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사회·지배구조(ESG)는 기업 경영의 새로운 지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그러나 ESG 보고서가 쏟아지며 ‘착한 기업’이라는 이미지를 앞다퉈 내세우는 가운데, 실제로는 위반 사실을 축소하거나 누락하는 ‘그린 워싱(Greenwashing)’ 행위가 곳곳에서 드러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포스코와 현대건설의 ESG 보고서는 실제 환경법규 위반 건수를 누락하거나 제재 사실을 은폐해 작성됐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기업들이 내놓는 ESG 보고서의 신뢰성에 대한 의문이 커지면서, ESG 공시의무화를 앞두고 제도적 정비와 통합된 기준 마련의 필요성이 시급히 대두되고 있다.
포스코는 ESG 경영을 선도하는 대표 기업으로 알려져 있으나, 그 이면에는 보고서상의 수치와 실제 위반 사례 간 괴리가 존재한다.
포스코 홀딩스의 ESG 보고서에는 환경법규 위반 건수가 53건으로 기재되어 있으나, 환경부가 집계한 실제 건수는 무려 103건에 달했다. 이에 대해 포스코 측은 집계 과정의 착오였다고 해명했지만, 투자자나 시민사회가 ESG 정보를 바탕으로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평가한다는 점에서 단순한 실수로 보기 어려운 대목이다.
특히 포스코 ENC는 최근 3년간 9건의 환경법규 위반을 저질렀고, 포스코 모빌리티 솔루션 공장은 환경오염 물질을 측정하지 않아 경고 처분을 받은 바 있다. 이러한 사례는 ESG 보고서가 단지 ‘이미지 포장용 문서’로 활용되고 있음을 방증한다.
현대건설의 사례도 문제의 심각성을 보여준다. 현대건설은 ESG 보고서에서 환경법규 위반에 따른 비금전적 제재가 한 건도 없다고 명시했지만, 실제로는 환경부로부터 3건의 제재를 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현대건설 측은 “제재가 심각하지 않기 때문에 보고서에 기재하지 않았다”고 해명했으나, ESG 보고서의 핵심은 객관적이고 전면적인 정보 공개에 있다. 심각성의 판단 기준을 기업이 자의적으로 해석해 불리한 정보를 누락한다면, 보고서의 신뢰도는 무너질 수밖에 없다. ESG의 근본 취지가 투명성과 지속가능성에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러한 그린 워싱은 투자자와 소비자 모두를 기만하는 행위로 볼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ESG 왜곡이 개별 기업에 국한된 현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현재 ESG 보고서는 법적 의무가 아닌 자율 공시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통일된 작성 기준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에 따라 기업들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수치를 기재하고, 불리한 정보를 선택적으로 누락하거나 축소할 수 있는 여지를 갖는다. ESG 정보의 투명성이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시장에서는 불완전한 정보를 바탕으로 의사결정을 하게 되고, 이는 결국 투자자 피해나 시장 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 ESG 보고서가 정보 제공 수단이 아닌 마케팅 도구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정부는 2026년부터 ESG 공시의무화 제도를 도입할 계획이다. 이 제도는 일정 규모 이상의 상장사를 대상으로 ESG 정보 공시를 의무화하고, 표준화된 지표를 바탕으로 작성되도록 규제할 방침이다. 그러나 제도 시행까지는 아직 1년 이상이 남아 있으며, 그 사이 기업들이 여전히 ‘자의적 기준’으로 보고서를 작성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보고서 상의 수치 하나하나가 투자 판단의 핵심 정보로 활용되는 현실을 고려할 때, 공시의무화 전이라도 강력한 가이드라인과 감독 체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해 전문가들은 ESG 정보의 공공성과 신뢰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통합 기준 마련과 함께 외부 검증 제도를 병행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환경법규 위반, 산업재해, 노동관계 이슈 등 주요 리스크 요소에 대해서는 기업 자체 보고가 아닌 정부 또는 독립 기관의 데이터를 연동해 자동적으로 보고서에 반영되도록 하는 시스템 구축도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또한 ESG 보고서에 대한 외부 감사 혹은 제3자 인증 제도를 도입하여, 기업이 자의적으로 수치를 왜곡하거나 누락하지 못하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현재 BBS 신용평가 등 민간기관이 ESG 평가 및 등급을 제공하고 있지만, 각 기관마다 기준이 상이하고, 검증 절차가 불투명하다는 지적도 있다. 일부 기업은 이러한 점을 악용하여 점수가 잘 나오는 기관의 평가만을 활용해 ESG 경영의 실질성과는 무관한 ‘홍보용 ESG 등급’을 내세우는 경우도 있다. ESG 보고서가 단순한 기업 이미지 세탁용 도구로 변질될 위험성을 보여주는 지점이다.
결국 ESG는 단지 ‘착한 기업’의 간판을 얻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기업이 사회적 책임과 지속가능성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실천하는 구조적 변화의 출발점이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ESG 보고서를 단순한 형식이 아닌 ‘공적 책임의 기록물’로 인식하고, 사회 전체의 감시와 평가 체계 안에서 다뤄야 한다. 기업이 자발적으로 신뢰를 얻는 구조가 되기 어렵다면, 제도는 이를 강제하고 감시해야 한다. ESG 공시의무화가 단지 ‘또 하나의 행정 규제’로 끝나지 않기 위해서는, 지금 이 순간부터라도 명확한 기준, 투명한 절차, 그리고 강력한 책임 부과 체계를 도입해야 한다.
기업과 시장, 나아가 사회 전체가 그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ESG는 기업의 선택이 아니라, 시대의 요청이며 책임이라는 점을 다시금 확인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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