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을 지배하는 나라가 세계를 지배한다’... 21세기 자원전쟁 한복판에 선 한국의 선택미중 양강이 주도하는 글로벌 자원 블록화, 한국은 어디로 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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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이 생산하는 주요핵심 광물 |
이 자원을 누가 얼마나 확보하고 있느냐가 국가의 힘을 결정한다. 구리는 전기 공급과 전자제품의 필수 재료이고, 리튬은 전기차 배터리의 핵심이다.
철은 모든 인프라와 건설의 기본이고, 석유는 여전히 전 세계 에너지의 중심이다. 소금은 각종 화학산업의 출발점이며, 모래는 고층빌딩과 도로 건설, 반도체 웨이퍼 생산의 핵심 재료다. 이렇게 보면 21세기의 디지털 경제도 사실상 아날로그 광물경제 위에 세워진 셈이다.
문제는 이 자원을 둘러싼 국가 간 경쟁이 점점 더 노골적으로 정치, 안보, 군사 분야까지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자원의 공급망이 이제는 경제를 넘어 국가안보와 외교 갈등의 중심에 들어섰다.
미국과 중국이 이 전쟁의 양 축을 이루고 있다. 미국은 인플레이션감축법, 반도체지원법, 국방생산법, 미-EU 광물 협정,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 등을 통해 '민주주의 자원블록'을 만들고 있다. 반면 중국은 일대일로 정책과 러시아와의 협력, 남반구 국가들과의 자원외교를 통해 '권위주의 자원블록'을 확대 중이다.
이렇게 양 진영이 자원을 나눠 갖고 진영을 짜는 흐름을 '자원 블록화'라고 부른다.
특히 희토류, 리튬, 니켈, 코발트, 흑연, 텅스텐 같은 자원은 거의 모든 첨단 산업과 군사 장비에 꼭 필요한 물질이라 어느 한 나라에 의존하는 것은 국가안보 차원에서 위험하다. 이를 피하려는 국가들이 동맹을 맺고 자원 확보에 나서면서, 실질적인 신냉전 구도가 자원 분야에서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이 복잡한 자원 전쟁의 한복판에 대한민국이 서 있다. 한국은 희귀 자원 산출국은 아니지만, 이 자원들을 활용해 세계 최고 수준의 첨단 제품을 만드는 가공·제조 강국이다.
배터리 산업에서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같은 기업들이 세계 시장을 이끌고 있으며, 미국, 유럽, 동남아 등지에 공장을 세우고 있다. 반도체, 조선, 자동차, 철강, 플랜트 산업 등도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한국은 말 그대로 ‘가공과 제조의 허브’ 국가다.
희토류 재활용 분야에서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한국은 희토류 원광을 많이 확보하지는 못했지만, 사용한 희토류를 다시 추출하고 재활용하는 기술을 빠르게 개발하고 있다. 포스코, 현대차, 성일하이텍 같은 기업들이 이 분야에서 기술을 축적 중이다. 이를 통해 희토류 의존도를 조금씩 줄여가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한국은 심각한 딜레마에 놓여 있다. 미국은 한국을 자원 동맹에 끌어들이며 배터리와 전기차 분야에서 여러 혜택을 주고 있지만, 한국이 필요로 하는 희토류, 리튬, 흑연, 니켈 등 핵심 소재 상당수는 여전히 중국이 지배하고 있다.
한국 배터리 기업들의 소재 공급망 상당 부분이 중국발이다.
현대차도 중국 내 부품공급망과 생산라인을 유지하고 있다. 여기에 미국의 반도체 장비 수출 통제까지 가세하며 한국 기업들은 양측의 압박 속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이 생존하고 도약하기 위해서는 ‘제3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 단순히 미국 아니면 중국을 택하는 방식이 아니라, 광물 가공, 정제, 재활용, 최종조립을 모두 수행하는 중간가공 중심 국가로 도약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고 전략적인 선택이다.
이를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원료광물 확보의 다변화다. 호주, 칠레, 아르헨티나, 몽골, 인도네시아, 아프리카 국가들과 손잡고 광물 확보선을 확대해야 한다. 이를 위해 광물비축기금, 해외자원개발펀드, 정부 간 자원협정 같은 국가차원의 금융 및 외교 지원이 필요하다.
다음으로 정제 및 재활용 기술을 국내에서 더욱 키워야 한다. 희토류와 리튬, 코발트 정제공장 설립, 폐배터리 재활용 확대, 도시광산 개발 등을 통해 자원 순환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이는 자원 블록화가 심화될수록 한국의 가장 강력한 보험이 될 것이다.
여기에 소재 공정기술의 초격차를 유지하는 것도 필수적이다. 양극재, 음극재, 전해질, 고체전해질 같은 배터리 핵심소재 분야는 한국이 세계적으로 앞서 있는 분야다. 정부와 기업이 손잡고 연구개발과 세제 지원을 지속해야 한다.
또한 한국은 중재자 역할을 적극 활용할 수 있다. 미국과의 광물협정, 유럽연합과의 기술협력, 중국과의 공급망조정회의 등 다자간 협력플랫폼을 설계해 중간가공과 최종조립 거점으로서 위상을 높여야 한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원자재의 중국 의존을 줄이고, 해외 생산공장들의 공정기술 보호장치도 철저히 마련해야 한다. 미국의 법령들도 예측 가능성이 낮아 장기적 사업계획 수립에 애로가 많기 때문에 정부 차원의 전략적 대응이 더욱 요구된다.
무엇보다 앞으로 미중 간 갈등이 군사, 금융, 외교 전방위 압박으로 확산될 경우 한국은 더욱 심한 압박을 받을 수 있다. 반도체 장비 통제 협상이 그 전조일 뿐이다. 따라서 한국도 독자적 국가자원전략을 본격 구축해야 한다.
국가자원안보법 제정, 전략자원위원회 설립, 도시광산 및 재활용산업 육성, 해외자원개발 금융플랫폼 확대, 비축제도 고도화 등이 필요하다. 산업정책과 안보전략이 결합된 새로운 국가 시스템이 시급하다.
장기적으로는 반도체, 배터리, 플랜트 산업의 복합성을 활용하여 ‘동북아 전략자원 가공허브’라는 국가 비전을 세우고, 이를 바탕으로 미국, 유럽, 인도, 아세안 등과 협력하는 외교전략을 펼쳐야 한다. 그래야만 대한민국이 이 복잡한 자원 전쟁에서 살아남고 성장할 수 있다.
이제 패권전쟁은 철, 구리, 리튬, 희토류, 반도체 소재를 둘러싼 물질전쟁으로 넘어왔다. 데이터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자원이며, 자원을 통제하는 나라가 세계를 움직이게 된다. 한국은 그 중심에서 역사적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앞으로 다가올 10년, 대한민국의 결정이 국가의 운명을 바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