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심층기획] 카슈미르의 피로 얼룩진 봄 – 테러와 핵전쟁 위기, 역사의 고통이 현재를 덮치다

전용현 기자 | 기사입력 2025/05/04 [07:18]

[심층기획] 카슈미르의 피로 얼룩진 봄 – 테러와 핵전쟁 위기, 역사의 고통이 현재를 덮치다

전용현 기자 | 입력 : 2025/05/04 [07:18]

2025년 4월 22일, 인도령 카슈미르의 빼헬감 지역에서 또 한 번의 비극이 일어났다. 한적한 산악 마을에서 발생한 이날의 사건은 단순한 테러를 넘어, 인도와 파키스탄의 오랜 갈등 구조 속에서 누적된 역사적 응어리가 폭발한 결과였다.

본문이미지

▲ 인도와 파키스탄의 분쟁은 오래됐다    

 

복면을 쓴 괴한 다섯 명이 말 트래킹으로 유명한 빼헬감의 숲에서 사람들을 종교와 성별로 분리한 뒤, 샤하다(이슬람 신앙고백)를 제대로 외우지 못한 이들을 처형했다.

 

총 26명이 목숨을 잃고, 30여 명이 부상을 입었다. 신생 테러 조직인 ‘TRF(레지스턴스 프론트)’가 이번 학살의 배후로 지목되며 인도 정부는 강경 대응을 선언했지만, 이 사건은 단순한 충돌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카슈미르에서의 테러는 단발적 폭력으로 그치지 않는다. 이번 사건은 인도와 파키스탄 양국이 핵무기를 보유한 가운데 군사적 긴장이 고조된 시점에서 발생했다는 점에서, 국제사회는 그 어느 때보다 불안한 눈으로 이 지역을 주시하고 있다.

 

인도 정부는 신속히 현상금 200만 루피를 내걸고 범인 수색에 나섰지만, 아직 명확한 단서는 나오지 않은 상황이다. TRF는 소셜 미디어를 통해 범행을 자처하며 자신들이 “인도 점령에 저항하는 세속적 무장 조직”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실상은 파키스탄 기반의 무장세력과의 연계를 의심받고 있다.

 

인도 정보당국은 TRF를 Lashkar-e-Taiba(Let), Jaish-e-Mohammed(JEM) 등 종교적 성향의 테러 조직과 연결 짓고 있으며, 이번 공격도 인도 정부의 2019년 카슈미르 특별지위 철폐에 대한 반발로 분석하고 있다.

 

 

카슈미르 분쟁의 뿌리는 깊다.

 

1947년 인도와 파키스탄이 분리 독립하며 시작된 갈등은 이후 세 차례의 전쟁(1947, 1965, 1971년)을 낳았고, 1999년에는 고지대에서 벌어진 카길 전쟁으로 이어졌다.

 

카슈미르는 힌두계 군주와 무슬림 다수 주민이라는 종교적 불일치 속에서 인도 연방에 편입됐으며, 이로 인해 수십 년간의 무장투쟁과 민족갈등이 반복됐다.

 

특히 1987년 부정선거는 무장투쟁의 기폭제가 되었고, 1989년 이후 무슬림 청년들이 대거 무기를 들고 저항에 나섰다. 초기에는 자치 요구가 중심이었지만, 이후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한 무자헤딘과 급진 이슬람 세력이 결합되며 무장세력은 종교적 색채를 띠게 된다.

 

인도는 이들을 테러리스트로 간주하며 강경 진압에 나섰다. 1990년대 들어 카슈미르에는 무장부대 특별권한법(AFSPA)이 적용되어, 보안군에게 사실상 면책 특권에 가까운 권한이 부여됐다.

 

수색영장 없이 체포, 직결처분, 민간인 사살이 허용되는 법적 기반 속에서 인권 침해는 일상이 되었고, ‘하프 위도우’라 불리는 여성들—남편이나 아들이 실종된 여성—이 8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도군의 집단 성폭행, 고문, 민간인에 대한 무차별 발포 등은 수차례 국제 인권단체의 조사를 받았지만, 대부분 처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특히 ‘팰렛건’이라 불리는 비살상 무기로 시위대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수천 명이 실명 피해를 입은 일은 ‘눈먼 세대’라는 사회적 비유로까지 확산되었다.

 

정치적으로도 갈등은 극단을 향해 달려왔다. 2019년 모디 정부는 헌법 제370조를 폐지하며 카슈미르의 특별지위를 강제로 철회했다. 이 조항은 카슈미르가 독자적인 헌법과 자치권을 보장받도록 한 인도 헌법의 조문이었다.

 

이를 폐지하는 과정에서 카슈미르 의회는 해산됐고, 연방 정부는 개엄령과 정보 차단을 실시하며 일방적 조치를 단행했다. 6개월간 인터넷과 통신이 차단되어 세계는 카슈미르의 실상을 제대로 알지 못했고, 지역 주민들은 전례 없는 고립 상태에 놓이게 됐다. 모디 정부는 이를 “통합 인도”의 실현이라 주장했지만, 현지에서는 “신민지화”라는 비판이 거세다.

 

경제적으로도 카슈미르는 갈림길에 서 있다. 인도 정부는 테러를 진압하고, 카슈미르를 세계적인 관광지로 키우겠다는 계획을 밝혔지만 현실은 다르다. 실업률은 오히려 악화되고 있으며, 특히 청년층의 절망은 극단적 이념에 대한 유혹을 키운다.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 이번 테러는 인도 정부의 관광 활성화 전략에 심각한 타격을 줄 가능성이 있으며, 주민과 정부 간의 불신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이런 배경 속에서 인더스 강 문제는 또 다른 불씨가 되고 있다. 인더스 강은 파키스탄의 생명줄과 같은 존재로, 경지 면적의 80%가 이 유역에 집중되어 있다.

 

인도는 인더스강 상류 수계를 자국에서 통제하고 있으며, 최근 일각에서는 인도가 이 강의 흐름을 조절해 파키스탄을 압박할 가능성을 시사하고 있다. 인더스 수자원 협정은 1960년 국제중재로 맺어진 협약으로, 전쟁 중에도 유지되었지만, 최근 인도가 위협적 태도를 보이며 양국 간 신뢰는 크게 흔들리고 있다. 만일 인도가 강 수문을 닫는다면 파키스탄은 농업, 식수, 전력 등 모든 분야에서 국가적 위기에 봉착할 수 있다.

 

이 모든 갈등은 인도와 파키스탄이 각각 핵무기를 보유한 현실에서 더 큰 우려를 자아낸다. 양국은 1998년 이후 각각 핵실험을 반복해 왔으며, 국경 지역의 군사적 충돌은 ‘전면전의 문턱’에서 수차례 멈춘 바 있다. 파키스탄은 정치적으로 불안정하며, 군부의 영향력이 강하다.

 

반면 인도는 정치권이 군부를 통제하는 구조이나, 국민 여론에 민감한 모디 정부는 보복 여론을 등에 업고 단기적 제한 작전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최근 SNS에서는 힌두 민족주의 음악 ‘힌두투바 팝’이 유포되며 극단적 정서가 확산되고 있고, 언론과 표현의 자유는 통제 국면에 접어들고 있다. 여성 포크가수가 비판적 발언으로 국가반역죄로 기소된 사건은 그 단면을 잘 보여준다.

 

군사적으로 인도는 대규모 전쟁을 감당할 자원과 현대화 비율에서 제한적 약점을 갖고 있다. 전체 장비 중 68%가 구식이며, 첨단 장비는 16% 수준에 불과하다. 파키스탄도 자원부족과 외교적 고립 속에 전면전을 피하고자 하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사건 발생 이후 인도 증시는 오히려 1.1% 상승하며 투자자들이 확전 가능성을 낮게 보는 경향을 보였다. 이는 전면전보다는 제한적 군사작전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으로 해석된다.

 

카슈미르는 단순한 영토 분쟁이 아니라, 수십 년간 누적된 억압, 차별, 폭력, 정치적 실험의 총합이다. 그 중심에는 항상 주민들이 있었다. 이들의 고통은 지도자들의 권력놀음과 국제사회의 무관심 속에 지속되었고, 이번 학살 사건 역시 그 뿌리에서 비롯된 것이다.

 

카슈미르의 평화를 위해선 양국의 군사적 자제를 넘어서, 주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정치적 전환이 필요하다. 국제사회도 이제는 ‘양측 모두 자제하라’는 구태의연한 중립적 언어에서 벗어나, 실질적 인권 감시와 평화적 중재에 나서야 할 때다. 이번 테러는 끝이 아니라 시작일 수 있다. 그리고 그 시작은, 우리가 무심히 지나쳐온 수많은 ‘작은 절망’들의 응답일지도 모른다.

이 기사 좋아요
기자 사진
시민포털 지원센터 대표
내외신문 광주전남 본부장
월간 기후변화 기자
사단법인 환경과미래연구소 이사
  • 도배방지 이미지

광고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