의 도구로 제시된다. 시대의 흐름을 읽는 능력, 변화하는 구조를 이해하는 통찰, 그리고 사람들과의 관계를 조율하는 역량이 결합될 때 비로소 현실을 제대로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기준에서 볼 때, 특정 논객들이 반복적으로 현실 판단에 실패하는 이유는 단순한 정보 부족이 아니라, 근본적인 인식 구조의 한계라는 분석이 가능해진다.

 

논쟁은 교육 문제로도 확장된다. 함돈균 작가는 현재의 교육 시스템이 시대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평생 학습 사회’로의 전환을 주장한다. 대학 중심의 일회성 교육 구조는 이미 한계를 드러냈고, 이제는 지속적인 학습과 사고의 확장이 가능한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는 ‘뉴스쿨’이라는 개념을 통해 문학과 철학을 기반으로 한 지속적 학습 공동체를 제안한다. 이는 단순한 지식 전달을 넘어, 개인이 스스로 사고하고 판단하는 능력을 기르는 데 초점을 맞춘다. 결국 정치적 통찰력 역시 교육에서 비롯되며, 제대로 된 교육 없이 건강한 공화주의 사회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문제의식으로 이어진다.

 

이번 논쟁은 특정 인물에 대한 호불호를 넘어, 한국 사회의 지식인 구조와 정치 담론의 방향을 다시 점검하게 만든다.

 

‘휘브리스’라는 고대 개념이 다시 호출된 이유는, 인간의 오만과 착각이 시대를 넘어 반복되기 때문이다. 동시에 공화주의, 스토아 철학, 손자병법과 같은 다양한 사유 체계가 다시 언급되는 것은, 복잡한 시대를 해석하기 위한 새로운 기준이 필요하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누가 옳고 그르냐의 문제가 아니라, 누가 더 정확하게 현실을 이해하고, 더 책임 있게 권력과 언어를 사용하는가라는 질문이다.

 

이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 순간, 어떤 지식인도 ‘현자’가 아닌 ‘관종’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는 경고가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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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감독원, 공수처 출입기자
사단법인 환경과미래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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