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외신문/유경남 기자] 물은 지구에서 가장 흔한 물질이지만 동시에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물질 중 하나다. 우리가 매일 접하는 액체이면서도 일반적인 물리 법칙을 거스르는 독특한 성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현상이 바로 물이 섭씨 4도에서 가장 무거워진다는 사실이다. 대부분의 액체는 온도가 낮아질수록 분자들이 가까이 모이면서 밀도가 증가하고 점점 무거워지지만, 물은 4도까지는 무거워지다가 그 이하로 내려가면 오히려 가벼워진다.
이 현상은 단순한 물리적 특이성이 아니라 지구 생태계를 유지하는 핵심 조건으로 작용한다. 만약 물이 일반 액체처럼 계속 무거워졌다면 겨울철 호수나 강은 바닥부터 얼어붙어 생명체가 살아남기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표면만 얼고 내부는 액체 상태로 유지되며 생태계가 유지된다. 이 작은 물리적 차이가 생명의 존속을 결정짓는 거대한 조건이 된다.
이 오래된 질문에 대해 국내 연구진이 10년간의 집요한 연구 끝에 결정적인 해답을 제시했다. 포항공과대학교 김경환 교수 연구팀은 스웨덴 스톡홀름대학교 연구진과 공동으로 물의 ‘액체-액체 임계점’을 세계 최초로 관측하는 데 성공했으며, 이 연구는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됐다.
이번 연구의 핵심은 물이 하나의 균일한 액체가 아니라 두 가지 서로 다른 구조의 액체가 섞인 상태라는 점을 실험적으로 입증했다는 데 있다. 연구에 따르면 물은 고밀도 구조와 저밀도 구조가 동시에 존재하며, 이 두 상태의 비율 변화가 물의 밀도 변화를 결정짓는다.
고밀도 물은 분자들이 촘촘하게 배열된 상태이며 일반적인 액체의 모습과 가깝다. 반면 저밀도 물은 얼음처럼 내부에 공간이 형성된 구조를 가지며 상대적으로 가벼운 상태다. 이 두 구조는 분리된 것이 아니라 하나의 물 속에서 끊임없이 섞이고 교차하며 존재한다.
온도가 높은 상태에서는 고밀도 물의 비율이 높아 일반 액체처럼 밀도가 증가한다. 그러나 온도가 내려갈수록 저밀도 구조가 점점 늘어나기 시작하고, 4도 부근에서 그 변화가 급격히 일어나면서 밀도가 최고점에 도달한 뒤 다시 감소하게 된다.
이 과정을 일상적인 비유로 보면 이해가 쉽다.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공간에서 따뜻할 때는 서로 가까이 모여 밀도가 높지만, 추워지면 간격이 벌어지며 공간이 생기는 것과 유사하다. 물 분자도 온도 변화에 따라 서로의 거리를 조절하며 구조를 바꾸는 셈이다.
이러한 이론은 약 30년 전부터 제기되어 왔지만 실험적으로 증명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과제로 여겨졌다. 두 액체 상태의 경계가 존재하는 ‘임계점’이 영하 40도에서 70도 사이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이 구간에서는 물이 너무 빠르게 얼어버려 관측 자체가 불가능한 영역으로 알려져 있었다.
김경환 교수팀은 이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실험 방식을 개발했다. 진공 상태에서 미세한 물방울을 분사해 급속 냉각시키는 방식과, 얼음을 레이저로 순간 가열해 극저온의 액체 상태를 만드는 방식을 결합했다.
이 과정에서 생성되는 물은 100만분의 1초 동안만 존재하고 질량 또한 극히 미미하지만, 연구진은 포항가속기의 X선 자유전자레이저를 활용해 분자의 움직임을 초고속으로 포착하는 데 성공했다. 이를 통해 기존에는 접근할 수 없었던 영역의 물리 현상을 직접 관측할 수 있게 됐다.
연구팀은 영하 45도 이하에서도 얼지 않은 물을 관측하는 데 성공한 데 이어, 영하 70도에서는 물이 두 가지 액체 상태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했고, 이후 추가 연구를 통해 영하 약 60도 부근에서 임계점을 세계 최초로 관측하는 데 성공했다. 이는 물의 구조를 둘러싼 오랜 논쟁에 결정적인 증거를 제시한 결과다.
이번 연구는 물을 단순한 액체가 아니라 서로 다른 구조가 공존하는 복합 시스템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다. 이는 기후 변화, 해양 순환, 생명과학, 신소재 연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되며, 우리가 가장 익숙하게 여겨온 물이라는 존재를 완전히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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