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니뇨와 라니냐의 변화, 그리고 제트기류의 비밀― 적도 바다의 온도 변화가 하늘의 바람길을 바꾼다
① 바다의 온도가 하늘의 길을 바꾼다
태평양 적도 부근의 미묘한 온도 변화가 전 세계 날씨를 뒤흔든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기상학자들은 이 현상을 ‘엘니뇨(El Niño)’와 ‘라니냐(La Niña)’라 부른다. 엘니뇨는 적도 태평양의 해수면 온도가 평년보다 높아지는 현상이며, 라니냐는 그 반대다. 이 두 현상은 바다의 ‘숨결’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하늘의 ‘혈류’에 해당하는 제트기류(jet stream)까지 흔든다. 즉, 해수면의 따뜻함과 차가움이 지구 대기의 흐름, 폭풍의 길, 한파의 세기까지 바꾸는 거대한 도미노의 출발점인 셈이다.
엘니뇨 때 따뜻해진 해수는 상층 대기의 온도를 올리고, 라니냐 때 차가워진 바다는 대기의 압력 구조를 변형시킨다. 이 과정에서 대류 활동이 변하며, 무역풍이 강해지거나 약해지고, 결국 대기 상층의 제트기류의 ‘위치’와 ‘세기’가 달라진다. 지상에서 보이지 않는 바람의 길이지만, 그 흐름 하나가 북미의 폭설, 아시아의 가뭄, 남미의 홍수를 결정짓는다.
② 제트기류, 하늘 위의 보이지 않는 강
제트기류는 고도 약 9~12 km 부근, 여객기가 날아다니는 높이에서 시속 200~400km로 흐르는 강력한 바람대다. 이 바람은 적도와 극지방의 온도 차이에서 생겨나며, 마치 하늘의 띠처럼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른다. 북반구에는 주로 두 개의 제트기류가 있다. 중위도에서 한파와 폭풍을 몰고 오는 극 제트기류(Polar Jet), 그리고 좀 더 남쪽에서 아열대 상공을 흐르는 아열대 제트기류(Subtropical Jet)다.
제트기류는 날씨의 설계도이자 지구의 기상 밸브다. 그 위치가 약간만 바뀌어도, 어떤 지역은 폭설을 맞고 다른 지역은 기록적인 고온을 겪는다. 그렇기에 ENSO(엘니뇨·라니냐)는 제트기류를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손’이다. 이 손이 남쪽으로 제트를 밀면 미국 남부에는 비와 폭풍이, 북쪽으로 당기면 캐나다와 한반도에는 한파가 닥친다.
③ 엘니뇨, 남쪽으로 내려앉는 바람길
엘니뇨가 발생하면 태평양 중앙~동부의 바다가 따뜻해지면서, 상층의 대기 구조가 바뀐다. 이때 아열대 제트기류가 강화되고, 전체 흐름이 남쪽으로 ‘움푹’ 내려앉는다. 북태평양 상공에서는 서풍의 흐름이 남부 미국을 관통하면서 폭우와 폭풍을 일으키고, 반대로 북부 지역은 한기가 차단되어 비교적 온화해진다.
과학자들은 이를 “엘니뇨의 남하한 제트 효과”라고 부른다. 제트기류가 평년보다 남쪽으로 치우치면, 한국이나 일본에는 다소 온화한 겨울이 찾아오는 경향이 있다.
다만 이런 패턴은 매년 동일하지 않다.
엘니뇨의 세기와 위치—즉, ‘중앙형’(Modoki)인지 ‘동부형’인지에 따라 제트의 형태가 달라지며, 북극진동(AO)이나 북서태평양 고기압의 세기에 따라도 결과는 뒤바뀐다. 결국 엘니뇨는 “온난화의 전령”이 아니라 “불확실성의 신호”이기도 하다.
④ 라니냐, 요동치는 제트와 극단의 겨울
라니냐가 등장하면 반대로 제트기류는 요동친다. 차가워진 바다는 무역풍을 강화시키고, 태평양 서쪽의 뜨거운 공기를 더 강하게 끌어올린다. 그 결과 상층 대기의 온도 구배가 커져 제트기류의 ‘물결’이 확대된다. 즉, 바람의 흐름이 더 북쪽과 남쪽으로 크게 휘어지며, ‘파도치는’ 형태를 띠게 된다.
이렇게 물결치는 제트기류는 북미와 아시아에 극단적인 날씨를 안긴다. 미국 북부에는 한파와 폭설이 잦아지고, 남부는 건조해지며 가뭄이 심화된다. 동아시아에서도 북서쪽에서 내려오는 찬 공기가 자주 남하해 한국과 일본에 한파를 가져올 수 있다. 2020~2022년 연속 라니냐 때 한반도를 덮친 강추위 역시 이런 패턴의 결과였다. 제트기류의 요동은 단순한 바람의 흔들림이 아니라, ‘대기 에너지의 불균형이 표출되는 몸짓’이다.
⑤ 한국과 지구가 읽어야 할 하늘의 신호
기상청과 세계기상기구(WMO)는 최근 ENSO와 제트기류의 상관관계 연구를 더욱 강화하고 있다. 특히 기후변화가 진행되면서, 엘니뇨·라니냐의 패턴이 과거와 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20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엘니뇨는 3~5년 주기로 발생했으나, 최근에는 그 주기가 짧아지고 강도가 비대칭적으로 변하고 있다. 이는 제트기류의 구조에도 변화를 일으켜, 예측 불가능한 폭염·한파·국지적 호우로 이어진다.
한반도의 겨울도 예외가 아니다. 엘니뇨 시기엔 상대적으로 온화하지만 폭우와 미세먼지가 늘고, 라니냐 때는 강한 북서풍과 폭설이 잦다.
그러나 이는 확정적 패턴이 아니라 “가능성의 분포”다.
따라서 과학자들은 ENSO와 제트기류의 상관관계를 단순한 통계가 아니라, 지구 시스템의 경고음으로 읽어야 한다고 말한다.
하늘의 바람길은 단지 날씨의 변수가 아니라, 인류가 맞닥뜨릴 기후위기의 나침반이다. 적도의 바다에서 일어난 작은 온도 변화가, 결국 서울의 한파와 로스앤젤레스의 폭우를 함께 흔들고 있다. 엘니뇨와 라니냐, 그리고 제트기류의 춤사위는 지금도 지구의 균형을 묻고 있다. 그 균형이 무너질 때, 인류는 비로소 “바람이 보이지 않는 이유”를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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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과미래연구소 이사
시민포털지원센터 이사 월간 기후변화 기자 내외신문 전북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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