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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적인 것을 절대화하는 사고방식은 인류 역사에서 수많은 비극과 억압을 만들어냈다. 이는 철학자들의 비판과 경고를 통해 끊임없이 지적되어온 문제이기도 하다. 철학의 관점에서 이 문제를 다시 조명하는 것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중요하다.
칸트는 이성에 근거한 보편 윤리를 강조했지만, 그의 보편성 개념은 특정 문화를 절대화하라는 의미가 아니었다. 그는 이성이 합리적으로 동의할 수 있는 도덕 법칙을 찾고자 했을 뿐, 하나의 관습이나 규범을 절대화하는 것은 경계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칸트의 도덕 법칙을 오독하며 특정 문화나 가치관을 절대적인 것으로 착각한다. 이러한 오해는 타문화를 열등하거나 미개한 것으로 폄훼하는 데 이용되며, 윤리의 보편성을 오히려 억압의 논리로 둔갑시킨다.
니체는 보다 근본적으로 절대적 가치라는 개념 자체를 부정했다. 그는 모든 가치는 권력의 의지에 의해 만들어진 산물이며, 시대와 환경, 힘의 역학에 따라 변하는 것임을 강조했다. 니체에게 절대는 허구이며, 모든 가치는 재평가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현대 사회는 성공, 부, 명예 같은 상대적 가치를 절대화하며 인생의 기준으로 삼는 경향이 짙다. 니체는 이를 노예 도덕이라 불렀고, 인간의 창조성과 주체성을 억압하는 구조라 비판했다. 절대화된 가치는 인간을 기계처럼 만들 뿐이다.
푸코는 절대화된 지식이 권력의 도구로 작동한다고 분석했다. 그는 특정한 지식과 규범이 진리로 고정될 때, 사회는 그 지식에 의해 감시되고 통제된다고 보았다. 푸코에게 절대화란 곧 권력화였다.
교육과 의료, 법과 도덕 영역에서 상대적인 관념들이 절대적 진리로 포장될 때, 개인은 제도 속에서 통제받는 존재로 전락한다. 푸코는 이런 절대화가 인간성을 소멸시키는 근대 권력의 핵심이라고 진단했다.
레비나스는 타자의 윤리라는 관점에서 절대화의 위험성을 비판했다. 그는 절대적인 동일성을 추구할 때 타자는 지워진다고 보았다. 타자는 항상 나와 다른 존재이기에 그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 윤리의 출발점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세상은 하나의 정답을 요구한다. 절대화된 기준을 통해 사람들은 타자를 판단하고 재단한다. 그 결과 타자의 고유한 목소리는 침묵당하고, 윤리는 폭력으로 변질된다. 레비나스가 강조한 타자성과 그 윤리적 중요성은 여기에서 비롯된다.
철학자들의 경고는 서로 다르지만, 핵심은 같다. 절대화는 억압과 폭력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이다. 칸트는 오용된 보편성의 문제를, 니체는 절대가치의 허구성을, 푸코는 지식의 권력화를, 레비나스는 타자 말살을 경계했다.
절대적 사고방식은 시대와 문화를 막론하고 위험하다. 다양성을 배제하며, 비판과 재평가의 가능성을 원천 차단하기 때문이다. 결국 절대화는 질문을 금지하고, 경직된 사고로 사람들을 가둔다.
상대적인 것을 절대화하는 순간 우리는 사고의 유연성을 잃는다. 타인의 시선과 경험, 문화는 무시되고, 오직 나의 기준만이 옳다고 믿게 된다. 이는 독선이고, 폐쇄성이다. 철학은 이런 사고를 경계하라고 가르친다.
현대사회에서 이런 절대화의 사례는 다양하다. 특정 정치이념이나 종교적 신념을 절대적 진리로 내세우며 타인을 억압하는 모습은 뉴스에서 자주 접한다. 하지만 문제는 그러한 현상이 일상 속에서도 비일비재하게 벌어진다는 점이다.
상대적인 가치를 절대화하는 사고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스며든다. 부모는 ‘성공=명문대학’이라고 절대화하고, 기업은 ‘효율성=최선’이라며 인간적인 요소를 배제한다. 학교는 하나의 교육과정만이 정답이라 가르친다.
철학은 이런 절대화된 기준을 의심하라고 말한다. 의심하는 순간, 우리는 그 절대가 사실 상대적인 것임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나서야 비로소 타인을 존중하고, 새로운 가치를 상상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다.
절대화는 사고의 게으름에서 비롯된다. 하나의 기준을 신봉하면 더 이상 질문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질문을 멈춘 순간, 그 사회는 멈추고 고착된다. 절대화는 결국 퇴보와 억압으로 귀결된다.
따라서 철학자들은 질문하고 또 질문하라고 강조한다. 그 질문은 나를, 나의 신념을, 나의 세계관을 의심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그렇게 상대적인 것을 상대적인 것으로 인식하는 것이 성찰의 첫걸음이다.
인류는 스스로 만든 절대라는 허상에 수없이 속아왔다. 하지만 철학은 말한다. 절대란 환상이며, 현실은 상대적이라는 진실을 잊지 말라고. 그 진실을 직시할 때 우리는 비로소 타인과 공존할 수 있다.
상대적인 것을 절대화하지 않겠다는 다짐은 결국 겸손함과 경계심의 다른 표현이다. 절대란 언제나 경계해야 할 위험 신호이며, 상대성 인식이야말로 자유로운 사유의 출발점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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