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대사관, ‘적색수배자 방치’ 논란 -제 발로 찾아온 사기 총책 놓친 외교의 그림자120억 연애빙자 사기범, 여권 재발급 위해 대사관 직접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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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진=MBC유투브 캡쳐 |
지난해 11월, 강 모 씨는 캄보디아 프놈펜에 위치한 한국 대사관을 찾아 여권 재발급을 신청했다. 그러나 시스템 상 이미 ‘사기 혐의로 인터폴 적색수배’가 걸려 있던 인물이었기에 여권 발급은 즉시 중단됐다. 이 사실을 확인한 대사관 직원은 놀랍게도 강 씨에게 직접 “수배 상태”임을 알려주었고, 나아가 “담당 형사와 통화를 원한다”는 그의 요구를 받아들여 국내 경찰과의 통화를 중개했다. 이 통화에서 형사는 귀국을 권유했으나 강 씨는 “지금은 갈 수 없는 상황”이라며 애매하게 둘러댔고, 통화 후 대사관을 빠져나갔다. 말 그대로 제 발로 찾아온 범죄 총책을 ‘그냥 돌려보낸’ 셈이었다.
더 충격적인 것은 대사관 직원의 태도다. “수배자가 돼 있다고 해서 대사관에 경찰을 불러 체포하는 건 모양새가 안 좋다”며, “민원인을 제 발로 온 사람이라고 잡아가라고 하는 건 부담스럽다”고 답했다. 이는 사실상 외교적 체면을 이유로 국제수배범을 놓아준 것과 다름없다. 담당 형사가 “도피할 수도 있겠다”는 우려를 표하자, 직원은 “그럴 수도 있죠, 본인이 몰랐으니까 찾아왔겠죠”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결국 대사관이 취한 조치는 강 씨의 여권 무효화가 전부였다. 강 씨는 석 달 뒤, 인터폴 공조로 캄보디아 현지에서 체포됐다. 하지만 그 사이 추가 피해 가능성과 도피 자금 은닉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외교부는 “대사관은 체포 권한이 없다”는 원론적 입장을 내놨지만, 문제의 본질은 권한이 아니라 ‘대응 체계의 무력화’에 있다. 캄보디아 주재 한국 대사관에는 통상 경찰 영사가 상주하고 있으며, 현지 공조 체계상 적색수배자 발견 시 즉시 현지 경찰과 협력해 구금 및 신병 확보가 가능하다. 그럼에도 대사관 직원은 ‘체포 부담’을 이유로 이 절차를 회피했다. 이는 단순한 행정 판단 미스가 아니라, 국제 공조 체계에 대한 명백한 직무유기나 다름없다.
더 큰 문제는 이런 사례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이다. 캄보디아는 최근 몇 년간 한국인 범죄 도피처로 악명이 높다. 국내에서 수배된 보이스피싱, 리딩방 사기, 마약 거래 조직원들이 현지에 둥지를 틀고 있으며, 일부는 합법 체류 신분을 유지한 채 온라인을 통해 범죄를 계속하는 경우도 있다. 현지 법집행기관과 외교공관 간 협력 부재, 비자 관리의 허술함, 그리고 대사관의 ‘형식적 행정’이 이러한 범죄 도피를 방조하고 있다는 비판이 이어진다.
이번 사건은 단지 한 사기범의 일탈이 아니라, 한국 외교 행정이 얼마나 현실감각을 잃고 있는지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다. 국제수배자의 ‘자진 방문’이라는 드문 기회를 허무하게 놓친 것은 국가의 신뢰와 공조체계 모두를 무너뜨리는 일이다. 대사관이 ‘민원인 예의’라는 명분을 내세워 수배범을 보호하는 순간, 외교의 존엄은 이미 사라졌다. 캄보디아는 지금, 단순한 행정의 실수가 아니라 ‘범죄 방조국’이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서라도 철저한 진상조사와 제도 개선이 불가피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