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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도어 루즈벨트, ‘세계 최강’ 미국 해군의 설계자..그리고 에피소드

대백색 함대부터 파나마 운하까지… ‘해군력=국가력’이라는 신념으로 군사강국 미국을 만든 대통령

전용현 기자 | 기사입력 2025/07/21 [15:17]

시어도어 루즈벨트, ‘세계 최강’ 미국 해군의 설계자..그리고 에피소드

대백색 함대부터 파나마 운하까지… ‘해군력=국가력’이라는 신념으로 군사강국 미국을 만든 대통령

전용현 기자 | 입력 : 2025/07/21 [15:17]

미국이 ‘세계 최강 해군력’을 자랑하는 국가로 성장하는 데 있어, 26대 대통령 시어도어 루즈벨트(Theodore Roosevelt)의 역할은 결정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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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즈벨트와 일본천황(AI생성)    

 

해군을 사랑했던 그는 단순한 군사 전략가가 아닌 국가 경쟁력을 해군력에서 찾았던 비전가였다. 루즈벨트 대통령의 해군력 강화 작업과 그가 남긴 유산은 오늘날 항공모함 중심의 미국 해군이 세계 패권을 유지하는 토대를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젊은 대통령의 해군에 대한 집착

 

시어도어 루즈벨트는 미국 역사상 최연소 대통령이었다. 맥킨리 대통령 암살 후 42세의 나이로 대통령직에 오른 그는 이미 뉴욕 주지사, 하원의원, 해군부 차관보 등 다양한 경력을 갖춘 정치인이었다. 그의 정치 인생에서 일관되게 강조된 것은 바로 해군의 중요성이었다. 해군력을 강한 미국의 필수 요소로 인식한 그는 1897년 해군부 차관보로 임명되자마자 해군력 강화 작업에 착수했다.

 

미국-스페인 전쟁, 전국구 스타가 된 해군 장교

 

1898년 미-스페인 전쟁은 루즈벨트의 해군 사랑을 현실로 전환시킨 사건이었다. USS 메인함 폭발 사건 이후 그는 해군부 차관보직을 내려놓고 민병대를 조직, 전쟁에 직접 참전했다. 쿠바에서 승전하며 그는 전국적 영웅으로 부상했다. 전쟁의 결과 미국은 푸에르토리코, 필리핀 등을 획득해 해외 영향력을 키웠고, 루즈벨트는 이후 대통령으로 직행하며 ‘해군력=국가력’이라는 인식을 국가 전략으로 채택하기 시작했다.

 

‘대백색 함대’ 세계 일주… 해양 패권 국가로의 부상

 

대통령이 된 루즈벨트는 강력한 해군 건설을 위해 전함과 군함을 대거 건조했다. 그의 대표적인 프로젝트가 바로 ‘대백색 함대(Great White Fleet)’의 세계 일주였다. 16척의 전함과 수많은 보조 함정으로 구성된 두 개의 전단이 전 세계를 순항하며 미국 해군의 위용을 과시했다. 이는 미국이 본격적으로 해양 패권 국가로 부상하는 신호탄이었다.

 

루즈벨트는 해군력을 단순한 군사력 증강 차원이 아니라 미국 국익과 외교, 세계 전략을 실현하는 핵심 수단으로 활용했다. 당시 일본, 호주 등은 미국 해군의 순항을 보고 자국 해군력 강화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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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달카날 해전은 제2차 세계대전 중 태평양 전쟁의 중요한 전환점으로, 1942년 11월 12일부터 15일까지 솔로몬 제도의 과달카날 섬 주변 해역에서 미군과 일본군 사이에 벌어진 치열한 해상 전투였습니다.    

 

 

파나마 운하 건설… 대서양과 태평양을 연결한 전략적 결단

 

루즈벨트의 해양 전략에서 또 하나 중요한 성과는 파나마 운하 건설이었다. 그는 대서양과 태평양을 잇는 인공 수로 개설이 필수적이라 판단하고 파나마 지역을 독립시키는 등 정치적 수완까지 동원해 운하 건설을 강행했다. 1914년 완공된 파나마 운하는 이후 미국 해군이 양대양에서 자유롭게 작전을 수행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반독점 대통령’이라는 또 다른 얼굴

 

군사력 강화 외에도 루즈벨트는 국내에서 개혁적 대통령으로 불렸다. 그는 록펠러의 스탠다드 오일사를 포함한 대기업 독점을 타파하는 반독점 정책을 추진했다. “강도 귀족(Robber Barons)”이라 불린 대기업들을 경제 질서 파괴자로 본 루즈벨트는 셔먼 반독점법을 활용해 스탠다드 오일을 해체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로 인해 그는 군사적 강경론자이면서 동시에 경제 개혁가라는 평가를 함께 받는다.

 

루즈벨트 가문과 ‘전쟁 참여’ 전통

 

루즈벨트 가문은 미국에서도 손꼽히는 정치 명문가였다. 시어도어 루즈벨트의 조카딸은 훗날 퍼스트레이디가 된 엘리노 루즈벨트였으며, 또 다른 루즈벨트인 프랭클린 D. 루즈벨트(FDR)는 민주당 출신 대통령으로 대공황과 2차 세계대전을 이끌었다. 시어도어 루즈벨트의 자녀들 역시 모두 군에 복무했으며, 장남 테디 주니어는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 준장으로 참전해 영웅적 활약을 펼쳤다.

 

‘올드 라이언’의 죽음과 남겨진 유산

 

1919년 1월 6일, 루즈벨트는 수면 중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그의 둘째 아들은 “The Old Lion is dead”라는 짧은 메시지로 가족들에게 부친의 죽음을 전했다. 시어도어 루즈벨트는 생전 두 번의 결혼을 통해 여섯 자녀를 두었고, 군사적·정치적으로 미국의 국가 시스템을 설계한 ‘디자이너 대통령’으로 남게 되었다.

 

 

오늘날 미국 해군의 위상은 루즈벨트가 설계한 비전에서 비롯됐다. 항공모함 11척, 잠수함 68척, 순양함 22척, 구축함 62척 등 세계 최강의 전력을 자랑하는 미국 해군은 단순한 군사력 집단이 아니라, 미국 국익과 세계 전략을 구현하는 핵심 기관이다.

 

이 모든 해군력의 근본에는 “해군력은 곧 국력”이라 믿었던 루즈벨트의 집착과 결단이 있었다. 시어도어 루즈벨트는 군사강국 미국을 만든 설계자이자, 해군력이라는 국가 자산을 남긴 대통령으로 기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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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외신문 인천본부 기자
월간 기후변화 기자
사단법인 환경과미래연구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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