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외신문] 조기홍 기자 = 지난 2026년 3월 20일, 21일 대학로 이음센터 5층 대공연장에서 극단 본능(대표 김태흥) 창작연극 '사는게 억울하니'가 4회공연 전석 만석을 채우고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이번 공연은 세번째 올린 공연으로 철학과 현실을 넘나드는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해 주는 창작극의 각색으로 세간의 관심을 드높였다.
김태흥 단장이 연출, 각본, 감독, 음향을 멀티로 맡았으며 권영희 조연출, 김미라가 나레이션을 했다.
출연진은 조기홍, 조재국, 이덕희, 김태운, 김영길, 권영희, 이영혜, 김양순, 박성숙, 이경희, 김인애, 윤산, 박연숙, 심관희 등이 1인 3역, 1인 2역 을 잘 연기해 주었다.
이번 출연진의 특징은 지난 출연진들 뿐만 아니라 중견 시낭송가와 가수가 참여하여 더욱 빛이 났다. 김태흥 단장은 "출연진들에게 감사와 축하를 드린다. 하반기에는 '죽는게 억울하니'로 새로운 작품을 선보이겠다."고 의욕있는 인사를 하였다.
관람을 마친 최연숙 작가는 "오늘 니체의 그 뜨거운 통곡, 쇼펜하우어의 아픔을 가슴 깊이 잘 받았습니다. 여인들의 현실에 있을 이야기, 시낭송, 노래도 실감나게 와 닿았습니다. 공연장을 나서니 3월의 여린 봄햇살이 눈부시게 산란(散亂)하더군요. 무대 위 처절했던 고통마저 찬란한 빛으로 부서지는 듯한 오후였습니다. '아모르파티'의 울림을 안고 돌아갑니다. 귀한 무대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공연의 여운과 오후의 햇살이 출연진들에 마음속에 오래도록 기분 좋게 머물렀으면 좋겠습니다."라고 관람평을 해 주었다.
도서출판 행복에너지 권선복 회장도 관람후기를 보내 주었다.
웃고 울다가 끝내 철학이 되어버린 연극 사는 게 억울하니!, 삶의 상처를 위로로 바꾼 대학로의 기적
2026년 3월 21일 오후 5시.대학로 이음센터. 저는 단순히 연극 한 편을 본 것이 아니었습니다.
한 편의 무대를 본 뒤 돌아오는 길이 이토록 길게 느껴진 적이 있었나 싶을 만큼, 가슴속에 뜨거운 무언가가 오래 남았습니다.
웃음도 있었고, 눈물도 있었고, 공감도 있었고, 끝내는 철학까지 남았습니다.
공연장을 나와 한참을 걷는데도, 무대 위 배우들의 목소리와 표정, 그리고 마지막 장면의 울림이 제 안에서 좀처럼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연극의 제목은 참 묘했습니다.『사는 게 억울하니!』처음 들으면 어딘가 투박하고도 직설적입니다.
누군가 술자리에서 툭 던진 말 같기도 하고, 인생에 지친 사람이 벽을 보고 중얼거리는 말 같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제목을 가만히 오래 들여다보고 있으면, 어느새 그것이 남의 질문이 아니라 바로 내 질문처럼 들리기 시작합니다.
“그래, 나는 지금 억울하지 않은가.” “나는 그동안 무엇을 참으며 살아왔는가.” “내가 웃는 얼굴 뒤에 감춰둔 상처는 과연 얼마만큼인가.” 바로 그 지점에서 이 연극은 이미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이번 공연은 도서출판 행복에너지에서 『갈등해결』을 출간한 김태홍 저자가 총감독으로 참여한 작품이었습니다.
김태홍 저자는 오래전부터 삶의 갈등과 인간 내면의 충돌을 단순한 이론이 아니라 체온 있는 언어로 풀어내는 분이라는 인상을 제게 주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공연이 더욱 궁금했습니다.
책으로 갈등을 풀어내던 저자가 무대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사람의 상처를 건드리고, 또 어떤 방식으로 위로를 건넬 것인가.
그 기대를 안고 객석에 앉았는데,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그 기대는 전혀 배신당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기대보다 훨씬 더 깊고, 훨씬 더 진하고, 훨씬 더 울컥한 시간으로 제 가슴에 새겨졌습니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 극장 안의 공기는 묘하게 팽팽했습니다. 화려한 상업 공연을 보러 왔을 때의 들뜬 분위기와는 달랐습니다.
어딘가 조심스럽고, 어딘가 기대에 차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이 연극이 내 마음을 어디까지 건드릴까” 하는 긴장감이 조용히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막이 오르자, 그 긴장감은 단숨에 몰입으로 바뀌었습니다.
무대는 생각보다 절제되어 있었습니다.
크게 요란하지 않았고, 장치가 과하게 앞서 나가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절제가 오히려 더 강한 힘을 만들어냈습니다.
배우들이 서 있는 위치 하나, 조명이 내려앉는 각도 하나, 인물이 돌아서는 속도 하나까지도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계산되어 있었습니다. 저는 여러 장면에서 숨을 멈춘 채 바라보았습니다.
정말로 이 공연은 단순한 연극이라기보다 회화적인 연극, 다시 말해 무대 위에 철학과 감정을 함께 그려 넣은 살아 있는 그림 같았습니다.
장면 하나하나가 액자에 넣어두고 싶은 순간처럼 아름다웠고, 그 아름다움은 화려함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절제와 진심에서 나왔습니다. 무엇보다도 놀라웠던 것은 배우들이었습니다.
이번 무대에 오른 배우들은 대부분 아마추어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공연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마추어’라는 단어를 머릿속에서 지워버렸습니다.
그들은 연기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 마치 자신의 삶 자체를 무대 위에 올려놓은 사람들처럼 보였습니다. 대사는 단순히 외운 문장이 아니었습니다.
살아낸 시간에서 길어 올린 고백이었습니다. 표정은 꾸민 표정이 아니었습니다.
억울함도, 분노도, 체념도, 희망도, 삶을 통과해본 사람만이 보여줄 수 있는 얼굴이었습니다. 그래서 더 아팠고, 그래서 더 감동적이었습니다.
특히 이 연극이 대단했던 이유는 “억울함”이라는 감정을 단순한 하소연으로 소비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다 보면 누구나 억울한 순간을 겪습니다. 열심히 해도 인정받지 못할 때, 진심을 다했는데도 오해받을 때, 옳다고 믿었던 일이 한순간에 무너질 때, 우리는 속으로 외칩니다.
“왜 나만 이렇게 억울해야 하지?”
그런데 대부분의 작품은 이 감정을 단순한 분노나 풍자로 밀어붙입니다. 하지만 『사는 게 억울하니!』는 달랐습니다.
이 작품은 억울함을 웃음으로 비틀면서도, 그 웃음 뒤에 숨어 있는 상처를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객석에서는 웃음이 터지다가도 금세 조용해졌습니다. 배우들의 한마디 한마디가 관객의 현실과 맞닿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느 장면에서는 객석 전체가 큰 소리로 웃었고, 어느 장면에서는 숨죽인 정적 속에서 누군가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바로 그 지점에서 저는 이 작품의 힘을 보았습니다.
이 연극은 관객을 단순히 즐겁게 하는 것이 아니라, 웃음으로 문을 열고 눈물로 마음의 가장 깊은 방까지 들어가는 작품이었습니다.
또 하나 인상 깊었던 것은 이 작품 안에 녹아든 철학적 깊이였습니다. 공연을 보다 보면 단순한 이야기의 흐름을 넘어, 어디선가 우리를 오래 붙잡는 사유의 그림자가 느껴집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니체와 쇼펜하우어가 있었습니다. 쇼펜하우어는 삶을 고통으로 보았습니다.
욕망은 채워져도 다시 생기고, 인생은 결국 결핍과 허무를 끌어안고 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반면 니체는 그런 고통과 허무를 넘어서, 운명마저 사랑하라고 외쳤습니다. 아모르 파티, 즉 “네 운명을 사랑하라”는 그의 외침은 슬픔을 부정하는 말이 아니라, 슬픔까지도 껴안고 삶을 긍정하라는 절절한 선언이었습니다. 이 연극이 놀라운 이유는 바로 이 두 철학이 따로 놀지 않고 무대 위에서 살아 움직였다는 데 있습니다.
어떤 장면에서는 쇼펜하우어의 그림자처럼 깊은 체념과 허무가 흐릅니다.
인물들은 왜 살아야 하는지, 왜 견뎌야 하는지, 왜 상처를 안고 또 하루를 건너야 하는지 묻습니다.
그리고 관객은 그 질문이 결코 남의 것이 아님을 깨닫습니다. 그러다가 또 다른 장면에서는 니체의 뜨거운 기운이 무대를 가로지릅니다.
넘어졌어도 다시 일어나고, 상처투성이여도 웃음을 잃지 않고, 결국 이 삶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는 그 거칠고도 아름다운 긍정이 관객의 심장을 건드립니다. 저는 이 대비가 너무나 인상적이었습니다.
삶은 고통이라고 말하는 철학과, 그 고통마저 사랑하라고 외치는 철학.
이 두 세계가 연극 속 인물들의 몸과 목소리를 통해 한 무대 위에서 충돌하고 화해하는 과정을 보며, 저는 생각했습니다. “아, 이것이야말로 철학연극의 새로운 가능성이구나.” 책 속에 적혀 있을 때는 멀게만 느껴졌던 철학이, 무대 위 인물들의 억울함과 웃음, 눈물과 노래를 통해 살아 있는 언어로 되살아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렇다고 이 작품이 무겁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너무나 아픈 현실을 다루는데도, 관객을 끝까지 붙들어두는 해학과 생동감이 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기막힌 현실, 누구나 한 번쯤 “이건 너무하다” 하고 한숨 쉬었을 법한 상황들이 무대 위에서 펼쳐질 때, 우리는 웃습니다.
그런데 그 웃음이 가볍지 않습니다. “맞아, 저게 우리 현실이지.” “저건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 이야기야.” 그런 자조와 공감이 섞인 웃음입니다.
이 작품을 보고 있으면 웃고 울고, 또 웃다가 문득 철학 앞에 서게 됩니다.
정말 이 연극은 김동하듯 웃고 울다 보면 어느새 철학이 되어버리는 공연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공연 말미, 잊을 수 없는 장면이 찾아왔습니다. 배우들이 모두 함께 무대에 서서 ‘아모르파티’를 열창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 순간 저는 온몸에 전율이 일었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마무리 노래가 아니었습니다.
그동안 쌓아온 감정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는 해방의 순간이었고, 이 연극 전체가 관객에게 건네는 마지막 선언이었습니다.
배우들은 웃으며 노래했지만, 그 웃음 안에는 눈물이 있었습니다. 객석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박수가 터졌고, 미소가 번졌고, 동시에 눈가를 훔치는 분들도 보였습니다. 왜 그 장면이 그토록 감동적이었을까요. 제 생각에는 그 노래가 단순히 흥겨운 노래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니체가 말한 “아모르 파티”를, 즉 운명을 사랑하라는 말을 가장 쉬운 방식으로, 그러나 가장 뜨겁게 우리 가슴에 꽂아 넣은 순간이었습니다. 삶이 억울할 수도 있습니다.
사는 일이 서럽고 기가 막힐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결국 우리는 또 살아야 하고, 또 웃어야 하고, 때로는 노래해야 합니다.
바로 그 절망과 긍정의 경계선 위에서 울려 퍼진 ‘아모르파티’는, 공연을 단순한 무대가 아니라 하나의 치유 의식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 장면을 보며 저는 진심으로 울컥했습니다.
삶이 완벽해서 웃는 것이 아니라, 상처투성이임에도 불구하고 웃어내는 것. 억울함이 사라져서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그 억울함마저 끌어안고 노래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인간이 가진 가장 위대한 힘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공연이 끝난 뒤 커튼콜 장면 또한 아름다웠습니다.
배우들은 꽃다발을 안고 관객들에게 인사를 했고, 그 얼굴에는 해냈다는 안도와 기쁨, 그리고 서로를 향한 고마움이 함께 서려 있었습니다.
저는 그들의 얼굴을 보며 다시 한 번 느꼈습니다.
이 사람들은 무대 위에서 연기를 한 것이 아니라, 정말로 자신들의 시간을 바쳐 하나의 감동을 만들어냈구나 하고 말입니다. 그래서 더 박수를 아낄 수 없었습니다.
토요일 오후 대학로 이음센타 공연장 에서 건강다복 만사대길한 기운찬 행복에너지 긍정의 힘으로 대한민국 방방곡곡에 전파하겠습니다.
2026년 3월 21일 오후 5시, 대학로 이음센터에서 제가 만난 『사는 게 억울하니!』는 단순한 공연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현실을 비추는 거울이었고, 상처를 드러내는 고백이었고, 끝내는 삶을 사랑하라고 말하는 철학적 선언이었습니다.
도서출판 행복에너지에서 『갈등해결』을 출간한 김태홍 저자의 깊은 사유와, 아마추어라는 이름을 넘어선 배우들의 혼신, 니체와 쇼펜하우어의 철학이 살아 숨 쉬던 회화적인 장면들, 그리고 마지막 아모르파티의 눈부신 감동까지 이 공연은 오래도록 제 마음에 남을 것입니다.
저는 그날 연극을 보고 나온 것이 아니라, 삶을 다시 바라보는 한 편의 뜨거운 질문을 가슴에 안고 돌아왔습니다.
“사는 게 억울하니?” 예전 같으면 이 질문 앞에서 잠시 머뭇거렸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제는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억울할 수도 있습니다. 아플 수도 있습니다.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끝내 이 삶을 살아내야 하고, 어떤 날은 눈물로, 어떤 날은 웃음으로, 마침내는 노래로 견뎌내야 합니다.
그리고 어쩌면 바로 그 순간, 삶은 상처를 넘어 철학이 되고, 철학은 다시 위로가 됩니다. 그날 대학로 이음센터의 무대는 정말로 감동을 넘어 하나의 철학이 되었습니다.
건강다복 만사대길한 기운찬 행복에너지 긍정의 힘으로 보내드립니다. 아라차차차 영차아!
湧泉 權善福 도서출판 행복에너지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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