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 사북항쟁, 45년의 침묵을 깨는 영화인들의 외침사북의 진실을 다시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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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북탄광 기록사진 |
광산 경영진의 착취와 연탄 생산량 경쟁 속에서 누적된 노동의 불평등, 그리고 이를 일시에 폭발시키며 항쟁으로 이어졌던 분노의 축적, 무엇보다 사북에서 벌어진 일을 ‘폭동’으로 규정하고 군부를 동원해 폭력적으로 진압하며 이후 진실을 은폐한 계엄사령부의 조직적 대응이 영화 전체를 관통한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역시 이미 사북항쟁을 조사한 바 있다. 위원회는 명백한 국가폭력을 인정했고, 피해자들에 대한 국가의 사과와 적절한 구제조치를 권고했다. 그러나 국가는 침묵했고, 권고는 사실상 방치 상태로 남았다. 피해자 중 상당수는 생계를 잃었고, 구속과 고문 이후 삶이 무너졌으며, 정신적 트라우마를 안고 생을 마감한 이도 많다.
그런 와중에 45년 만에 영화 <1980 사북>이 개봉했다. 영화인 318명이 공동성명을 발표하며 공식 사과와 구제조치를 촉구한 것은 이 사건이 단지 ‘과거사’가 아니라 지금도 계속되는 국가적 책임의 문제라는 점을 다시 일깨웠다.
이들은 사건의 모든 국면에 국가폭력이 있었다는 점을 분명히 하며 “반세기가 가까워지도록 국가는 손을 내민 적이 없다”는 점을 정확히 지적했다.
감독, 배우, 작가, 제작진, 영화제 관계자 등 한국 영화계를 구성하는 다양한 창작자들이 이름을 올린 이유 역시 사북항쟁을 단지 역사적 배경으로 소비하는 것을 넘어, ‘지연된 정의’의 문제를 사회 전체가 다시 생각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정부가 이 요구에 응답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더 이상 특정 진영의 정치적 요구가 아니다. 이는 피해자와 유가족, 사북 지역사회, 그리고 한국 사회가 공동으로 안고 있는 미해결의 역사다.
진보당 홍성규 대변인은 “45년의 세월 앞에서는 지연된 정의라는 표현조차 민망하다”고 지적했다. 이는 단순한 수사가 아니다. 진실화해위가 이미 국가 책임을 인정하고 구제를 권고했음에도 역대 정부가 어떤 실질적 후속조치도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한국의 과거사 문제는 여전히 ‘선택적 정의’와 ‘정치적 고려’ 속에 갇혀 있음을 보여준다.
사북항쟁은 5·18 광주항쟁, 부마항쟁, 제주4·3처럼 한국 국가폭력사의 연장선에 위치해 있다. 하지만 다른 사건과 비교해도 유독 사북만은 기록도 적고 사회적 논의도 상대적으로 부족했다.
이는 노동자 항쟁이라는 특성, 산업현장의 집단 폭력이라는 성격, 그리고 전두환 신군부가 사북 사건을 광주에 앞선 선례로 관리하고자 했던 정치적 의도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영화인들의 이번 성명은 단순한 문화계 목소리가 아니라 40여 년 동안 사북이 겪어온 침묵의 강요와 왜곡의 역사에 대한 사회적 보정 요청이다.
그들이 요구한 것은 거창하지 않다. 국가의 공식 사과, 피해자 명예회복과 직권조사, 그리고 필요한 구제조치 마련이다. 이것은 이미 15년 전 진실화해위가 권고한 조치를 이행하라는 요구에 불과하다.
우리는 매년 과거사 관련 국가폭력 사안을 두고 ‘더 늦기 전에’라는 표현을 반복한다. 그러나 사북항쟁은 이제 그마저도 늦은 지점에 서 있다. 피해자 상당수는 이미 고령이거나 세상을 떠났다.
남아 있는 가족들 역시 긴 시간 동안 사회적 낙인과 침묵 속에서 견뎌왔다. 그렇기에 지금 필요한 것은 정치적 언어가 아니라 책임 있는 국가 행위다. 정부는 더 이상 사북항쟁을 의제의 변두리에 둘 수 없다.
영화가 던진 질문은 단 하나다. “국가는 왜 아직도 사과하지 않는가.” 이 질문에 답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정부다. 침묵은 더 이상 선택지가 아니다. 이제는 응답해야 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