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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의 식량안보가 흔들린다

베트남과 태국, 기후변화가 뒤흔드는 쌀의 나라들

메콩의 물길이 메마르고, 태국의 논은 갈라졌다

동남아 식량안보의 근간이 무너지고 있다

유경남 기자 | 기사입력 2025/10/31 [09:43]

동남아의 식량안보가 흔들린다

베트남과 태국, 기후변화가 뒤흔드는 쌀의 나라들

메콩의 물길이 메마르고, 태국의 논은 갈라졌다

동남아 식량안보의 근간이 무너지고 있다

유경남 기자 | 입력 : 2025/10/31 [09:43]

아시아의 젖줄이라 불리는 메콩강이 말라가고 있다.

태국과 베트남, 세계 최대 쌀 수출국으로 불리던 두 나라의 논밭이 지금 심각한 변화를 겪고 있다. 기후변화로 인한 폭염과 가뭄, 염수 침입, 불규칙한 강수는 이미 벼농사 체계를 무너뜨리고 있다.
한때 풍요의 상징이었던 쌀 논은 이제 생존의 전선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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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뭄으로 논이 갈라진 모습    

 

기후가 바꾼 쌀의 생태계

 

기후변화는 동남아시아의 쌀농사에 가장 직접적인 타격을 주는 요인이다.
벼는 수분과 온도에 극도로 민감한 작물이다. 그러나 최근 베트남과 태국에서는 평균기온 상승이 1~2도를 넘어섰고, 이로 인해 벼의 생육기간이 짧아지고 수확량이 줄어들고 있다.

 

특히 낮 기온이 29도를 넘는 날이 많아지면서 쌀의 낟알이 제대로 여물지 못하고, 품질 저하가 나타난다. 태국의 연구기관 보고서에 따르면, 고온 스트레스는 생산성 저하뿐 아니라 병충해 증가로 이어지며, 농약 사용량을 늘려 토양까지 피폐하게 만들고 있다.

 

반면 비가 와도 문제다. 집중호우와 태풍으로 인한 침수 피해는 더욱 잦아졌다. 홍수와 가뭄이 교차하는 ‘이상기후의 이중고’가 벼농사 현장을 뒤흔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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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남아지역의 기후위기    

 

메콩 삼각주의 위기: 물이 사라지는 논

 

베트남 남부 메콩 델타는 ‘세계의 쌀바구니’라 불려왔다.
국가 전체 쌀 생산의 절반 이상이 이곳에서 나온다. 그러나 지금 이 지역은 해수면 상승과 염수 침입으로 쌀농사의 기반 자체가 무너지고 있다.

 

메콩강 상류의 댐 건설과 기후변화로 인한 강수 패턴 변화가 겹치면서, 하류로 내려오는 담수량이 줄었다. 그 결과, 바닷물이 역류해 농지 깊숙이 스며드는 ‘염수 피해’가 확산되고 있다.


베트남 농업개발연구소는 이미 약 150만 헥타르의 논이 염해(鹽害)에 노출되어 있다고 보고했다.

 

논이 말라가자 농민들은 점점 쌀농사를 포기하고 있다. 대신 새우양식이나 채소 재배로 전환하는 경우가 늘고 있지만, 이 또한 안정적인 소득을 보장하지 못한다.
염분에 강한 벼 품종을 개발하려는 시도도 있지만, 농민이 직접 체감하는 현실은 냉혹하다. “이젠 물이 아니라 소금물이 들어온다”는 하류 농민의 푸념은, 단순한 환경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절규에 가깝다.

 

태국의 논밭도 흔들린다

 

태국 역시 쌀농사가 국가경제의 중요한 축이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반복되는 가뭄과 불규칙한 몬순으로 농업생산성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 태국 농업부 자료에 따르면 2024년 한 해 동안만도 쌀 생산량이 전년 대비 15% 이상 감소했다.

 

문제는 단순히 날씨가 아니라 구조적 변화다.


메콩강 유역을 따라 댐이 늘어나면서 수자원 배분이 불안정해졌고, 농민들은 논에 물을 대지 못해 이모작을 포기하고 있다. 한때 ‘황금쌀’이라 불리던 자스민 라이스의 수출량도 급감하고 있다.

 

기온 상승은 또 다른 문제를 낳는다. 일정 온도 이상이 되면 벼의 꽃가루가 불임이 되고, 알곡이 형성되지 않는다. 농민들은 이를 막기 위해 야간 관개, 차광막 설치 등 임시방편을 시도하지만 역부족이다.


게다가 고온 환경에서 병충해가 빠르게 번식하면서, 농약 비용과 생산비가 급증했다.

농민들의 부담은 커지고, 젊은 세대는 농촌을 떠난다.


태국 북동부 이싼 지역에서는 농업 인구가 지난 10년 사이 25% 이상 줄었다. 기후변화는 단순히 생산량의 문제가 아니라 농촌 공동체 자체를 해체시키고 있는 것이다.

 

기후변화와 농업의 역설

 

아이러니하게도 쌀농사 자체가 기후변화를 부추기는 요인 중 하나로 지목된다.
침수 논에서 발생하는 메탄가스는 강력한 온실가스로, 베트남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15%를 차지한다. 즉, 쌀농사는 기후변화의 피해자이자 가해자인 셈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제기구와 두 나라 정부는 ‘저탄소 벼농사(Low Emissions Rice)’ 모델을 확산하고 있다.


대표적인 방법이 ‘교대 관개(Alternate Wetting and Drying)’ 기술이다.
논을 계속 물에 잠기게 하지 않고 일정 주기로 물을 빼주면, 물 사용량은 30% 줄고 메탄 배출은 절반 가까이 감소한다.


베트남 메콩 델타의 일부 지역에서는 이 방식이 도입되어 농민의 물 사용 부담을 줄이고, 동시에 수익성을 높이는 성과를 내고 있다.하지만 이런 기술은 초기 비용과 교육이 필요하다.

소규모 농민이 많은 태국과 베트남에서 이를 전국적으로 확산시키려면 정부 지원과 국제 협력이 필수적이다.

 

동남아의 식량안보가 흔들린다

 

태국과 베트남은 세계 쌀 수출량의 약 45%를 차지한다.
이 두 나라의 생산 불안은 곧바로 세계 쌀값에 영향을 미친다.
실제로 2023년 인도 정부가 자국산 쌀 수출을 제한하자, 태국산·베트남산 쌀 가격이 급등했고 아프리카와 중동의 식량 수입국들이 큰 타격을 받았다.

 

기후변화로 인한 생산 감소는 이 같은 불안정성을 상시화시킬 수 있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동남아시아의 쌀 생산체계는 이미 기후위기에 취약한 임계점에 도달했다”고 경고했다.


특히 해수면 상승, 수자원 고갈, 토양 염화, 폭염·홍수의 반복 등은 향후 10년 내 쌀 생산량을 최대 20%까지 감소시킬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것은 단지 농업 문제가 아니다.
수억 명의 식량안보, 그리고 지역경제의 안정과 직결된 사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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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트남과 태국은 모두 ‘기후스마트 농업(Climate Smart Agriculture)’을 국가 전략    

 

기후스마트 농업으로의 전환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베트남과 태국은 모두 ‘기후스마트 농업(Climate Smart Agriculture)’을 국가 전략으로 채택했다.


물 관리 기술 혁신, 염해에 강한 벼 품종 개발, 드론 기반의 정밀농업, 인공지능을 활용한 병해충 예측 시스템 등이 도입되고 있다.

 

베트남에서는 국제미작연구소(IRRI)와 협력해 ‘저탄소 쌀 생산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며, 태국은 GIZ(독일국제협력공사)와 함께 ‘탄소중립 농업’을 목표로 한 시범단지를 운영하고 있다.


또한 두 나라 모두 농민 교육과 기후데이터 공유 시스템을 확대해, 농민이 날씨 변화를 실시간으로 예측하고 대응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특히, 물 절약형 농법과 토양 회복 프로그램은 초기에는 생소했지만 점차 효과를 입증하고 있다.


메콩 델타의 한 농민은 “이전에는 가뭄이 오면 모두 손을 놓았지만, 이제는 물을 저장하고 논을 교대로 관리하는 법을 배웠다”고 말한다.
기후 적응이 곧 생존 기술이 된 셈이다.

 

쌀의 미래, 인간의 미래

 

태국과 베트남의 논이 처한 위기는 단지 두 나라의 문제가 아니다.
쌀은 아시아 수십억 인구의 주식이며, 세계 식량시장의 근간이다.
기후변화가 벼농사를 위협한다는 것은, 곧 인류의 식탁이 흔들린다는 뜻이다.

한때 끝없는 풍요의 상징이던 논은 이제 인류가 맞닥뜨린 지구적 위기의 경고판이 되고 있다.


기후는 더 이상 배경이 아니다. 그것은 생존을 결정짓는 주체로 등장했다.

베트남의 염수에 잠긴 논, 태국의 갈라진 논바닥은 그저 자연의 변덕이 아니라, 인간이 만들어낸 기후 위기의 자화상이다.
이제 쌀을 지키는 일은 농민의 문제가 아니라 인류 전체의 과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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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시민신문 대표
시민포털 전남 지부장
man908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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