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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동남아시아, ‘기후의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

— 바다가 잠기고, 도시가 끓는다

— 농업·어업·관광 모두 흔들리는 생존의 경계

— 아시아의 온난화 속도, 세계 평균의 두 배

전용현 기자 | 기사입력 2025/10/31 [09:33]

[기획특집] 동남아시아, ‘기후의 경고음’이 울리고 있다

— 바다가 잠기고, 도시가 끓는다

— 농업·어업·관광 모두 흔들리는 생존의 경계

— 아시아의 온난화 속도, 세계 평균의 두 배

전용현 기자 | 입력 : 2025/10/31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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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중호우와 뜨거운 날이 계속되면서 동남아도 위기에 빠져 있다.    

 

지구의 온도가 오르고 있다. 그러나 그 상승선이 가장 가파르게 그려지는 곳은 유럽도, 북미도 아니다. 바로 인도네시아·베트남·태국·필리핀 등으로 대표되는 동남아시아다. 세계에서 기후변화의 영향을 가장 직접적으로 체감하는 지역이 바로 이곳이다. 바다는 점점 밀려오고, 열대의 폭우는 도시를 마비시키며, 농지는 염수에 잠긴다. 경제와 생태, 그리고 인간의 삶까지, 이 지역의 모든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

 

가속되는 온난화, 삶의 속도를 위협하다

 

기상기록을 살펴보면, 동남아시아는 지난 60년간 매 10년마다 0.14도에서 0.20도씩 기온이 상승했다. 이는 단순한 숫자 변화가 아니다. 세계 평균보다 두 배 가까운 속도다. 태국 방콕,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베트남 하노이 등 주요 도시는 이미 평균 여름기온이 35도를 넘어섰다. 문제는 습도다. 동남아의 폭염은 ‘체감온도’로 40도를 넘는 날이 잦다.

 

사람들은 더위를 피하기 위해 에어컨을 켜지만, 그 전기가 화석연료에서 나온다는 역설이 이 지역의 딜레마다. 더 더워질수록 전력소비가 늘고, 이는 다시 온실가스를 배출해 기온을 더 높인다. 그 결과는 분명하다. 도시는 밤에도 식지 않고, ‘열섬(heat island)’ 현상은 도시민의 건강을 직접 위협한다. 탈수, 열사병, 호흡기 질환이 일상화되고 있으며, 노약자와 저소득층은 가장 먼저 피해를 입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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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남아시아의 여름철 기온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높아지고 있다.    

 

폭우와 가뭄이 동시에, 변하는 비의 얼굴

 

기후변화의 가장 가시적인 신호는 비다. 과거 계절마다 일정했던 동남아의 강수 패턴이 무너지고 있다. 한때 ‘몬순의 나라’라 불리던 이 지역에서는 이제 폭우와 가뭄이 같은 해에 번갈아 닥친다.

 

베트남 메콩델타에서는 우기 홍수로 논밭이 쓸려나간 지 몇 달 뒤, 건기에는 물이 말라 농사를 포기하는 일이 반복된다. 태국 북부에서는 100년 만의 폭우가 빈번해졌고, 필리핀에서는 해마다 20개 이상의 태풍이 상륙한다.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는 이미 ‘세계에서 가장 빨리 가라앉는 도시’로 불린다. 도시의 절반 이상이 해수면보다 낮고, 매년 1~2cm씩 지반이 침하되고 있다.

 

폭우는 단순히 물의 문제가 아니다. 농산물 생산량이 급감하면서 식량 가격이 급등하고, 도시 빈민층의 생존을 직접적으로 압박한다. 기후재해가 경제위기로, 다시 사회불안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형성되고 있다.

 

해수면 상승, 바다가 땅을 삼키다

 

동남아시아의 다섯 개 주요 도시 — 자카르타, 방콕, 호치민, 마닐라, 하노이 — 는 공통의 위기를 공유한다. 바로 해수면 상승이다. 이 지역은 인구의 절반 이상이 해안가에 살며, 경제의 70%가 저지대에서 이뤄진다. 해수면이 1미터만 올라가도 약 7천만 명이 거주지를 잃는다는 경고가 이미 나와 있다.

 

베트남 메콩델타에서는 염수 침투가 심각하다. 농민들은 바닷물의 소금기 때문에 벼농사를 포기하고, 대신 새우 양식으로 전환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또 다른 문제를 낳는다. 과도한 양식으로 인한 오염, 생태계 붕괴, 지역경제 불균형이 뒤따르고 있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의 맹그로브 숲은 한때 자연의 방파제 역할을 했지만, 벌목과 개발로 절반 이상이 사라졌다. 이로 인해 해안 침식이 가속화되고, 해일 피해는 더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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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에서는 팜유 농장 확장을 위한 산림 벌목으로 숲을 태우고 있다.    

 

숲이 타고, 바다가 산성화된다

 

동남아의 열대우림은 ‘지구의 허파’라 불렸지만, 이제는 이산화탄소의 배출원이 되고 있다.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에서는 팜유 농장 확장을 위한 산림 벌목이 계속되고, 건기에는 산불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연기로 뒤덮인 도시에서 호흡기 질환자가 폭증하고, 이웃국가까지 미세먼지가 넘어간다.

 

한편 바다는 점점 산성화되고 있다. 해양 온도 상승으로 산호초가 백화현상을 보이며, 어획량이 급격히 줄고 있다. 인도네시아 발리나 필리핀 팔라완 등 관광지에서는 이미 생태계 붕괴가 현실이 됐다. 바다의 색이 변하고, 어민들은 하루가 다르게 줄어드는 어획량을 체감한다.

 

이 변화는 단지 환경 문제가 아니다. 어업·관광업에 생계를 의존하는 수천만 명의 생활이 흔들리고 있다. 기후변화는 단순히 ‘날씨의 변화’가 아니라 ‘생존의 변화’인 셈이다.

 

사회경제적 충격, 기후불평등의 시작

 

기후재해는 가난한 이들에게 더 가혹하다. 필리핀에서는 태풍 피해가 가장 큰 지역일수록 의료 접근성이 낮고, 재난 후 복구 속도도 느리다. 빈곤층은 에어컨이 없어 폭염 속에서 일해야 하고, 홍수가 나면 가장 먼저 집을 잃는다.

 

기후난민도 늘고 있다. 유엔은 동남아에서만 2050년까지 최대 1억 명의 ‘기후 이주민’이 발생할 수 있다고 전망한다. 이들은 해수면 상승, 홍수, 산사태 등으로 삶의 터전을 잃고 도시로 몰려든다. 하지만 일자리도, 주거도 부족하다. 사회적 긴장과 범죄 증가, 공공서비스 붕괴 등 2차 피해가 이어진다.

 

이처럼 기후변화는 단순한 환경문제가 아니라,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구조적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기후 불평등(climate inequality)’이라는 말이 생겨난 이유다.

 

 

왜 동남아시아가 특히 취약한가

 

이 지역은 인구밀도가 높고, 해안가·저지대 도시가 많다. 경제구조상 농업·어업·관광 등 자연조건에 크게 의존하기 때문에, 기후 변화에 대한 충격이 곧 경제위기로 직결된다.

 

또한 각국의 제도적 대응력이 상대적으로 낮고, 기후대응 인프라 투자가 미흡하다. 홍수 대비 배수시설, 해안 방조제, 도시 냉각 인프라 등이 선진국 수준에 한참 못 미친다. 무엇보다 기후위기는 국경을 넘는다. 메콩강, 남중국해, 말라카 해협 등은 여러 나라가 공유하는 생태·경제의 공간이다. 어느 한 나라의 대응만으로는 위기를 막을 수 없다.

 

미래를 위한 세 가지 방향

 

첫째, 적응(adaptation) 이 시급하다.

 

해안 방어체계 강화, 도시 그린 인프라 조성, 수자원 관리체계 개편 등이 필수적이다. 농업에서는 기후내성 품종 개발과 스마트 관개 시스템 도입이 진행되고 있다.

 

둘째, 완화(mitigation) 정책이 병행되어야 한다.

 

동남아는 여전히 석탄과 천연가스에 의존하는 에너지 구조를 갖고 있다. 재생에너지 전환 속도가 느리다. 그러나 태양광·지열·수력 등 잠재력이 크기 때문에, 녹색금융을 통한 민간 투자 확대가 해답이 될 수 있다.

 

셋째, 지역 협력(regional cooperation) 이 중요하다. 메콩강 유역의 수자원 관리, 해양쓰레기 공동 대응, 산불 조기경보시스템 구축 등은 각국이 함께 해야 가능한 일이다. 또한 ASEAN 차원의 ‘기후연합’이 실질적 행동 플랫폼으로 강화될 필요가 있다.

 

 

 인간이 중심이 되는 기후정책을

 

기후정책의 중심에는 기술보다 ‘사람’이 있어야 한다. 사회적 형평성과 취약계층 보호가 전제되지 않는 녹색전환은 지속될 수 없다. 필리핀 마닐라의 빈민가에서, 베트남 메콩델타의 농촌에서,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의 해안가에서, 지금도 수많은 이들이 매일의 기후를 견디며 살아간다.

 

이들의 삶은 거대한 통계의 뒷면에서 사라져선 안 된다. 동남아시아의 기후위기는 인류 전체의 경고음이다. 더위와 홍수, 가뭄과 해일이 아닌, 연대와 변화, 그리고 지속가능성으로 이 지역의 미래를 바꿔야 한다.

 

 

지금 바다는 말없이 차오르고 있다. 그리고 그 바다는, 언젠가 우리의 해안에도 닿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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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포털 지원센터 대표
내외신문 광주전남 본부장
월간 기후변화 기자
사단법인 환경과미래연구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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