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경제학자인 장하준 영국 런던대학교 교수가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가 이끄는 대미 통상 협상 방식에 대해 “시대가 바뀌었는데도 여전히 과거의 수세적 사고에 머물러 있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미국의 정책은 확정되지도 않았는데 왜 미리 가서 협상을 하느냐”며, 성급하고 종속적인 자세를 지적했다.
2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글로벌 경제질서 변화와 대한민국 경제정책 전략’ 강연에서 장 교수는 “트럼프 진영은 전략도 없고, 트럼프 대통령은 워낙 변덕이 심하다. 지금 딜을 하더라도 몇 달 뒤에는 아무렇지 않게 뒤엎을 수 있다”며, 지금은 ‘지연 작전’이 가장 현명한 대응이라고 강조했다. “협상은 하는 척하되, 사인만은 절대 하지 말아야 한다”고 그는 단언했다.
장 교수는 한국이 더 이상 미국의 하청국가가 아니라는 점을 정치 지도자들이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덕수 총리가 ‘6.25 은혜를 갚아야 하니 미국 정책에 저항하지 않겠다’는 식의 발언을 외신 인터뷰에서 했다는 것은, 대한민국이 어떤 국제적 위상을 가진 나라인지 모르는 태도”라며 “이런 자세는 국민 전체를 무력화시키는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특히 “지금 미국은 과거처럼 절대 강자가 아니다”라고 분석했다. “군사력이 미국 패권의 핵심이지만, 그 군사력을 뒷받침할 기술과 생산능력이 부족하다. 반도체나 조선업 같은 전략 산업에서 한국이 버티면 더 많은 것을 얻어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장 교수는 또, 미국 중심의 질서에 매달리기보다는, 트럼프 이후 빠르게 형성되고 있는 새로운 글로벌 경제 질서 속에서 한국이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금은 외교적으로 고개를 숙일 때가 아니라, 외려 국가적 위상과 전략 자산을 바탕으로 세계를 설득하고 이끄는 역할을 할 때”라는 것이다. 그는 “멕시코처럼 트럼프에 강하게 대응한 지도자가 국민적 지지를 얻는 사례도 참고할 만하다”고 덧붙였다.
산업 정책과 복지 정책에 대한 시각에서도 장 교수는 “정부가 현실을 직시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OECD 국가들 가운데 한국의 복지 지표는 꼴찌 수준이고, 노인 빈곤율은 1위다. 그런데도 복지 지출 확대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현실을 외면하는 것”이라며, “세금을 더 걷더라도 복지에 투자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산업정책에 있어서도 한국은 한때 세계를 놀라게 할 정도로 잘 해냈다. 없는 데서 시작해 세계적인 제조업 강국이 됐는데, 지금은 시장에만 맡겨두고 정부는 손을 놓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부가 나서야 할 때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과거처럼 실무적 역량과 장기적 비전을 갖춘 산업 전략이 절실하다”고 덧붙였다.
상법 개정 논의와 관련해선 “지배주주의 권한 남용을 견제할 필요는 있지만, 주주이익 환원만 강조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며 “기업이익의 일정 비율 이상을 자사주 매입에 사용하는 걸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끝으로 장 교수는 한국 사회가 ‘금융 중심’으로 기울고 있는 현상을 우려했다. “젊은 세대가 열심히 일해서는 계층 상승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면서, 주식이나 암호화폐 같은 투기적 수단에 매달리고 있다.
이런 구조는 매우 위험하다”고 했다. “국가가 미래를 제시하지 못하니 국민은 단기적 수익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그 결과 사회 전체가 불안정해지고 있다”며, “금융 규제나 법 개정만으로는 해결이 어렵고, 전반적인 국가 시스템의 재설계가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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