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 스미스의 귀환, 시장과 윤리의 대화를 다시 열 때시장에 버려진 스미스를 다시 불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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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담스미스 초상화 |
국내 정치경제 전문가들도 이러한 분석에 동의한다. 한 연구자는 “20세기 경제학이 감정·도덕·공동체를 배제하고 모델의 정밀성만 강조하면서 스미스의 인간 이해는 통째로 사라졌다”며 “이기심을 합리성으로 신격화한 것은 스미스가 아니라 우리가 만든 신화”라고 비판했다. 실제로 경제학 교과서에 등장하는 ‘경제적 인간’은 스미스가 그린 윤리적 인간상과 거리가 멀다.
스미스의 ‘이기심’ 개념에 대한 해석도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할다르 교수는 “스미스에게 이기심은 폭력적 탐욕이 아니라 공동체적 규범과 시민적 미덕 속에서 규율된 감정이었다”고 말했다. 스미스는 인간의 행동을 ‘자기애와 도덕적 동정심의 혼합물’로 보았고, 시장 활동 역시 그 혼합 위에서만 공익으로 귀결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는 것이다.
스미스가 경고한 위험은 오늘날 현실이 되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는 상업사회에서 시민적 미덕이 약화되면 도덕적 정서가 타락하고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되면 규제와 제도가 특정 계층의 이해관계에 포획된다고 경고했다. 이는 현대의 ‘규제 포획’, 금융위기, 극단적 불평등 문제가 그대로 들어맞는 분석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전문가들은 스미스의 경제관을 ‘도덕경제’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시장 자체가 도덕의 빈틈을 채우는 장치가 아니라, 오히려 도덕적 기반이 없으면 작동할 수 없다는 전제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할다르 교수는 “스미스는 국가사회주의도, 무제한 시장도 모두 반대했다. 그가 말한 것은 인간의 번영을 중심에 둔 절묘한 중간지점이었다”고 강조했다.
경제학이 스미스를 오해하게 된 배경에는 근대 경제학의 구조적 한계도 있다. 산업화 이후 경제학은 과학적 정확성을 추구하며 인간 심리와 윤리를 불편한 변수로 취급했고, 그 결과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개념은 윤리적 맥락을 제거한 채 탐욕을 정당화하는 상징처럼 변질됐다. 하지만 스미스가 말한 보이지 않는 손은 어디까지나 제도와 미덕이 함께 작동할 때만 공공선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전제 위에 있었다.
전문가들은 스미스를 통합적 인간학의 사상가로 재평가해야 한다고 말한다. 스미스는 경제학을 독립 학문으로 만든 적이 없으며, 도덕철학·법철학·정치철학을 모두 아우르는 ‘인간과학’을 구축하려 했다. 《도덕감정론》과 《국부론》은 원래 하나의 철학적 프로젝트였으며, 경제와 윤리를 분리한 것은 후대의 해석일 뿐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재평가는 현대 경제·정치의 위기와도 깊이 연결된다. 금융위기, 기후위기, AI 윤리 논란, 불평등 심화 등은 모두 “윤리에서 벗어난 경제”가 낳은 구조적 문제라는 분석이 나온다. 스미스가 경고한 대로 시장은 시민적 미덕이 약화될 때 타락하며, 공공의 이익보다 사익을 우선하는 제도는 결국 사회 전체의 신뢰를 붕괴시킨다.
할다르 교수는 “스미스에게 돌아가는 일은 과거 회귀가 아니라 미래를 위한 회복”이라며 “시장을 구하려면 먼저 도덕을 구해야 한다는 스미스의 메시지가 지금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스미스가 열어둔 ‘시장과 도덕의 대화’를 다시 시작해야 할 때라며, 경제와 공동체, 효율성과 공감 사이의 균형을 회복하는 것이 250주년을 맞는 지금 인류가 스미스로부터 얻어야 할 가장 절실한 교훈이라고 입을 모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