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경제주권의 모델, 경주에서 희망을 찾았다.천년 고도가 다시 깨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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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년의 문화유산이 단지 보존의 대상이 아니라, 경제적 자산으로 전환될 수 있다 경주APEC |
천년의 도시가 다시 세계로
2025년 APEC 정상회의의 주인공은 의외의 도시였다. 경주는 지금 40대 50대의 단골 수학여행 코스 였지만
서울도, 부산도 아닌 경주였다. 천년 고도라 불리며 오랜 세월 역사의 그림자 속에 머물렀던 그곳이, 이제는 세계 경제 무대의 한복판에 섰다.
전 세계 21개국 정상들이 불국사의 석양을 바라보며 감탄사를 터뜨렸고, 외신 기자들은 “시간이 멈춘 듯한 도시에서 미래의 아시아를 논의했다”고 썼다.
경주는 이번 APEC을 통해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지방이 스스로 주권을 세우는 경제도시로 변신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천년의 문화유산이 단지 보존의 대상이 아니라, 경제적 자산으로 전환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한 셈이다.
사실 경주의 도전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신라의 수도 서라벌이 장안과 어깨를 나란히 하던 시절, 이 도시는 이미 ‘국가의 중심’이었다.
그리고 1970년대 박정희 정부의 관광 종합개발계획으로 다시 빛을 봤다.
그러나 그때의 경주는 중앙의 의지에 의해 움직이는 도시였다.
이번 APEC은 정반대다. 시민들이 직접 나서고, 기업과 행정이 함께 설계했다. 경주는 스스로를 새롭게 만들었다.
불국사와 석굴암이 품은 시간 위에, 보문단지의 드라켄 롤러코스터가 솟아올랐다.
천년의 고분을 내려다보며 90도로 떨어지는 그 순간, 경주는 과거와 미래를 함께 질주했다. 이 도시의 부활은 고리타분한 복원의 이야기가 아니다.
전통과 기술, 유산과 스릴이 공존하는, 완전히 새로운 경주의 등장이다.
![]() ▲ 황리단길로 MZ세대 사로잡은 ‘경주’…수학 여행지서 SNS ‘핫플’로 떠올랐다. |
지방경제주권의 실험실로의 의미
경주의 변화는 시민의 손에서 시작됐다. APEC 유치 확정 후, 경주시민 140만 명이 넘는 인원이 거리 캠페인과 환경정화 활동에 참여했다.
그들의 표정엔 ‘이건 우리의 행사’라는 자부심이 묻어 있었다. 과거 중앙정부가 내려준 프로젝트가 아닌, 시민이 주인공이 된 첫 대형 국제행사였다.
그 결과는 놀라웠다. 숙박시설이 90% 이상 만실을 기록했고, 전년 대비 외국인 방문객이 12% 늘었다.
지역 카페와 식당, 공예품점은 연일 북적였다. 하지만 눈에 띄는 건 경제효과보다 ‘분위기’였다. 경주 사람들은 스스로 도시를 새롭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도시의 공기를 바꿨다.
이번 행사를 계기로 경주는 인프라를 대대적으로 손봤다.
보문관광단지는 국제회의복합지구로 바뀌었고, 첨성대 주변은 미디어파사드와 증강현실을 접목한 야간 명소로 탈바꿈했다.
밤이 되면 별빛과 불빛이 한데 어우러져, 천년 전 별 관측소가 오늘날 하이테크 아트로 다시 태어난다.
이 모든 변화는 단지 ‘관광객 유치’가 목적이 아니다.
경주는 이제 MICE 산업, 즉 회의·전시·컨벤션 중심의 경제 생태계를 만들고 있다.
도시 브랜드는 ‘역사 보존’에서 ‘미래 창조’로 옮겨가고 있다. 지방이 중앙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 새로운 산업을 만들어내는 실험실이 바로 경주다.
회의는 끝났지만, 시작은 지금부터
APEC이 끝난 뒤 경주에는 두 가지 목소리가 들린다.
“이제 진짜 시작이다”라는 희망과 “행사가 끝나면 열기도 식지 않을까”라는 우려다. 그러나 경주는 그 불안을 잘 알고 있다.
일회성 이벤트로 끝나지 않기 위해, 지역이 직접 참여하는 ‘지속가능한 도시 모델’을 만들고 있다.
예를 들어, 황남빵 본점은 이제 단순한 빵집이 아니라 ‘로컬 브랜드 육성의 교본’이 되었다. 전통을 현대 디자인과 결합한 상품은 일본과 대만에서도 인기다.
경주는 지역 상권을 중심으로 ‘로컬 밸류체인’을 설계 중이다. 관광객이 남긴 소비가 지역 내에서 순환하도록, 음식·숙박·문화·기념품을 연결하는 구조를 만들고 있다.
또한 젊은 창업자들이 경주의 새로운 주인공으로 떠오르고 있다.
불국사 근처의 한 카페는 전통차를 디지털 NFT로 판매하고, 대릉원 근처의 공방은 고분 유물 문양을 활용한 3D 프린팅 장신구를 만든다. 과거의 유산이 미래의 산업이 되는 순간이다.
지방경제주권의 본질은 ‘중앙정부의 보조금 없이, 지역 스스로 먹고 사는 힘’을 만드는 것이다. 경주는 그 가능성을 보여줬다.
![]() ▲ 경주시는 2025 APEC을 앞두고 ‘경주 관광특구 진흥계획’ 중간보고회를 열고 굿즈·미식·야간관광 등 8대 전략을 통해 글로벌 체류형 관광도시로 도약을 추진하는 전략을 수립하고 후속대책까지 논의하고 있다 |
천년의 문화 위에 새로운 산업이 자라나고, 시민의 참여가 정책으로 이어지는 구조. 이것이 바로 지방이 살아남는 길이다.
APEC 회의가 남긴 것은 선언문이 아니라, ‘도시가 스스로를 바꾸는 법’이다.
경주는 그 해답을 보여줬다. 천년의 유산과 21세기의 기술이 만나는 곳, 과거의 돌무더기 위에서 새로운 경제가 피어나는 곳.
천년 고도 경주는 이제 대한민국 지방경제의 새로운 모델로 부활하고 있다. 중앙의 그늘 아래 있던 지방이 아니라, 세계가 주목하는 지방의 시대가 시작됐다. 경주가 그 첫 페이지를 쓰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