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관세폭탄, 시진핑에게 건넨 ‘정치적 선물’-자충수가 된 고율 관세, 중국 자립의 명분만 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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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국의 중상주의 정책을 펴고 있는 트럼프와 그의 참모 피터나바로, 로버트라이트하이저 |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 주도한 고율 관세 정책이 중국을 향한 경제적 압박 수단으로 설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역설적으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는 정치적 기회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확산되고 있다.
겉으로는 양국 간 무역 불균형을 해소하고 미국 제조업을 보호하겠다는 명분 아래 관세 폭탄이 투하됐지만, 중국 내부에선 오히려 자립 경제에 대한 담론이 부활하고, 시진핑의 지도력이 더욱 공고해지는 효과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이른바 ‘트럼프 효과’의 실질적 수혜자가 예상과 달리 중국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시진핑 주석은 최근 스페인 총리와의 정상회담 자리에서 "중국은 자력갱생과 고된 투쟁을 통해 발전해왔으며, 그 누구의 시혜에도 의존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이는 미국이 주도하는 경제 압박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강경한 메시지이자, 전통적인 ‘자립형 사회주의 경제’ 담론을 국민들에게 다시금 각인시키는 시도였다.
이 같은 발언은 단순한 외교적 수사에 그치지 않고, 실제 정책으로도 이어졌다. 중국은 미국산 주요 수입품에 대한 관세를 125%까지 인상하는 맞불을 놓았고, 나아가 희토류와 같은 전략 자원의 수출 통제 강화라는 ‘비관세 보복 조치’도 본격화하고 있다.
이러한 조치는 전통적으로 당·정 내부에서조차 민간 기업에 피해가 갈 수 있어 조심스럽게 접근해왔던 사안임에도, 이번에는 국가 차원의 자존심 회복이라는 프레임이 강화되며 전격적으로 단행되었다.
중국의 이런 대응은 국내 정치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민족주의적 정서를 자극하고, '고난의 행군을 이겨내는 중화민족의 부흥'이라는 서사를 통해 시진핑 체제의 정당성을 보완하는 전략으로 기능하고 있다.
특히 최근 중국 경제가 구조적 둔화 국면에 진입하고, 청년 실업률 상승, 지방정부 채무 위기, 제조업 수출 감소 등 다중 위기를 겪는 상황에서, 외부의 압력을 역이용하는 ‘외부 요인 동원형 내부 결속’ 전략이 다시금 효용을 발휘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에 따라 정치적으로는 위기를 기회로 전환한 셈이며, 트럼프의 관세 폭탄이 오히려 시진핑에게 ‘정치적 선물’이 됐다는 평가도 나온다. 중국 내부 논평들에서는 “미국의 강경노선은 오히려 중국의 전략적 인내를 강화시키는 기폭제가 된다”는 반응이 나타나고 있으며, 일부 관영 매체는 트럼프의 강압적 관세 외교를 “중국의 자주적 발전 의지를 불붙이는 촉매제”로까지 묘사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미국의 관세 전술은 경제적 전투에서의 승리를 추구하지만, 지정학적 외교 무대에서는 전략적 실책이 될 가능성을 품고 있다. 미국은 중국 외에도 베트남, 라오스, 캄보디아 등 동남아시아 국가들에 대해서도 ‘우회 수출 통로’라는 명분으로 관세 압박을 확장하고 있다.
특히 베트남은 중국과의 생산 연계도가 높은 국가로, 많은 글로벌 기업들이 ‘차이나 플러스 원’ 전략의 대안지로 베트남에 생산기지를 옮겼지만, 이 또한 미국의 관세 범주에 포획되고 있다.
그 결과, 미국은 중국만이 아니라 중국의 공급망 위성국가 전체를 겨냥한 새로운 경제국경선을 그려나가고 있는 것이며, 이는 단기적으로는 글로벌 생산재 편입 비용을 증가시키고, 장기적으로는 동남아 신흥국들마저 중국 중심 경제 질서로 더 밀착시키는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
![]() ▲ 시진핑과 트럼프의 관세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
실제로 중국은 이러한 기회를 포착해, ‘일대일로(一帶一路)’ 정책을 재정비하면서 동남아시아에 대한 인프라 투자와 군사·외교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특히 라오스 고속철도 사업, 캄보디아의 항만 개발, 베트남과의 민간 교류 확대 등은 단순한 경제 협력을 넘어 ‘정치적 이중 포지셔닝’ 전략의 일환이다.
다시 말해, 미국의 관세 정책이 공급망 단절을 유도할수록, 중국은 더 많은 자원을 외부 확장에 투입하며 자국을 중심으로 한 지역 경제 블록을 구축하려는 시도를 가속화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곧 트럼프 전략의 가장 큰 아이러니로, 압박은 확장을 초래하고, 고립은 결속을 촉진하며, 제재는 오히려 상대국 내부의 자립 담론을 심화시키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한편 트럼프 전 대통령은 최근 중국 측과의 대화를 공개적으로 제안했으나, 중국 정부는 이에 냉담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현재로서는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 간의 직접 대화 일정은 없다”고 밝히며, 실질적인 협상 테이블조차 성사되지 않은 상태다.
이는 중국 측이 미국의 전술 변화를 일종의 ‘전략적 혼란’으로 간주하고 있음을 방증한다. 트럼프가 미 대선을 앞두고 국내 정치적 의도에서 관세 카드를 다시 꺼내 들고 있다는 점을 간파한 중국은, 이를 단기적 대선용 카드로 해석하며 원칙 없는 협상에는 응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트럼프의 관세 정책이 단기적으로는 미국 내 산업 보호라는 명분을 강화할 수 있지만, 중장기적으로는 중국의 자립 경제 구조를 더욱 견고하게 만들고, 글로벌 공급망 재편의 결과마저 중국 중심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우려한다.
특히 기술 자립, 통화 블록화, 자원 수급 경로의 다변화 등은 관세 압박의 반사작용으로 중국이 이미 추진하고 있는 전략들이다. 이러한 점에서 미국의 경제 압박이 외교적 설득과 전략적 연합의 기반 없이 강행될 경우, '전략적 승리'는커녕 '지정학적 고립'이라는 역풍을 맞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결국 트럼프의 관세 정책은 단순한 무역 장벽을 넘어서, 중국 정치 시스템 내 권력 구조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전방위적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시진핑 주석은 경제 성장률 하락과 군부 장악, 지방 부채 문제 등 내부적 도전에 직면해 있었지만, 미국이라는 ‘공통의 외부 적’을 설정함으로써 체제 정당성을 되찾고 있다.
![]() ▲ 한판 한 엘론머스크와 피터나바로 관세정책으로 초기부터 갈라질 위기의 트럼프2기 행정부 |
이러한 상황에서 국제사회의 주목은 점차 '무역전쟁의 승패'가 아니라, '관세 정책이 만든 정치적 지형 변화'로 옮겨가고 있다. 한 시대를 대표했던 ‘미중 협력’은 이제 ‘미중 상호 자극의 악순환’으로 변질되고 있으며, 트럼프의 고율 관세는 역사적으로 시진핑 체제를 강화시킨 반사적 사건으로 기록될 수도 있다.
경제는 이념과 제재의 싸움이 아니라, 정치와 심리의 투쟁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이 관세전쟁의 진정한 승패는 GDP나 무역흑자가 아니라, '국가 리더십의 위기 관리 능력과 국민 통합 역량'으로 결정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