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랫동안 중도적 태도를 유지할려고 노력하고 살아왔다. 이념의 극단을 경계했고, 사회를 보는 눈은 언제나 상식과 균형에 기반하고자 노력했다.
좌우를 떠나 국민의 삶과 공동체의 지속 가능성을 고민하는 태도라면, 그것이 곧 성숙한 정치의 자세라 믿어왔다.
그러나 박유하 교수의 '제국의 위안부'와 이를 둘러싼 사회적 반응을 지켜보며, 나는 그동안 내가 지켜온 신념에 근본적인 의문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더 이상 침묵으로 일관할 수 없다는 절박함을 느낀다.
박유하 교수는 위안부 피해자들을 “매춘부”, “일본군과 동지적 관계에 있던 여성들”이라 서술했다.
이는 단순한 역사 해석의 문제를 넘어선다. 피해자들의 고통을 조롱하고, 식민지 폭력의 책임을 일본으로부터 덜어주는 위험한 왜곡이다.
그것이 설령 법적으로 표현의 자유로 인정받았다고 해도, 그 말이 역사 앞에서 면책받을 수는 없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이런 왜곡된 주장을 두고 일부 정치권과 언론, 학계가 “용기 있는 목소리”라며 추켜세운다는 데 있다. 역사적 사실을 부정하고, 피해자를 모욕하며, 일본 극우의 논리를 반복하는 주장을 학문이라 부를 수 있는가. 아니다.
그것은 지식인의 탈을 쓴 정신적 매국이다. 지식은 자유로울 수 있으나, 그 자유가 한 사회의 가장 약한 고리를 짓밟는 데 쓰인다면, 그것은 폭력일 뿐이다.
나는 이 상황을 보며, ‘보수’라는 이름 뒤에 숨어 있는 불편한 진실을 본다. 이들은 자신을 보수라고 부르지만, 실상은 자국 혐오와 외세 숭배로 일관하는 세력이다.
진정한 보수가 나라의 뿌리와 정체성을 지키는 것이라면, 이들이 하는 일은 그 정체성을 부정하고 외국의 시선을 내면화하는 일이다.
피해자가 울부짖는 자리에 가해자의 논리를 세워두고, 한국이 아닌 일본의 입장에서 역사를 편집하는 이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들의 조국은 어디인가?
윤석열 정권과 그 주변 정치세력은 이러한 흐름의 연장선에 있다.
강제징용 문제를 일본의 사과나 배상도 없이 일방적으로 처리하고, 위안부 문제마저도 '미래 지향'이라는 명분으로 사실상 덮으려는 태도는 국민의 자존과 피해자의 명예를 팔아 외교적 실적을 쌓으려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일본은 여전히 사과하지 않았고, 책임도 지지 않았다. 그런데 왜 한국 정부가 먼저 무릎을 꿇는가.
일본과 협력하는 것은 필요하다.
그러나 협력은 굴욕을 전제로 해서는 안 된다. 사과 없는 화해는 없다. 그리고 가해자의 진정한 반성과 책임 없는 관계 개선은, 결국 다시 피해자에게 고통을 전가하게 되어 있다.
박유하 교수의 책이 일본 극우 언론에 인용되며 “한국 내에도 일본을 이해하는 학자가 있다”는 식으로 활용된 현실을 우리는 직시해야 한다.
그녀의 주장이 법정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그 파괴적인 사회적 영향까지 무죄가 되는 것은 아니다. 표현은 자유일 수 있다.
그러나 그 표현이 가해자에게 면죄부가 되고, 피해자의 목소리를 침묵시키는 수단이 될 때, 우리는 분명하게 경고해야 한다.
지금의 이른바 '보수 세력'은 더 이상 보수가 아니다. 그들은 식민지적 열등감에 사로잡힌 채, 강자에게 굴종하고 약자에게 냉혹한 권위주의자들일 뿐이다.
그리고 중도라는 이름 아래 침묵하고 방관하는 사람들 역시, 결과적으로 이 왜곡된 흐름에 동조하고 있는 셈이다.
어느 시점부터 ‘합리적 중도’는 ‘무기력한 방관’으로 변질되었고, ‘건전한 보수’는 ‘굴욕적 친일’로 대체되어버렸다.
이제 우리는 분명하게 선을 그어야 한다.
일본을 감싸고 한국을 깎아내리는 태도를 더 이상 관용의 이름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자국의 피해자보다 외국의 입장을 더 배려하는 정치인, 학자, 언론인은 더 이상 국민을 대표할 자격이 없다.
나는 박유하 교수의 사례를 보며, 학문과 표현의 자유가 결코 ‘무책임’을 뜻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피해자의 고통 위에 서서, 외국의 논리를 반복하는 행위는 결코 자유가 아니다. 그것은 정당한 평가를 가장한 조롱이며, 국민을 향한 이념적 배신이다.
국민의 고통을 지우고 외세의 인정을 갈망하는 태도야말로, 이 시대의 진짜 퇴행이다. 진정한 보수는 국민과 역사를 지킨다.
진정한 중도는 침묵이 아니라, 진실 앞에서 책임 있게 목소리를 내는 것이다. 이제 그 역할을 회복해야 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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