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어떻게 시작되는가 - 1차 세계대전과 오늘의 기시감“몽유병자처럼 걷는 인류의 반복된 착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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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차 세계대전을 촉발시킨 사라예보 사건의 자동차 |
세계사의 거대한 전환점이었던 제1차 세계대전은 단순히 한 나라의 오판으로 시작된 전쟁이 아니었다.
크리스토퍼 클라크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몽유병자들(The Sleepwalkers)』에서, 당시 유럽의 지도자들이 결과를 충분히 인식하지 못한 채 각자의 이익과 명분에 몰두하다가 스스로 파국으로 걸어 들어갔다고 말한다.
그는 이를 ‘몽유병자처럼 걸어 들어간 전쟁’이라 표현한다. 그리고 그가 던지는 가장 섬뜩한 경고는, 21세기 초 인류의 현재가 그때와 닮아 있다는 점이다.
사라예보에서 울려 퍼진 총성은 단지 하나의 사건에 불과했다. 1914년 6월 28일, 세르비아 청년 가브릴로 프린치프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태자 부부를 암살한 사건이 일어났다.
그러나 이것이 단번에 유럽 전역을 전쟁으로 몰아넣은 것은 아니었다. 오스트리아-헝가리가 세르비아에 선전포고를 한 것은 한 달 뒤인 7월 28일이었다.
그 사이 각국의 외교적 협의, 동맹국 간 압박, 군비 동원령과 같은 연쇄 반응이 이어졌고, 독일·러시아·프랑스·영국이 잇달아 참전하며 인류는 참호전이라는 지옥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 결과 1,500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고, 유럽의 번영은 한순간에 무너졌다.
이 비극의 근본 원인을 놓고 역사학자들은 지금까지도 논쟁을 이어오고 있다. 극단적인 민족주의, 식민지를 둘러싼 제국주의 경쟁, 군국주의적 사고, 그리고 삼국협상과 삼국동맹으로 갈라진 복잡한 동맹 체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분석이 주류다.
특히 오스트리아-헝가리와 러시아는 발칸반도를 둘러싸고 세력권을 다투며 서로를 자극했고, 세르비아의 극단적 민족주의는 이를 불붙이는 도화선이 되었다.
각국의 정치 지도자들은 자국의 명예와 위신, 동맹의 의무, 국민의 감정을 앞세워 타협 대신 무력에 의존했다. 결국 작은 사건이 세계대전으로 비화한 것이다.
전통적으로는 독일의 책임이 가장 크게 지목되어 왔다. 전쟁이 끝난 뒤 체결된 베르사유 조약 제231조는 독일과 그 동맹국이 전쟁의 모든 피해에 대한 책임을 진다고 명시했다.
이른바 ‘전쟁 책임 조항(War Guilt Clause)’이다. 하지만 클라크 교수는 이 일방적 규정을 비판한다. 그는 독일뿐 아니라 오스트리아, 러시아, 프랑스, 영국, 세르비아 모두가 몽유병자처럼 스스로의 선택에 취해 있었다고 지적한다.
각국의 지도자들은 자신들이 합리적이고 정당하다고 믿었고, 위기 관리보다 체면과 이익을 우선시했다. “그들은 아무도 전쟁을 원하지 않았지만, 아무도 전쟁을 막지 않았다.” 이것이 『몽유병자들』이 던지는 냉혹한 진단이다.
세르비아에 대한 클라크의 평가는 특히 도발적이다. 그는 세르비아의 민족주의가 암살 배후 세력에게 영향을 주었고, 정부가 이를 묵인한 점을 비판한다. 당시 세르비아가 약소국이라는 이유로 면죄부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전통적인 ‘가해자 독일 vs 피해자 세르비아’의 구도를 뒤집으며, 국제정치의 도덕적 복잡성을 드러낸다. 클라크는 “전쟁은 단 한 명의 범죄자가 아니라, 수많은 자만심과 오판의 결과였다”고 말한다.
이처럼 『몽유병자들』은 “누가 전쟁을 일으켰는가(Who)”보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는가(How)”에 초점을 맞춘다.
각국의 외교문서와 정치적 맥락을 면밀히 추적하며, 복잡한 이해관계 속에서 감정과 오해가 어떻게 증폭되어 파국으로 이어졌는지를 보여준다.
독자는 마치 대하드라마를 보는 듯한 서사 속에서, 인류의 집단적 착각이 얼마나 거대한 비극을 낳을 수 있는지를 체감한다.
그리고 이 서사는 오늘날에도 낯설지 않다. 인류는 다시금 기술적 번영과 상대적 평화의 시기를 누리고 있다.
인공지능과 양자컴퓨터, 우주산업, 재생에너지 등 새로운 기술이 인류의 한계를 넘어서는 듯 보인다. 전 세계의 주요 국가들은 경제적으로 긴밀히 연결되어 있으며, 2차 세계대전 이후 80년 가까운 기간 동안 세계대전 규모의 충돌은 없었다.
그러나 그 평화의 껍질 아래에서는 우크라이나 전쟁, 중동 분쟁, 남중국해 긴장, 미중 패권 경쟁 등 새로운 화약고들이 들끓고 있다. 기술의 발전과 글로벌화가 오히려 경쟁의 불씨가 되는 역설적 상황이다.
트럼프와 푸틴의 회담이 아무런 성과 없이 끝났고, 젤렌스키는 협상 테이블에서 제외되었다. 푸틴이 수많은 젊은 러시아 병사의 희생과 경제적 타격을 예상했더라도 이 전쟁을 시작했을까? 이 질문은 1914년의 유럽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각국의 지도자들은 모두 자신이 옳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 믿음은 인간의 오만이었다.
오늘의 세계 역시 그와 다르지 않다. 국익과 이념, 기술과 안보의 명분 속에서 인류는 또다시 ‘몽유병자처럼’ 위기를 향해 걷고 있는지도 모른다.
역사는 반복되지 않지만, 인간은 반복한다. 클라크 교수가 던지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과거의 비극은 결코 남의 일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 우리는 얼마나 ‘깨어 있는가’. 20세기의 몽유병자들이 전쟁의 불길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면, 21세기의 우리는 그 어둠을 비추는 이성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1차 세계대전이 남긴 가장 큰 교훈이며, 지금 우리가 지켜야 할 최소한의 역사적 책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