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국채시장, ‘금융의 화약고’인가 ‘패권의 무기’인가②.."국채금리의 역습, 금융시스템이 흔들린다"국채금리 상승의 첫 번째 파열음, 부동산 시장을 강타하다국채금리의 급등은 실물경제의 가장 민감한 온도계인 부동산 시장을 정조준하고 있다.미국 국채금리는 세계 모든 자산 가격의 기준점이자, 글로벌 자금의 무게중심을 결정짓는 최상단 금리다.
이 금리가 흔들리면, 가장 먼저 타격을 받는 곳은 대출의존도가 높은 부동산 시장이다.2023년 중반부터 미국 10년 만기 국채금리가 4%대를 상회하면서, 미국의 30년 고정 주택담보대출 금리 역시 7%대에 안착했고, 일부 지역에선 8%까지 치솟았다.이러한 상황은 미국 전역의 주택 수요를 극도로 위축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가장 극적인 사례는 샌프란시스코와 오스틴, 피닉스 같은 고성장 기술도시들이다.
팬데믹 기간 중 저금리를 기반으로 급격히 오른 이들 지역의 주택가격은 국채금리 상승과 함께 빠르게 꺾였다.
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심리가 무너지자, 투자수요는 사라지고 실수요자 역시 높은 월상환금에 압박을 느껴 거래를 포기하면서, 주택시장은 매수자 실종 현상에 시달리고 있다.
특히 신규 분양 시장은 멈춰섰고, 건설업체들의 연쇄적인 부도 위험이 현실화되고 있다.
이러한 충격파는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채금리가 글로벌 기준금리로 작동하기 때문에, 한국, 호주, 캐나다, 영국 같은 대출 중심의 주택금융 시장도 동반 침체에 빠지고 있다.
예를 들어 한국의 경우, 한국은행이 미국과의 금리 차이를 유지하기 위해 기준금리를 동결 또는 인상 기조로 유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며, 이에 따라 5% 이상의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장기화되며 영끌·빚투 세대가 한계 상황에 몰리고 있다.
전세가 하락과 매매가 하락이 동시에 벌어지면서 갭투자 손실은 폭발적이며, 이는 금융권의 부실로 전이되고 있다.
부동산 PF(프로젝트 파이낸싱) 시장도 비슷한 패턴으로 붕괴 중이며, 건설사들이 발행한 회사채와 CP(기업어음)는 이미 시장에서 외면받고 있다.
부동산은 단순한 자산이 아니라, 금융과 소비를 매개하는 핵심 플랫폼이다. 주택가격 하락은 소비심리의 급격한 위축으로 이어지며, 이는 다시 기업의 매출 감소 → 고용 축소 → 임금 감소 → 체감 경기 급랭이라는 악순환 고리를 만들어낸다.
국채금리 상승 하나가, 이렇게 실물경제 전체에 걸친 다차원적 파장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은행의 심장부를 겨누는 국채금리-유동성, 대출, 신뢰가 동시에 흔들린다
국채금리의 급등은 은행 시스템의 유동성 구조를 송두리째 흔들어 놓는다. 은행은 본질적으로 ‘단기 차입–장기 대출’ 구조를 가지고 운영되며, 수익성과 건전성은 금리 곡선의 기울기에 크게 의존한다.
그런데 국채금리가 급등하면 장기금리가 단기금리보다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장단기 금리차가 역전되거나 예측 불가능한 형태로 비틀리게 되며, 이는 은행의 전통적 수익 모델을 붕괴시킨다.
가장 상징적인 사건이 2023년 3월 발생한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다.
이 은행은 저금리 시기에 장기 국채에 대규모 투자했지만, 국채금리가 급등하면서 자산가치가 급격히 하락했고, 이를 견디지 못하고 파산에 이르렀다.
SVB 사태는 하나의 은행이 아니라, 전 세계 은행 시스템에 내재된 ‘금리 리스크’가 어떤 방식으로 현실화되는지를 보여주는 경고등이었다.
미국 대형은행들은 물론, 유럽계 은행들도 동시다발적으로 손실 인식과 자본 확충 압력을 받고 있으며, 일본 은행들의 경우 엔화 약세를 통한 수익 보전 시도조차도 한계에 직면하고 있다.
은행들은 자산의 가치를 평가절하당하고 있으며, 리스크 완화를 위해 대출을 보수적으로 운용하고 있다. 기업과 개인 모두 신용공급의 축소에 직면하게 되며, 이로 인해 경제 전반의 ‘신용승수’는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예를 들어, 기존에 연 3%대 대출금리로 운영되던 중소기업이 이제는 연 7~9%의 금리를 부담하게 되며, 신규투자 및 고용 확장은 불가능해지고 있다.
이는 다시 실업률 증가와 소비위축으로 이어지며, 은행의 부실채권(NPL) 비율이 상승한다.
미국 FDIC(연방예금보험공사)에 따르면, 2024년 말 기준으로 중소 지역은행의 약 15%가 ‘경고 대상’에 올라 있으며, 이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최대 수치다.
한국 역시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규제 강화 속에서도 연체율 상승이 두드러지고 있으며, 비은행계 금융사 중심으로 연쇄 부실 위험이 커지고 있다.
결국, 국채금리는 은행의 생존 문제다. 국채금리가 오르면 자산가격은 하락하고, 대출은 줄어들며, 신용은 경색되고, 소비는 냉각된다. 이 모든 과정은 은행 시스템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자가발전 회로처럼 작동하며, 금융시장의 중심을 향해 마치 도미노처럼 붕괴가 진행되고 있다.
보험과 연기금, 그리고 채권시장- 장기투자의 최후의 보루는 버텨낼 수 있을까?
국채금리의 상승은 단기 시장의 파열음으로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장기 안정성에 기반한 보험업계와 연기금 시스템에도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보험사는 고객이 맡긴 자금을 장기 채권으로 운용해 수익을 창출하는 모델이며, 연기금은 국가적 노후 대비 시스템으로서 포트폴리오의 큰 비중을 국채에 의존하고 있다. 하지만 국채금리가 가파르게 오르면, 이미 보유하고 있는 저금리 채권의 평가손실은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미국 최대 연기금인 캘리포니아 공무원연금(CalPERS)의 2023년 평가손실이다. 국채 수익률이 급등하면서 CalPERS의 포트폴리오는 연간 수천억 달러에 이르는 잠재적 손실을 기록했고, 이로 인해 연금 지급 능력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한국의 국민연금도 예외는 아니다.
2024년 하반기 기준, 국민연금은 전체 운용자산의 20% 이상을 해외채권에 배분하고 있었으며, 그 대부분이 미국 국채였다.
금리가 오르면서 채권가격은 하락했고, 평가손실이 일시적으로 20조 원에 육박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보험사 역시 사정은 비슷하다.
IFRS17 회계기준 도입과 K-ICS(신지급여력제도) 도입으로 인해 보험사의 자산가치는 실시간으로 평가되며, 국채금리 급등은 곧 보험사의 지급여력비율(RBC)의 급락으로 직결된다.
삼성생명, 한화생명, 교보생명 등 대형 보험사들이 잇따라 후순위채 발행을 통해 자본 확충에 나선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들은 자산건전성을 유지하기 위해 보험료 인상, 신계약 축소, 지급준비금 재조정 등 고강도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있으며, 이는 보험산업 전반의 역성장을 불러오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장기 채권의 ‘유동성 위기’다. 과거엔 미국 국채가 가장 유동성이 풍부한 시장으로 평가됐지만, 최근 몇 년 사이 단기 트레이더 중심의 구조로 전환되면서, 장기 국채는 거래량이 줄고 가격 변동성이 커졌다.
연기금과 보험사는 본질적으로 ‘장기 보유’ 기관인데, 이들이 보유한 자산의 유동성이 급격히 악화될 경우, 일시적 자금 수요에 대응하지 못해 ‘판매 압력’에 시달리게 된다. 그리고 이들이 팔기 시작하면, 국채금리는 다시 상승하고, 그 결과 기존 채권 보유자들의 손실은 심화된다. 일종의 악순환 구조다.
국채금리 상승은 각국 통화정책에도 복합적 영향을 준다.
미국이 금리를 낮추지 않는 이상, 신흥국은 외환 방어를 위해 금리를 올려야 하고, 이는 해당국의 경기 침체를 유발하게 된다. 통화의 긴축은 자산가격 하락을 낳고, 보험사와 연기금의 자산건전성은 다시 악화된다. 이 모든 사슬은 결국 미국 국채금리라는 단 하나의 숫자에서 비롯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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