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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년을 이어온 와인, 기후위기 앞에서 어떻게 변화 ?

-DNA로 밝혀진 품종의 역사… 이제는 ‘기후 적응’의 시대
-피노누아의 생존 전략… 온난화가 바꾸는 와인의 지도
-4000년 유산 위에 서는 미래 와인 산업, 과학이 답이다

전용현 기자 | 기사입력 2026/03/26 [08:33]

600년을 이어온 와인, 기후위기 앞에서 어떻게 변화 ?

-DNA로 밝혀진 품종의 역사… 이제는 ‘기후 적응’의 시대
-피노누아의 생존 전략… 온난화가 바꾸는 와인의 지도
-4000년 유산 위에 서는 미래 와인 산업, 과학이 답이다

전용현 기자 | 입력 : 2026/03/26 [08:33]

[내외신문/전용현 기자] 현대 와인 산업의 핵심 품종인 피노누아가 600년 전 중세에도 지금과 동일한 유전형으로 존재했다는 연구 결과는, 와인이 단순한 농산물이 아니라 ‘시간을 복제하는 산업’임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 오래된 안정성은 지금 거대한 균열을 맞고 있다. 바로 기후변화다. 수천 년 동안 유지되어 온 품종의 균형이 깨지고, 와인의 지도 자체가 다시 그려지고 있다.

 

프랑스 연구진이 4000년에 걸친 포도씨 DNA를 분석한 결과, 피노누아는 꺾꽂이를 통해 동일한 유전형을 유지하며 중세부터 현재까지 이어져 왔다. 이는 인간이 특정한 맛과 향을 선택하고, 그것을 ‘복제’하며 산업화해왔다는 증거다. 하지만 이 구조는 기후가 안정적이라는 전제 위에서만 가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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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와인을 만드는 품종 포도품종]피노 누아(Pinot Noir) - 사진=와인21닷컴    

 

지금 그 전제가 흔들리고 있다.

 

와인 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포도 품종이 아니라 ‘환경’이다. 같은 피노누아라도 프랑스 부르고뉴에서 자란 것과 캘리포니아에서 자란 것은 완전히 다른 맛을 낸다. 이는 기온, 일조량, 강수량, 토양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를 와인 업계에서는 ‘테루아’라고 부른다.

문제는 기후변화가 이 테루아 자체를 바꾸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프랑스 부르고뉴 지역은 전통적으로 서늘한 기후 덕분에 섬세한 산미와 향을 가진 피노누아 생산지로 유명하다. 그러나 최근 수십 년간 평균 기온이 상승하면서 포도가 과도하게 빨리 익고, 당도가 높아지며, 산미는 낮아지는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이는 와인의 균형을 무너뜨리는 요소다.

 

실제 사례를 보면 이해가 쉽다. 과거에는 9월 중순에 수확하던 포도가 지금은 8월 말로 앞당겨지고 있다. 이는 단순한 일정 변화가 아니라 와인의 맛 자체가 바뀌고 있음을 의미한다. 와인은 일정한 속도로 익어야 복합적인 향을 형성하는데, 너무 빠른 성숙은 단순한 단맛만 남기기 때문이다.

 

이 변화는 피노누아 같은 민감한 품종일수록 더 크게 나타난다. 피노누아는 온도 변화에 매우 예민한 품종으로, 조금만 기온이 올라가도 향의 구조가 무너질 수 있다.

이 때문에 세계 와인 산업은 지금 세 가지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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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 부르고뉴 포도밭의 모습 로열티 무료 사진, 그림, 이미지 그리고 스톡포토그래피. Image 144696955    

 

첫 번째는 ‘재배 지역의 이동’이다.

 

기후가 따뜻해지면서 전통적인 와인 산지는 점점 북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영국 남부에서는 이미 고품질 스파클링 와인이 생산되고 있고, 북유럽 일부 지역에서도 포도 재배가 가능해지고 있다. 과거에는 불가능했던 지역이 새로운 와인 생산지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이는 마치 농업 지도가 통째로 이동하는 것과 같다.

 

두 번째는 ‘품종의 재해석’이다.

 

기존에는 특정 지역에서 특정 품종만 재배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기후변화로 인해 새로운 품종이 도입되고 있다. 예를 들어 더운 기후에 강한 품종을 기존 와인 산지에 도입하거나, 기존 품종을 교배해 더 높은 온도에 적응할 수 있도록 만드는 방식이다.

 

이는 고대 유전자 혼합 과정과도 닮아 있다. 연구에서 확인된 것처럼 철기시대 이후 포도는 다양한 지역 유전자가 섞이며 진화해왔다. 지금의 변화 역시 그 연장선에 있다.

 

세 번째는 ‘기술 기반 대응’이다.

 

현대 와인 산업은 과학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토양 수분을 정밀하게 관리하는 스마트 농업, 열 스트레스를 줄이는 그늘망, 수확 시기를 예측하는 AI 시스템 등이 도입되고 있다.

 

또한 DNA 분석 기술은 특정 품종이 어떤 기후에서 가장 잘 적응하는지 예측할 수 있게 해준다. 이번 연구처럼 고대 유전자를 분석하면, 과거 기후 조건에서 살아남은 품종의 특성을 파악할 수 있고, 이를 미래 전략에 활용할 수 있다.

 

이 지점에서 중요한 질문이 생긴다.

 

와인은 앞으로도 ‘복제된 전통’을 유지할 것인가, 아니면 ‘적응하는 생명체’로 변할 것인가.

피노누아는 600년 동안 동일한 유전자를 유지해왔다. 그러나 앞으로 100년은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될 수 있다. 기후가 바뀌면 같은 유전자라도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즉, 와인의 미래는 더 이상 과거를 그대로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유산 위에서 새로운 선택을 하는 과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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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조용 포도와 식용포도의 비밀 

 

이 변화는 산업 구조에도 영향을 미친다.

 

전통적인 와인 강국이었던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기후 변화로 생산 안정성이 흔들릴 수 있고, 반대로 북유럽이나 고위도 지역은 새로운 기회를 얻는다. 이는 글로벌 와인 시장의 재편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또한 소비자의 취향 역시 변화할 수 있다. 과거에는 특정 지역과 품종이 ‘정답’으로 여겨졌지만, 앞으로는 다양한 기후 조건에서 만들어진 새로운 스타일의 와인이 등장하게 된다.

 

와인은 다시 한 번 진화의 갈림길에 서 있다.

 

4000년 전 인간은 야생 포도를 선택하고, 교배하고, 복제하며 지금의 와인을 만들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기후변화라는 새로운 조건 속에서 또 다른 선택을 해야 한다.

 

와인은 더 이상 단순한 전통의 산물이 아니다. 그것은 환경 변화에 대응하는 가장 섬세한 산업 중 하나다.

 

한 잔의 와인을 마신다는 것은, 과거의 유전자를 맛보는 동시에 미래의 기후를 경험하는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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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외신문 인천본부 기자
월간 기후변화 기자
사단법인 환경과미래연구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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