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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미국과의 관세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지자, 귀국하지 않고 곧장 스코틀랜드로 향한 행보는 단순한 일정 조정이 아니었다.
관세 유예 기한이 불과 사흘밖에 남지 않은 시점에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러트닉 상무장관을 직접 만나기 위한 ‘외교 총력전’이었다.
워싱턴에서 러트닉 장관의 집무실과 자택까지 두 차례 방문하며 협상 테이블을 요청했지만 별다른 진전이 없자, 양측이 EU와의 통상 담판을 벌였던 스코틀랜드 현지로 이동한 것이다. 이는 외교적 상징성과 절박함을 모두 담은 행보로, 한미 통상 관계의 중대 고비임을 보여준다.
스코틀랜드에서 김 장관이 내건 협상카드는 다름 아닌 ‘조선업 MAGA’ 프로젝트였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라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표적 구호를 산업정책에 접목한 이 제안은, 한국 조선산업의 기술력과 미국의 전략적 수요를 결합한 맞춤형 협력모델이다.
구체적으로는 ▲미국의 해양 보안 및 연안 유지보수를 위한 MR(Maintenance & Repair) 사업 협력, ▲군함과 LNG선 건조를 위한 한국 조선업체와의 공동 생산, ▲한국 수출입은행과 무역보험공사를 통한 금융지원 방안이 포함되어 있다.
특히 고부가가치 선박 분야에서 한국의 독보적 경쟁력을 내세워 미국 해양전략에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은,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대전략과도 맞닿아 있다.
한국 정부는 일본과 EU가 미국과 각각 자동차 관세 15% 인하 등 통상적 성과를 거둔 만큼, 한국 역시 최소한 동등하거나 더 나은 조건을 확보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미국 측은 협상에서 농수산물 시장 개방 등 민감한 국내 산업 분야를 지목하며, ‘한국에도 대가를 요구하겠다’는 기류를 숨기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비공식 회동에서 “한국은 지금까지 미국 시장에서 혜택만 누렸다”며 자동차, 반도체, 조선 등 전방위 산업에서 균형 있는 거래를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트럼프 전 대통령은 “미국은 다시 강해져야 한다.
조선업도 예외는 아니다”라며, ‘조선업 MAGA’에 대해 기본적으로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동시에 “한국이 단지 기술을 팔러 오는 것이라면 받아들일 수 없다”며 ▲기술이전, ▲미국 내 고용 창출, ▲지분투자 혹은 생산거점 확보 등 구체적인 상호성과 실효성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진다.
한편 미국은 협상 테이블 이외에서도 강도 높은 압박 수단을 준비 중이다. 8월 초부터는 반도체에 대한 품목별 관세 부과 가능성을 공식화하며, 한국에 대한 사전 경고를 보내고 있다.
한국이 협상에서 너무 방어적으로 나오거나 자국 산업 보호 논리를 내세울 경우, 반도체를 겨냥한 보복 조치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통상 협상이 단순한 ‘양국 거래’가 아니라, 전 세계 공급망을 둘러싼 지정학적 셈법이 얽혀 있는 민감한 게임이라는 점을 다시금 각인시킨다.
정부는 이번 협상을 위해 산업부 외에도 기획재정부까지 가동했다. 구현철 기재부 장관은 7월 31일 미국 재무장관과의 최종 협상을 위해 출국할 예정이며, 이는 무역협상과 금융정책이 동시다발적으로 움직이는 ‘통상전쟁’의 성격을 반영한 조치다.
한국과 미국의 통상 협상은 8월 1일을 기점으로 분수령을 맞는다. 김정관 장관의 스코틀랜드 외교전과 ‘조선업 MAGA’ 제안이 과연 미국 측의 요구와 절충점을 찾을 수 있을지, 그리고 반도체·농수산물·자동차 등 다른 산업 분야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향후 한미 관계의 향방을 가늠할 핵심 지표가 될 전망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외교는 가능성을 열어두는 예술”이라며, 마지막까지 모든 수단을 동원해 국익을 지키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국익’의 정의가 어느 지점에서 충돌할지, 그것이 얼마나 많은 대가를 요구하게 될지는, 단순한 기술과 수치로는 예측할 수 없는 문제다. 8월의 협상 결과는 한국 산업계의 미래뿐 아니라, 향후 10년간의 통상 질서를 결정지을 중대한 분기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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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외신문 광주전남 본부장 월간 기후변화 기자 사단법인 환경과미래연구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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