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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론토크라시(‘노인 지배체제’)와 기본사회- ‘청년 없는 민주주의’의 구조적 위기

고령화된 권력, 사회계약의 균형이 무너진다

청년의 정치 효능감이 사라진 이유

경제 불안과 기본사회의 필요성

제론토크라시를 넘어선 ‘기본사회의 대안정치’

세대 간 연대와 기본소득, 새로운 사회계약의 출발점

전태수 기자 | 기사입력 2025/10/20 [09:54]

제론토크라시(‘노인 지배체제’)와 기본사회- ‘청년 없는 민주주의’의 구조적 위기

고령화된 권력, 사회계약의 균형이 무너진다

청년의 정치 효능감이 사라진 이유

경제 불안과 기본사회의 필요성

제론토크라시를 넘어선 ‘기본사회의 대안정치’

세대 간 연대와 기본소득, 새로운 사회계약의 출발점

전태수 기자 | 입력 : 2025/10/20 [09:54]

‘제론토크라시(Gerontocracy)’는 단순히 고령층이 사회를 주도하는 현상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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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론토크라시는 ‘거리의 지배’를 뜻하는 신조어로, 기술과 자본이 물리적 거리를 초월해 사회를 통제하는 구조를 말한다. 민주주의가 형식적으로 존재하지만, 실제 권력은 시민과 멀어진 원격 통치 형태로 작동한다. 초연결 시대의 역설적 단절, 즉 가까이 연결돼 있으나 실제로는 멀어진 정치의 풍자를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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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민주주의의 균형이 깨진 상태, 즉 사회계약의 한 축이 특정 세대에 과도하게 기울어진 구조적 불균형이다.

 

정치인들은 재선을 위해 투표율이 높은 노년층의 표를 의식하고, 이들의 복지·연금·세제 혜택을 중심으로 정책을 설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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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픽사베이) ‘팬리(Pan-rich)’와 ‘벼락거지’라는 자조적 신조어가 상징하듯, 청년층은 아무리 노력해도 자산 형성이 불가능하다고 느낀다.    

 

반면 청년층의 주거, 노동, 미래투자 정책은 장기적 성과로 평가되기 때문에 ‘표 계산’의 논리에서 밀려난다. 결국 제론토크라시는 민주주의가 노년의 이익을 위해 작동하고, 청년의 미래를 담보로 삼는 구조로 전락한 상태를 의미한다.

 

이 구조 속에서 청년의 정치 효능감은 빠르게 소진되고 있다. OECD 보고서에 따르면 18~37세 청년층의 정부 신뢰도는 29%에 불과하지만, 50세 이상은 46%에 달한다.

 

이는 단순히 정치 불신이 아니라 ‘참여의 무력감’을 드러낸다. 청년들은 자신들의 목소리가 제도 안에서 반영되지 않는다고 느끼며, 투표보다 시위와 보이콧, 온라인 캠페인 같은 비제도권 행동을 택한다.

 

다시 말해, 제론토크라시는 청년층의 민주적 참여 기반을 갉아먹고 있다.

 

이 문제의 뿌리는 경제적 불안정에 있다.

 

코로나 이후 경기 회복 국면에서도 청년 실업률은 두 자릿수를 유지하고, 물가는 오르는데 임금은 정체되어 있다.

 

‘팬리(Pan-rich)’와 ‘벼락거지’라는 자조적 신조어가 상징하듯, 청년층은 아무리 노력해도 자산 형성이 불가능하다고 느낀다.

 

반면 기성세대는 부동산·연금 등으로 자산을 불려왔다. 이런 격차는 단순한 세대 문제를 넘어 ‘구조적 빈곤의 세습’을 의미한다.

 

이때 제시되는 대안이 바로 기본사회(Basic Society) 개념이다.

 

기본사회란 모든 국민이 최소한의 삶의 기반을 보장받고, 세대와 계층을 막론해 인간다운 존엄을 유지할 수 있도록 사회 시스템을 재설계하는 구조를 말한다.

 

이는 단순한 복지정책이 아니라, 경제적 불평등과 정치적 불신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사회계약이다. 기본소득, 기본주거, 기본교육, 기본의료가 결합된 형태로, 국민이 ‘시민으로서의 안정’을 느끼며 사회참여의 동력을 되찾게 하는 것이 핵심이다.

 

즉, 제론토크라시로 인한 세대 간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유일한 실질적 처방이 ‘기본사회’다.

 

청년이 거리에서 외치는 분노는 단순한 항의가 아니라 ‘존재의 불안정’에 대한 구조적 저항이다. 지금의 청년은 과거처럼 “노력하면 올라갈 수 있다”는 믿음 대신, “아무리 해도 구조가 막혀 있다”는 체념 속에 살고 있다.

 

기본사회는 바로 이 절망을 뒤집는 제도적 틀이다. 일정한 기본소득이 보장되면 청년들은 단기 생존이 아닌 장기적 혁신에 집중할 수 있고, 기본주거가 확보되면 ‘내 집 마련의 좌절’이 아닌 ‘삶의 출발점’을 설계할 수 있다.

 

프랑스의 연금개혁 반대 시위나 영국의 브렉시트 이후 청년층의 분노도, 결국 ‘기본적 안정의 박탈’에서 비롯된 현상이다. 연금 개혁은 청년에게 일자리와 재정 부담의 이중 타격을 주었고, 브렉시트는 자유로운 교육·취업 기회를 잃게 했다.

 

이 두 사건 모두, 청년이 미래를 설계할 권리를 박탈당한 결과였다. 한국 사회도 다르지 않다. 청년세대는 고용 불안, 주거난, 자산 격차, 정치 무력감이라는 네 겹의 벽에 갇혀 있다. 하지만 정치권은 여전히 ‘연금개혁’, ‘노년 복지’, ‘부동산 완화’ 중심의 단기정책만 되풀이한다.

 

이제 민주주의의 갱신은 ‘기본사회’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기본사회는 단순히 복지확대가 아니라, 세대 간 공정성을 회복하고 정치의 지속가능성을 확보하기 위한 ‘새로운 사회계약 모델’이다.

 

기본소득은 청년의 최소한의 경제적 자립을 보장하고, 기본주거와 교육은 미래세대의 불안감을 줄인다. 이렇게 청년층의 안정이 회복될 때 비로소 제론토크라시의 고착된 권력구조를 흔들 수 있다.

 

청년 없는 민주주의는 존재할 수 없다.

 

제론토크라시가 지배하는 사회에서는 혁신이 멈추고, 사회적 활력은 급격히 쇠퇴한다. 반대로 기본사회는 청년과 노년이 공존할 수 있는 새로운 계약 구조를 제시한다.

 

‘기본적 인간 존엄’을 중심에 둔 사회는 더 이상 표 계산의 민주주의가 아니라, 미래 세대의 신뢰를 회복하는 지속가능한 민주주의로 나아갈 수 있다. 이제 정치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하다.

 

청년을 위로하는 공약이 아니라, 청년이 다시 참여할 수 있는 ‘기본사회’의 토대를 세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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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기후변화 발행인
내외신문 대표 기자
금융감독원, 공수처 출입기자
사단법인 환경과미래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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