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의 법은 기본적으로 ‘포지티브 시스템’을 따릅니다. 말이 어렵지만, 아주 쉽게 말하면 “법에 적혀 있는 것만 허용된다”는 뜻입니다.
축구로 치면, 규칙서에 “손으로 공을 잡으면 반칙”이라고 쓰여 있으면, 그 규칙에 따라 판정을 해야지, 심판이 그때그때 상황 봐서 바꿔버리면 안 되는 것과 같습니다.
행정에서도 그렇고, 형사사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법에 허락된 행위만 가능하고, 그 외의 것은 원칙적으로 안 되는 겁니다. 심지어 법원의 역할도 이 원칙을 따라야 합니다.
특히 대법원은 ‘심판의 심판’이지, 다시 뛰는 선수가 아닙니다. 즉, 1심과 2심에서 판사들이 판단한 사실관계를 대법원이 다시 바꾸거나 직접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대법원은 오직 “법을 제대로 해석했는가”만을 따져야 합니다.
그런데 이번에 대법원이 이재명 대표 사건을 다루는 방식은, 마치 심판이 경기 도중에 유니폼 갈아입고 선수로 뛰는 모습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고작 9일 동안의 심리로, 항소심에서 판단한 사실관계를 뒤집고 환송 결정을 내렸습니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왜” 뒤집었는지를 법적으로 설명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법원은 보통 원심이 논리나 경험칙을 명백히 어겼다든지, 아니면 증거를 이상하게 해석했다든지, 그런 구체적인 사유가 있어야만 개입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판결문에는 그런 설명이 없습니다. 단지 “법리를 잘못 이해했다”는 추상적인 표현만 나옵니다.
이건 예를 들면 이렇습니다. 학교에서 어떤 학생이 숙제를 제대로 안 해왔다고 선생님이 벌점을 줬는데, 교장선생님이 “그건 좀 아닌 것 같아”라며 벌점을 없애버리는 식입니다.
교장선생님이 그 학생이 숙제를 안 했는지 여부는 확인하지 않고, 그냥 ‘기분상’ 또는 ‘전체 맥락상’ 판단해버리는 것과 비슷합니다. 법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실관계는 1심과 2심이 판단하는 영역이고, 대법원은 “법 해석이 틀렸는지”만 봐야 합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법 해석이 틀렸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사실판단을 다시 해버린 꼴이 된 겁니다.
이렇게 되면 법의 기본 원칙이 무너집니다. 법에 정해진 절차를 따르지 않고도, 대법원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사실을 재구성하고 결론을 바꿀 수 있다는 위험한 선례가 생깁니다. 이것은 단지 이재명이라는 정치인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닙니다.
앞으로 어떤 시민이 억울하게 유죄를 받았을 때, 대법원이 구체적인 이유 없이 “그건 우리가 다시 판단할 수 있어”라고 한다면, 누가 공정함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법은 누구에게나 예측 가능해야 합니다. “이런 행동을 하면 처벌을 받는다”는 것을 미리 알 수 있어야 하고, “이 절차를 따르면 이렇게 판결된다”는 것이 명확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 대법원은, 판결문 어디에서도 그 기준을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이번 판결은, 법이라는 게임의 규칙을 지키지 않은 심판이 뛰어든 상황과 같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대한민국이 쌓아온 법치주의, 삼권분립, 그리고 시민의 기본권 보장 시스템 전체를 흔드는 행위입니다. 법이 ‘그때그때 달라요’가 되어버리면, 그 법은 힘 있는 사람의 도구가 될 뿐입니다.
법을 믿고 사는 사회, 그 신뢰의 가장 마지막 보루는 대법원입니다. 그러나 이번 판결은 대법원이 스스로 그 마지막 보루를 무너뜨리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그것이 더 위험한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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