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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굴양식장에서 일하는 이주 노동자(사진제공=노동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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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외신문/조동현 기자] 한국의 계절노동자 제도가 단순한 인력 수급 정책을 넘어 구조적 인신매매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농어번기의 노동력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였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브로커 개입과 임금 착취, 이동 제한 등 심각한 인권침해가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장에서 드러난 문제는 단순한 노동조건 악화 수준이 아니다. 피해자들은 모집 과정에서부터 이미 통제 구조에 편입된다.
해외에서 취업 광고나 지인을 통해 유입된 노동자들은 높은 수수료와 채무를 떠안은 채 입국하고, 이후 근로조건이 변경되거나 임금이 일방적으로 삭감되는 상황에 놓인다. 계약서에 명시된 조건과 실제 노동 환경이 전혀 다른 경우도 흔하다.
특히 전남 지역의 어업 계절노동 사례에서는 이러한 구조가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노동자들은 월급제 계약을 체결했음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는 성과급 형태로 임금이 변경되었다.
숙련되지 않은 노동자들이 생산량 기준 임금을 적용받으면서 사실상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입을 받게 되었고, 한 달 노동의 대가가 25만 원 수준에 불과한 사례도 확인됐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들은 자유롭게 이동하거나 사업장을 변경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다. CCTV 감시, 숙소 출입 통제, 사업장 외출 제한 등 물리적 통제도 병행된다. 심지어 일이 없을 경우 다른 농장이나 작업장으로 강제 이동되는 사례도 나타난다. 이러한 구조는 국제사회에서 규정하는 ‘강제노동’의 전형적인 형태에 해당한다.
법적으로도 문제는 명확하다.
한국은 이미 유엔 인신매매방지의정서를 비준했고, 2023년에는 인신매매방지법까지 제정했다. 해당 법과 국제 기준에 따르면, 취약한 지위를 이용한 노동력 착취, 기만적 모집, 이동 제한 등이 결합될 경우 피해자의 동의 여부와 관계없이 인신매매로 판단된다. 즉, “본인이 원해서 왔다”는 주장 자체가 법적 판단의 기준이 될 수 없다는 의미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러한 법적 기준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장애인 노동력 착취, 이주여성 성착취, 청소년 착취 사례와 마찬가지로 계절노동자 문제 역시 사건 유형에 따라 서로 다른 법률과 기관이 적용되면서 일관된 대응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수사기관 간 분절 구조 속에서 사건은 흐지부지되거나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지는 경우가 반복된다.
더 큰 문제는 사회 인식이다. “먹여주고 재워줬다”, “그 돈이라도 벌어야 하지 않느냐”는 식의 반응은 피해를 정당화하는 논리로 작동한다. 이러한 인식은 가해자뿐 아니라 지역사회와 일부 공공기관에서도 나타나며, 피해자의 문제 제기를 차단하는 심리적 장벽이 된다.
이 같은 상황은 국제적 리스크로도 이어질 수 있다.
미국 등 주요 국가들은 인신매매와 관련된 인권 기준을 무역과 연계하고 있으며, 인신매매 등급이 낮아질 경우 경제적 제재가 가능하다. 노동력 착취 문제가 구조적으로 방치될 경우, 한국 농수산물과 관련 산업 전반이 글로벌 시장에서 불이익을 받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문제 해결의 핵심으로 제시되는 것은 ‘3P’다. 보호(Protection), 예방(Prevention), 기소(Prosecution)라는 세 가지 원칙이다. 그러나 현재 한국의 계절노동자 제도는 이 세 가지 모두에서 실패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우선 피해자 보호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피해자들이 가해자와 분리되지 못한 상태에서 조사와 합의가 진행되며, 오히려 “문제 제기를 하지 않으면 재입국을 보장해주겠다”는 식의 압박이 작동한다. 쉼터나 보호시설 역시 공공이 아닌 민간에 의존하는 구조가 이어지고 있다.
예방 역시 사실상 작동하지 않는다. 브로커의 불법 개입이 반복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차단할 제도적 장치는 미흡하다. 모집 단계에서부터 발생하는 채무 구조와 계약 왜곡이 그대로 유지되면서 동일한 피해가 재생산된다.
기소 단계에서도 한계가 드러난다. 피해자들이 경제적·심리적으로 종속된 상태에서 합의를 강요받게 되면, 수사는 중단되고 가해자는 처벌을 피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범죄 구조는 유지되고, 피해만 반복되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계절노동자 제도는 한국 농어업을 지탱하는 중요한 축이지만, 현재의 구조는 노동이 아닌 ‘통제된 거래’에 가깝다는 비판이 나온다. 제도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단순한 인력 공급을 넘어 인간의 존엄과 권리를 전제로 한 근본적 재설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 문제는 특정 집단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구조와 직결된다. 착취가 허용되는 사회에서는 그 경계가 언제든 확장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계절노동자 제도의 문제는 지금, 한국 사회가 어디까지 인간의 노동을 존중하고 있는지를 묻는 하나의 시험대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