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으로 시작한 인생이라면, 변화도 믿음으로 완성됩니다.”한사람교회의 서창희 목사는 갈라디아서 3장을 중심으로, 우리가 흔히 빠지는 신앙의 오류—‘구원은 믿음으로 받고, 변화는 내 노력으로 얻는다’는 착각—에 대해 강력히 경고했다. 그의 설교는 단지 교리적 설명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수많은 신앙인들이 느끼는 영적 무력감, 자책, 반복되는 실패 속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제시한다.
“믿음으로 시작한 자여, 왜 행위로 마치려 하느냐”
설교는 바울의 절규로부터 출발한다.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이제는 육체로 마치겠느냐?”(갈 3:3) 서 목사는 이 구절을 통해, 많은 신앙인들이 구원은 은혜로 받았으나 이후 삶의 변화는 ‘내 힘으로’ 이루어야 한다는 무의식 속 신념을 갖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말했다.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다는 사실은 인정합니다. 그러나 살이 빠지려면 운동해야 하고, 성적이 오르려면 공부해야 하고, 경제가 나아지려면 내가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믿음은 천국 가는 데만 쓸모 있고, 현실 변화에는 아무 힘이 없다고 느끼는 것이죠.”
하지만 바울은 분명히 말한다. 구원도 믿음으로, 성화도 믿음으로 이루어진다. ‘믿음’이 삶의 전 여정을 관통하는 유일한 동력이라는 것이다.
“이 시대는 방법을 숭배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믿음을 찾으십니다.”
서 목사는 오늘날 우리 사회가 철저한 ‘방법론 중심주의’에 빠져 있다고 진단한다. 유튜브와 책방에는 ‘살 빼는 법’, ‘성공하는 법’, ‘집중력 기르는 법’ 같은 콘텐츠가 넘쳐난다. 그러나 실제로 변화되는 사람은 드물다. 왜인가?
그는 답한다. “문제는 방법을 몰라서가 아니라, 그것을 실행할 ‘동기’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동기, 즉 변화에 대한 갈망은 참된 믿음에서 나옵니다.”
믿음이란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전인격적인 신뢰다. 하나님이 나의 공급자이시고, 통제자이시며, 미래의 주관자이심을 인정하는 것이 바로 믿음의 본질이다. 서 목사는 강조했다. “믿음은 반드시 행동을 수반합니다. 진짜 믿는 자는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자’입니다.”
“문제는 통제권 싸움입니다. 내가 통제하려 할수록 믿음은 약해집니다.”
설교는 신앙인의 마음속에 자리 잡은 ‘통제욕’을 적나라하게 꿰뚫는다. 자녀의 사춘기, 남편의 실직, 갑작스러운 질병, 실패, 불합격 등 우리가 감당하지 못하는 현실을 만날 때, 우리는 본능적으로 상황을 ‘내 힘으로’ 바꾸려 한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 큰 무력감과 분노에 사로잡히게 된다.
서 목사는 이때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그리스도께서 이 상황도 다스리고 계시다는 믿음이 내게 있는가? 내가 믿는다고 고백은 하지만 실제로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은 실패’라고 믿고 있는 건 아닌가?”
결국 이 싸움은 신앙의 본질에 대한 싸움이다. 그리스도를 공급자와 주인으로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더 이상 ‘내 손으로’ 인생을 통제하려 애쓰지 않는다. 통제권을 넘길 때에야 비로소 믿음이 작동하기 시작한다.
“믿음은 행위가 아닙니다. 그러나 믿음은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종종 신자들은 말한다. “믿음도 하나의 공로 아닌가요? 저는 그런 믿음조차 없습니다.” 이에 대해 서 목사는 성경적 해석으로 설명한다. 아브라함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것은 ‘무엇을 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기 때문’이었다. 믿음은 하나님께 무언가를 드리는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 일을 받아들이는 전적인 신뢰이다.
하지만 동시에 그는 분명히 말한다. “진짜 믿음은 결코 혼자 머물지 않습니다.” 마르틴 루터의 말을 인용하며 그는 설교를 강조한다.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지만, 그 믿음은 결코 ‘혼자’ 있지 않습니다. 살아 있는 믿음은 반드시 실행을 동반합니다.”
그 실행이란, 변화된 관점, 새로운 언어, 달라진 선택, 하나님 앞에 서는 자세의 변화로 나타난다. ‘소비쿠폰’을 받았는데도 그것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믿지 않기 때문이다. 복음도 마찬가지다. 믿는다면, 반드시 삶의 다른 실행이 따라온다.
“믿음으로 사는 것이 가능합니까? 예, 성령이 보장하십니다.”
설교의 마지막은 위로와 확신으로 이어진다. 서 목사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으셨고,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해방하셨기에 우리는 이제 믿음으로 성령의 약속을 받는 존재가 되었다”고 선포한다. 즉, 우리의 성화는 우리의 결심이 아니라 성령의 역사로 가능하다는 것이다.
결국, 신앙생활의 초점은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느냐’가 아니라 ‘하나님이 이미 무엇을 하셨는가’를 믿는 데 있다. 믿음은 시작이자 과정이며 완성이다. 그리고 그 믿음은 절대 머물러 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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