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의 최전선에서 전쟁과 ESG가 충돌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전쟁’은 국가와 기업에게 군수산업과 에너지 시장에서 막대한 이윤을 안겨주는 비즈니스 모델이었다.
그러나 21세기에 들어 환경·사회·지배구조(ESG)라는 새로운 글로벌 경영원칙이 대두되면서, 자본은 선택의 기로에 섰다.
파괴와 착취를 통한 이윤 창출 모델을 지속할 것인가, 아니면 지속가능성과 책임을 기반으로 한 성장으로 전환할 것인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스라엘-가자 분쟁, 그리고 대만해협 위기까지. 전 세계 군비 지출이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는 가운데, ESG는 ‘말뿐인 원칙’이 되어가는 것일까. 혹은 ESG를 앞세운 새로운 형태의 지배 전략일까.
전쟁과 ESG는 겉으로 상반된 개념으로 보인다. 하나는 파괴이고 다른 하나는 지속가능성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본과 권력의 시선에서 보면 둘 모두 새로운 성장 전략으로 활용되고 있다. 전쟁은 에너지와 무기 수출, 인프라 재건 등의 수단으로 글로벌 금융시장과 기업 이윤을 자극하는 자원 착취형 비즈니스로 기능한다.
반면 ESG는 규제와 투자라는 두 축을 통해 시장질서를 재편하는 수단으로 활용된다. ESG를 지키지 않는 기업은 투자 대상에서 제외되고, 각국 정부는 ESG를 이유로 외국 기업에 법적·윤리적 기준을 강제한다. 결국 ESG는 서구 중심의 가치와 법규를 전 세계 시장에 적용시키는 새로운 지배 도구로 작동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대표적 사례다. 미국과 유럽은 ESG를 내세워 러시아산 에너지에 제재를 가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미국과 유럽의 군수산업과 석유기업들은 사상 최대 이익을 기록했다. ESG라는 명분 아래 경쟁국의 자원을 봉쇄하고 자국 산업을 키운 것이다. ESG가 전쟁의 논리와 결합했을 때 어떻게 자본의 논리에 이용되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전쟁이 장기화될수록 글로벌 ESG 기준은 강화되는 역설적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원자재 가격 상승과 인플레이션을 이유로 각국은 ESG 관련 규제를 완화하는 한편, 동시에 글로벌 금융기업들은 ESG 평가를 앞세워 투자 대상을 차별화하고 있다. ESG라는 이름으로 신흥국 기업들은 서구의 자본으로부터 배제되는 경우도 빈번하다. 결국 ESG는 자본의 새로운 무기인 셈이다.
군비 증강과 ESG 확산이라는 모순된 두 흐름이 동시에 진행되는 현상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다. 전쟁을 통해 공급망을 재편하고, ESG를 통해 자본의 흐름을 통제하는 전략이 동시에 작동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미국과 유럽의 금융기관들은 ESG 평가 기준을 앞세워 중국, 러시아, 중동 기업에 대한 투자를 제한하고 있다. 전통적인 군사적 봉쇄가 금융 차원의 규제와 결합한 것이다.
자본은 전쟁과 ESG 사이에서 윤리적 선택을 하는 것이 아니다. 보다 효율적인 통제를 위한 전략적 도구로 양자를 동시에 활용하고 있을 뿐이다. ESG가 진정한 지속가능성의 원칙으로 작동하려면 전쟁과 군비 증강을 중단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전쟁은 ESG 담론의 배후에서 여전히 자본과 권력을 움직이는 본질적 원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문제는 이런 구조 속에서 세계 각국의 시민과 기업이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점이다. ESG를 따르지 않으면 글로벌 자본으로부터 배제되고, 전쟁에 저항하지 않으면 에너지와 식량을 공급받을 수 없다. ESG는 윤리적 프레임으로 작동하지만 실제로는 강제적 투자 조건으로, 전쟁은 비인도적 행위임에도 공급망 재편과 경제 재구조화의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
그렇다면 인류는 어디로 향하는가. 전쟁과 ESG라는 두 전략은 결국 세계 경제를 서구 중심의 질서로 재편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특히 ESG 투자 평가의 불투명성과 서구 자본 중심의 기준 설정이 문제로 지적된다. 한편 군비 경쟁은 경제적 위기를 자극하고, 궁극적으로 다국적 군수기업과 에너지 대기업들만이 이익을 독점하는 구조가 굳어지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 등 비서구권 국가는 ESG를 서구의 ‘경제적 식민지화’ 도구로 규정하며 자국 중심의 대안적 시장 구축에 나서고 있다. 반서구적 경제블록이 강화되면서 세계는 다시금 냉전 구조로 회귀하는 양상이다. 전쟁과 ESG가 모두 자본의 무기로 기능하는 세계에서 신흥국과 개발도상국은 이중의 착취를 당하고 있는 셈이다.
한편 글로벌 금융기관들은 ESG에 대한 회의를 드러내고 있다. 블랙록, 뱅가드 등 대형 자산운용사들은 ESG가 수익률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비판을 수용해 기존의 투자 전략을 수정하고 있다. 투자자들은 ESG보다 실질적 수익을 중시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위장된 ESG 투자’가 성행하는 모순적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ESG를 근본부터 재정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진정한 ESG라면 군비 증강과 자원 봉쇄를 멈추고, 지속가능한 평화를 목표로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ESG의 핵심은 ‘사람’이어야 한다는 점에서 현 체제는 ESG 본질을 훼손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결국 전쟁과 ESG의 이중구조 속에서 세계 경제는 거대한 분기점에 놓여 있다. 파괴적 재편을 선택할 것인지, 아니면 평화와 협력의 진정한 지속가능성을 찾을 것인지. 자본과 권력의 선택이 인류의 미래를 결정하게 될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전쟁은 계속되고, ESG는 투자 프레임으로 작동하고 있다. 그 가운데 인간과 자연은 침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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