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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청문회에서 젊은 수사관 둘이 보여준 태도는 중수청 논의의 허상을 그대로 드러냈다. 이들은 장시간 이어진 의원들의 질의에도 흔들림 없이 검찰 조직의 논리를 대변했다. 개인적 소신의 문제가 아니라, 검찰수사관 집단이 지닌 구조적 속성이 고스란히 드러난 순간이었다.
검찰수사관은 오랫동안 ‘얼굴 없는 수족’으로만 기능해왔다. 그 과정에서 내부 고발이나 양심 선언은 단 한 차례도 없었다. 오히려 상급자의 지시에 따라 수사 조작에 협력하거나, 상관의 책임을 대신 떠안고 유죄 판결을 감수하는 사례가 반복되었다. 특감반 사태의 김태우, 정경심 사건의 포렌식 분석관 논란은 그 전형적 사례다. 검찰수사관이 검사 못지않게 권력의 그늘에 깊이 물들어 있다는 방증이다.
그렇다면 중수청은 누구를 위한 기구인가. 겉으로는 검찰 권력의 분산을 명분으로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검찰에서 ‘제거된’ 수사 인력을 재활용하려는 장치일 뿐이다. 검사는 변호사 개업으로 빠져나가고, 남는 수천 명의 수사관들이 중수청을 채울 터다. 그런데 이들이 보여온 조직 충성의 문화, 상명하복의 습성이 그대로라면 새 기관은 개혁이 아니라 또 다른 권력 집단의 탄생에 불과하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새 간판’이 아니다. 검찰 권력의 부패 구조를 청산하고, 수사 권한과 책임을 명확히 하는 것이다. 굳이 새로운 수사청을 만드는 대신 경찰로 일원화해 권한을 집중하고, 그에 걸맞은 책임과 감시 체계를 강화하는 편이 훨씬 투명하다.
청문회에서 드러난 두 젊은 수사관의 태도는 단순한 실망이 아니라 경고다. ‘소중한 수사 인력’이라는 이름으로 기득권을 보전하려는 시도를 국민은 더 이상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정부와 국회는 중수청이라는 미명 하에 또 다른 권력 보존 장치를 만들 것이 아니라, 진정한 권력 분산과 책임성 강화에 집중해야 한다.
개혁은 새로운 간판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진짜 개혁은 잘못된 관행과 부역의 고리를 끊는 데서 시작된다. 중수청 설립 논의는 이제 그 본질을 냉정히 다시 따져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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