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광산의 그림자, 일본의 부정과 한국의 기억…다시 흔들리는 역사전쟁 -진실을 둘러싼 외교 충돌
|
![]() ▲ 사도광산 내부 전시장 |
일본은 국제무대에서도 ‘강제노동’이라는 용어 자체를 삭제하거나 완곡하게 표현하려는 시도를 반복해왔으며, 심지어 사도광산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려 할 때도 역사적 사실을 기록한 패널을 최소화하거나 왜곡 기재하려는 움직임을 보여왔다.
이는 단순한 역사 해석의 차이가 아니라, 국가가 주도해 과거의 가해 책임을 구조적으로 희석시키려는 기억정치의 전략적 변형으로 평가된다.
일본의 이러한 태도는 2015년 군함도 세계유산 등재 당시 보여준 행태와 정확히 겹친다. 당시 일본은 국제사회에 “역사 전체를 이해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했으나, 등재 이후 일본 내 전시관에서는 강제노동을 부정하는 자료가 내걸렸고, 전시 패널에는 강제동원 피해자 존재가 사실상 삭제됐다.
국제사회가 이를 문제삼자 일본은 “약속을 이행했다”는 변명으로 일관하며 책임을 피해갔다. 사도광산 논란 역시 같은 패턴이다.
역사적 책임을 최소화하고 피해자를 가시화하지 않음으로써 일본은 스스로를 ‘피해 없는 근대화 국가’로 설정하고, 그 과정에서 식민지배의 폭력성을 지우는 방식으로 국가 정체성을 관리해왔다.
반면 한국의 대응은 단계적으로 진화해왔다. 과거에는 피해자 개별 소송과 시민단체 중심의 문제 제기가 중심이었다면, 최근에는 외교·국제기구·공식 기념행사를 총동원하는 방식으로 기억을 적극적으로 국가 차원에서 유지하려는 흐름으로 이동했다.
이번 사도광산 별도 추도식은 그러한 전환의 연장선이다. 한국 정부는 일본의 부정을 그대로 두는 것이 결국 ‘역사적 사실을 국가 단위로 다시 조작하는 작업’을 용인하는 것이라는 점을 우려한다.
따라서 한국은 추도식에서 피해자의 이름을 불러내고, 강제노역의 실태를 기록하며, 일본 정부가 삭제한 역사를 국제사회에 다시 복원하는 상징적 역할을 수행한다. 일본이 사라지게 만든 이름들을 다시 호명하는 행위 자체가 외교적 메시지인 셈이다.
더욱이 최근 일본은 사도광산 문제뿐 아니라 교과서 왜곡, 독도 문제, 전쟁범죄 책임 회피 등 이른바 ‘역사 수정주의’ 흐름을 강화하고 있다.
일본 내 우익 세력의 정치적 영향력이 커지면서 과거사 인정·사과의 공간은 더욱 축소되었고, 오히려 국가적 자긍심과 정체성을 위해 ‘불편한 진실’을 삭제하는 경향이 노골화되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사도광산 추도식은 단지 과거 희생자를 위한 행사가 아니라, 일본의 수정주의적 움직임에 대한 구조적 제동장치의 기능을 갖는다. 한국의 대응이 단호해지는 이유 또한 여기에 있다.
기억을 잃는 순간, 역사는 권력자에 의해 다시 쓰여지고, 피해의 존재는 정치적 필요에 따라 지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사도광산은 지금 단지 과거의 장소가 아니라, 역사 기록을 둘러싼 정치의 중심에 서 있다.
그 장소에서 일본은 ‘과거를 덮는 기술’을 실행하고 있고, 한국은 ‘기억을 지키는 의지’를 표명하고 있다. 양국의 외교 충돌은 겉으로는 추모식과 전시 패널, 용어 사용 문제처럼 보이지만, 근본적으로는 누가 역사의 서술권을 갖는가를 둘러싼 싸움이다.
한국 정부의 이번 별도 추도식은 피해자 존엄의 회복을 넘어, 일본 정부가 보여온 책임 회피와 왜곡에 맞선 선언적 행동이며, 국제사회에 대한 메시지이기도 하다. 기억은 사실 자체보다 더 오래 남아야 하고, 국가의 과오는 반성과 책임 없이는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일본이 아무리 과거를 지우려 해도, 한국이 만든 이 ‘기억의 장’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번 추도식이 다시 열린 이유는 그래서 명확하다.
역사적 책임은 끝나지 않았고, 일본은 여전히 반성하지 않았으며, 피해자들의 이름은 여전히 불리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대응은 단순한 외교가 아니라 기억을 지키기 위한 의무이며, 일본이 외면한 과거를 세계가 잊지 않도록 남겨두는 최소한의 경계다.
사도광산 앞에서 우리는 다시 묻는다. 역사는 누구의 소유인가. 그리고 어떤 기억이 미래의 기준이 되어야 하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