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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겨진 GMO, 선택할 권리를 달라"...한국만 유독 왜?

DNA 흔적만 보는 표기제, 소비자는 무방비

미국·EU는 진화 중, 한국은 여전히 답보

기술 혁신과 사회적 합의, 함께 가야 할 길

전태수 기자 | 기사입력 2025/04/26 [11:06]

"숨겨진 GMO, 선택할 권리를 달라"...한국만 유독 왜?

DNA 흔적만 보는 표기제, 소비자는 무방비

미국·EU는 진화 중, 한국은 여전히 답보

기술 혁신과 사회적 합의, 함께 가야 할 길

전태수 기자 | 입력 : 2025/04/26 [11:06]

홍길동이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를 수 없었던 것처럼, 우리는 지금 GMO감자를 감자라 부를 수 없는 시대를 살고 있다. 홍길동과 감자는 틀리지만 사연은 비슷한거 같다.

 

홍길동 아버지는 서자라는 시대적 상황이 제약이었지만 감자는 인간의 탐욕이 들어가는 것처럼 그런거 같다. 누구를 위해 표시를 해야 하고 누구를 위해 정확히 해야 하는가는 소비자의 알권리와 농민들의 삶과 자존감에 영향을 준다. 

 

한 입 깨문 감자가 GMO인지 아닌지, 소비자는 알 길이 없다. 감자가 감자인 줄 알았는데, 사실은 유전자 조작으로 태어난 '또 다른 감자'일지도 모른다.

 

원료는 GMO인데도 가공 과정에서 흔적이 사라졌다는 이유로, 표기조차 되지 않은 식탁 위의 음식들. 알고 먹을 자유마저 빼앗긴 오늘, 한국 사회는 GMO 시대에 걸맞은 책임 있는 선택을 해야 한다. 투명성과 과학, 그리고 소비자의 알권리를 지키는 일이 그 시작이다.

 

GMO(유전자변형생물체)와 유전자 가위 기술이 생명공학의 핵심으로 자리잡은 가운데, 한국 사회는 이 거대한 흐름 앞에서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까. 20세기 후반 최초의 유전자 재조합 기술이 등장한 이후, GMO는 농업, 의약, 산업 분야를 아우르며 빠르게 확산됐다.

 

미국과 아르헨티나 등 주요국에서는 GMO 작물이 농업 생산성 향상의 견인차 역할을 했고, WHO 등 국제기구는 상업화된 GMO 식품의 안전성을 인정했다.

 

그러나 동시에 예측 불가능한 변이, 생태계 교란 가능성, 그리고 소비자 알권리 침해 문제로 인해 전 세계 곳곳에서 사회적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GMO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은 높아졌지만, 여전히 제도적·문화적 대응은 미흡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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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회 의원회관 제10간담회의실에서는 ‘GMO 감자 수입, 무엇이 문제인가? 라는 내용으로 토론회가 열였다. 2018년 토론회 보다 관심이 적어졌다는 좌장의 얘기부터 다양한 토론이 이어졌다. 

 

현재 한국은 GMO 작물의 재배를 제한하면서도 상당량의 GMO 농산물을 수입해 사료, 가공식품 원료로 활용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 통계에 따르면 한국은 연간 약 1000만 톤에 가까운 유전자변형 옥수수와 대두를 수입한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소비자 알권리를 충분히 보장하지 못하는 현실이다. 국내 GMO 표시제는 '최종 제품에 GMO DNA나 단백질이 남아 있어야 표시한다'는 규정을 따르는데, 이로 인해 식물성 기름, 전분당(옥수수시럽) 등 원재료가 GMO여도 가공 과정에서 유전자 흔적이 사라지면 표시 의무가 면제된다.

 

결국 소비자는 'GMO가 원료로 쓰였는지'를 알지 못한 채 상품을 구매하게 된다. 이 같은 문제는 투명성과 신뢰를 중시하는 시대정신과 괴리된다는 비판을 낳는다.

 

표기 문제는 단순한 기술적 논쟁을 넘어, 소비자의 자기결정권 문제로 이어진다. 최근 소비자 단체들이 "GMO 사용 여부를 원료 기준으로 표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로 유럽연합(EU)은 '원료 기준 표시제'를 채택해, GMO DNA가 사라졌더라도 원재료에 GMO가 사용됐다면 이를 의무적으로 표시하도록 하고 있다. 이에 비해 한국은 여전히 '성분 기준'에 머물러 있어, 소비자들은 제대로 된 선택권을 갖지 못하고 있다.

 

농림부는 "완제품에 GMO 흔적이 없는 경우 위해성이 낮다"고 설명하지만, 문제의 본질은 '위해성'이 아니라 '선택권'이다. 위험하든 안전하든, 소비자는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GMO를 섭취할지 말지를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있다.

 

한편, 유전자 가위 기술(CRISPR 등)의 등장은 GMO 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유전자 가위는 외래 유전자를 삽입하지 않고 생물체 자체의 유전자를 정밀 편집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전통적 GMO와 구별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미국과 일본 등은 CRISPR 기반 작물에 대해 기존 GMO 규제를 적용하지 않는 사례가 늘고 있으며, 이에 따라 규제 사각지대 우려도 커지고 있다. 한국에서도 일부 연구기관은 CRISPR 기술을 활용한 농산물 개발을 시도하고 있지만, 이에 대한 명확한 제도적 정의나 안전성 평가 체계는 미비한 상황이다. 특히 유전자 가위로 편집된 생물이 GMO에 해당하는지 여부조차 정부기관 간 해석이 엇갈리고 있어, 법적 공백이 우려된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할 때 한국은 다음과 같은 대응이 시급하다. 첫째, GMO 및 유전자 편집 작물에 대한 포괄적이고 과학적 기반의 규제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현재의 이원화된 안전성 평가와 표시 제도는 기술 발전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으며, 신기술의 특성을 반영한 세분화된 기준이 요구된다.

 

둘째, 소비자 알권리를 보장하는 방향으로 표시제를 전면 개편해야 한다. 최소한 원료 단계에서 GMO 사용 여부를 명시하고, 최종 소비자가 정보를 쉽게 인지할 수 있도록 가독성과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 셋째, 과학적 소통 강화가 필요하다.

 

GMO와 유전자 가위 기술은 복잡하고 오해가 많은 영역인 만큼, 단순 홍보가 아니라 근거 기반 설명과 공론장 조성을 통해 국민적 이해를 높여야 한다. 또한 시민사회, 학계, 산업계가 함께 참여하는 사회적 합의 절차를 통해 기술 활용의 윤리적·사회적 한계를 설정해야 한다.

 

특히 주목할 점은, GMO와 유전자 가위 기술이 "과학과 윤리의 딜레마"를 동반한다는 사실이다. 한편에서는 식량난, 기후위기 대응, 난치병 치료 등 인류의 긴급 과제를 해결할 가능성이 있는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생명 다양성 파괴, 생태계 교란, 불평등 심화 등의 위험도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한국은 이 기술들을 무조건 배척하거나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이분법을 넘어, 과학적 검증과 사회적 가치 논의를 병행하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미국의 경우 GMO 식품이 일상화됐지만 여전히 'GMO 표시 강화'를 둘러싼 논쟁이 지속되고 있으며, EU는 엄격한 규제 속에서도 유전자 편집 작물에 대한 규제 완화 논의를 본격화하고 있다.

 

글로벌 동향을 고려할 때, 한국 역시 스스로 명확한 원칙과 기준을 세워야 한다.

 

결국 한국이 선택해야 할 길은 "기술 혁신"과 "사회적 신뢰"를 동시에 구축하는 것이다. 그 출발점은 투명성이다. 식탁에 오르는 모든 식품이 어떤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는지, 소비자가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과학이 아무리 안전성을 입증해도, 소비자가 '알지도 못한 채' 섭취하도록 하는 것은 현대 사회의 기본 원칙에 어긋난다.

 

GMO와 유전자 가위 기술은 인류에게 커다란 기회를 제공할 수 있지만, 그 성공 여부는 오직 사회와의 신뢰를 얼마나 잘 구축하느냐에 달려 있다. 지금, 한국은 그 중요한 기로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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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기후변화 발행인
내외신문 대표 기자
금융감독원, 공수처 출입기자
사단법인 환경과미래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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