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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세전쟁1탄] 자동차·중소기업 직격탄 – 한국 제조업의 생존경로는 어디인가

공장 없는 중소기업은 설 자리가 없다
IRA와 미국 생산 요건이 중소 부품업체의 계약 해지와 폐업 위기로 직결되고 있다.

전용현 기자 | 기사입력 2025/04/16 [09:09]

[관세전쟁1탄] 자동차·중소기업 직격탄 – 한국 제조업의 생존경로는 어디인가

공장 없는 중소기업은 설 자리가 없다
IRA와 미국 생산 요건이 중소 부품업체의 계약 해지와 폐업 위기로 직결되고 있다.

전용현 기자 | 입력 : 2025/04/16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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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도표를 들고 상호 관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위에서 7번째에 한국이 적혀 있다.

 

2025년의 관세전쟁은 단지 최첨단 기술 산업을 겨냥하는 수준을 넘어, 한국 제조업 생태계 전반을 조준하는 총공세의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미국이 주도하는 이 전쟁의 제1 전선이 반도체였다면, 이제 그 불길은 자동차 산업을 거쳐 수천 개 중소기업들로 옮겨붙었다. 결과적으로 한국 제조업 전체가 ‘관세기반 산업재편’이라는 거대한 파고 앞에서 생존을 건 결단의 시기를 맞이하고 있다.

 

한국 자동차 산업은 반도체 산업과 더불어 수출 중심 경제의 핵심 축을 형성해왔다. 2024년 기준으로 자동차 산업은 전체 수출의 12.2%를 차지하며, 그중 약 30%가 미국 시장으로 향했다.

 

특히 현대차와 기아차는 미국 내 주요 판매 상위 브랜드로 자리잡으며 양호한 실적을 유지해왔지만, 미국 정부가 2025년부터 본격 추진한 관세 강화 조치는 이들의 입지를 송두리째 흔들고 있다.

 

한국산 내연기관차와 하이브리드차에 대해 ‘친환경 촉진’이라는 명분 아래 부과되는 추가 관세는, 실상 자국 내 자동차 산업 보호와 일자리 회귀를 노린 전형적인 보호무역 전략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전기차 및 배터리 산업 역시 압박에서 자유롭지 않다.

 

미국은 자국 내 전기차 보조금 지급 조건으로 ‘북미 지역 생산’을 명시했고, 이에 따라 LG에너지솔루션, SK온, 삼성SDI 등 한국의 대표적인 배터리 3사는 미국 현지공장 건설과 증설 프로젝트를 추진해야 하는 현실에 직면했다.

 

그러나 중소 부품업체들은 이 같은 빠른 현지화 전환에 필요한 자본과 기술, 인력 인프라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중소기업중앙회가 발표한 2025년 1분기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시장과 관련된 중소 제조업체 중 48%가 “IRA 및 관세정책 이후 미국 시장 접근이 어려워졌다”고 답했으며, 그중 27%는 “이미 주요 계약이 취소되거나 유예됐다”고 밝혔다.

 

이는 단순한 일시적 거래 중단이 아니라, 한국 중소기업들이 국제 공급망에서 구조적으로 퇴출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중대한 신호다.

 

문제의 본질은 한국 제조업 생태계가 단순히 대기업 중심이 아니라 수천 개 중소·중견기업이 ‘하청-협력’ 구조를 통해 작동해왔다는 데 있다.

 

한국의 자동차 산업만 해도 3만 개 이상의 중소기업들이 엔진, 배선, 전장부품, 인테리어 등 세부 산업군에 참여하고 있으며, 조선·전자·기계·정밀화학 산업 역시 유사한 구조를 갖고 있다.

 

이들 중소기업이 붕괴되면, 단지 하청 생태계만이 아니라 대기업의 조립·공정 효율성도 장기적으로 심각한 손실을 입을 수밖에 없다. 실제로 2025년 들어 미국 내 전기차 생산 확대에 따라 수입산 부품에 의존해왔던 미국 완성차 업체들이 국내 부품공급망 확보에 나서면서 한국 부품업체 다수가 기존 계약에서 탈락하거나 단가 인하 압박을 받고 있다.

 

특히 고정밀 부품을 생산하는 중소기업들은 직격탄을 맞고 있다.

 

엔진, 변속기, 파워트레인, 센서류 등은 고도의 기술력과 장비가 요구되며, 미국 현지에서 단기간 내 신규 공장을 세우는 것은 자본력과 인력 수급 측면에서 비현실적이다.

 

예를 들어 경기도 시화산업단지 내 한 자동차 부품업체는 2024년 연말 기준 연매출의 60%를 미국 수출에 의존하고 있었으나, 2025년 1분기 수출 물량이 절반 이하로 감소하며 매출 급락, 일부 생산라인 폐쇄, 인력 구조조정이라는 3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정부의 대응 역시 구조적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글로벌 공급망 재편 대응전략'을 수립해 대기업을 중심으로 세제혜택, 투자 유치, 공급망 안전망 구축 등을 추진하고 있지만, 실제 중소기업에 도달하는 혜택은 극히 제한적이다.

 

수출입은행, 산업은행 등 정책금융기관의 지원도 일정 규모 이상의 프로젝트에 국한되면서, 영세·중소 규모의 부품업체들은 자력 생존을 위한 선택지가 거의 없는 상황에 내몰리고 있다.

 

한국 정부는 대외적으로는 ‘동맹경제’와 ‘글로벌 협력’을 강조하면서도, 내부적으로는 중소기업의 자생적 대응 능력을 과소평가하고 있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현실은 이와 정반대다.

 

미국의 정책은 동맹국 간 산업 이전을 경쟁시키며, ‘미국 내 생산 시 인센티브, 미이행 시 페널티’라는 명확한 신호를 주고 있다. 이른바 ‘착한 동맹은 보상하고, 불응하는 동맹은 제재한다’는 관세 기반 외교의 구조 속에서, 한국 중소기업은 가장 취약한 고리로 노출되어 있다.

 

이러한 흐름은 단순한 대미 수출 문제에 그치지 않고, 산업 생태계 자체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 이미 2025년 2분기 기준으로 중소 제조업체의 도산 건수는 전년 대비 17% 증가했으며, 자동차 부품업체의 경우 2024년 대비 약 21%의 수출 감소를 기록하고 있다. 일부 업체는 베트남, 태국, 멕시코 등 제3국을 통한 우회 수출을 시도하고 있지만, 현지 법인 설립, OEM 제휴, 물류 조정 등의 난관이 만만치 않다.

 

이러한 위기 속에서 한국 중소기업에게 남은 선택지는 세 가지다. 첫째는 미국 현지 법인 설립과 생산기지 구축이다. 이는 수백억 원 이상의 투자와 수년의 시간이 필요한 고위험 전략이다. 둘째는 제3국을 통한 우회 수출 및 OEM 협력 확대다.

 

그러나 이는 인증, 품질관리, 유통망 확보 등 다양한 제약이 따른다. 셋째는 미국 시장을 포기하고 유럽, 중동, 동남아 등으로 시장을 다변화하는 전략이다. 하지만 이 역시 물류, 문화, 기술 인프라 등의 진입장벽이 존재한다.

 

결국 중소기업 혼자서는 살아남기 어렵다. 지금 필요한 것은 실질적인 정책지원과 산업전략의 대전환이다. 전문가들은 다음과 같은 대책을 제안한다.

 

‘중소기업 전용 해외진출 펀드’ 설립, KOTRA 및 무역보험공사를 통한 ‘현지화 컨설팅센터’ 운영, 기술 공동개발을 위한 공공기관 연계 클러스터 구축, 그리고 수출 중심 산업구조에서 기술 라이선싱 중심의 파트너십 확대로 방향 전환 등이 그것이다. 또한 관세 혜택을 활용하기 위한 ‘FTA 교육 인프라’ 확대도 병행되어야 한다.

 

특히 한국의 수출 인프라는 여전히 대기업 의존도가 높고, 중소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은 주로 ‘가격’에 의존하는 측면이 크다. 이제는 가격경쟁력이 아니라 기술·특허·인증 중심의 구조로 재편하지 않으면, 한국 중소기업은 단지 미국 시장에서의 철수뿐 아니라, 글로벌 시장에서의 축소를 피할 수 없다.

 

관세전쟁은 더 이상 수출 품목 하나하나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정책과 전략, 산업 생태계 전반에 걸친 구조적 대응의 문제다. 중소기업이 무너지면, 대기업도 뿌리부터 흔들리게 된다. 그리고 국가 경제는 이중구조의 붕괴 속에서 치명적인 충격을 맞을 수밖에 없다.

 

 

지금이야말로 ‘산업 중심의 국가’에서 ‘정책 중심의 보호 체계’로의 패러다임 전환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관세전쟁의 본질은 결국, 누가 산업을 지킬 것인가에 대한 선택의 문제다. 정부가 스스로를 ‘전선의 사령관’으로 인식하지 않는 한, 이 싸움은 산업의 최전선에서 싸우고 있는 수많은 중소기업들의 고독한 전투로 남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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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포털 지원센터 대표
내외신문 광주전남 본부장
월간 기후변화 기자
사단법인 환경과미래연구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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