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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여행 꼭 알아야 하는 3가지

세로로 긴 창과 방충망 없는 일상, 그 배경엔 기후와 제도가 있었다
공공 화장실의 유료화, 중세 금욕주의와 현대 도시의 비용 논리
안주 없는 술잔, 공동체 대신 개인의 기호로 정착된 유럽의 음주 문화

김누리 기자 | 기사입력 2025/04/15 [10:09]

유럽여행 꼭 알아야 하는 3가지

세로로 긴 창과 방충망 없는 일상, 그 배경엔 기후와 제도가 있었다
공공 화장실의 유료화, 중세 금욕주의와 현대 도시의 비용 논리
안주 없는 술잔, 공동체 대신 개인의 기호로 정착된 유럽의 음주 문화

김누리 기자 | 입력 : 2025/04/15 [10:09]

유럽 여행에서 마주치는 낯선 풍경은 때때로 작은 불편함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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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럽의 창문에는 방충망이 없다    

 

창문에는 방충망이 없고, 공공 화장실은 유료이며, 술자리는 안주 없는 잔만 덩그러니 놓여 있다. 누군가에겐 단순한 문화 차이로 여겨지지만, 이러한 풍경들은 그 나라의 기후, 제도, 역사, 철학이 빚어낸 결과물이다.

 

특히 유럽의 전통 건축과 생활 양식은, ‘왜 저럴까’라는 질문을 던지게 하면서도, 결국은 그들의 문명사가 쌓아올린 일상의 얼굴임을 보여준다. 유럽 대륙 곳곳을 다니다 보면 공통적으로 눈에 들어오는 세로로 길쭉한 창문은 단순한 취향이 아니다.

 

이러한 창문의 형상은 유럽의 건축 기술과 자재, 세금 제도, 심지어 기후까지 결합된 구조적 산물이다. 유럽의 전통 건축은 석회암, 벽돌, 화강암 등 돌 기반 자재를 중심으로 발달했다. 이들은 무겁고 강하지만 인장력은 떨어지는 탓에 기둥보다 벽 중심 구조가 선호되었고, 자연스레 가로가 긴 창보다 세로로 좁고 긴 창이 건물의 하중을 분산하는 데 유리했다.

 

심지어 한때는 창문의 크기에 따라 세금이 부과되기도 했기에, 이중의 제약 속에서 ‘작고 긴 창문’은 가장 합리적 선택이었던 셈이다.

 

반면, 한국은 여름철 높은 강수량과 습도, 그리고 목재나 기와 같은 상대적으로 가벼운 자재를 중심으로 한 건축 방식이 주를 이뤘다. 이러한 기후적·재료적 특성은 넓은 가로형 창을 가능케 했고, 그 안에서 통풍과 채광을 최대화하는 방향으로 발전했다. 창문 하나에도 각 대륙의 기후, 자재, 세금 정책이 녹아 있는 셈이다.

 

방충망의 부재 또한 이와 같은 구조적 차이에서 비롯된다. 유럽의 세로형 창은 우리나라처럼 창문을 양쪽으로 밀어 여닫는 ‘슬라이딩형’이 아닌, 안팎으로 당겨 여는 ‘캐시먼트형’이 많다. 이 방식은 방충망을 설치하더라도 창문을 여닫는 데 불편함을 야기하므로 구조적 비효율을 수반한다.

 

게다가 유럽의 평균적인 해충 밀도는 한국보다 낮다. 여름에도 모기나 날벌레가 상대적으로 적기에, 방충망이 꼭 필요한 요소로 인식되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기후 변화와 지구 온난화로 인해 유럽의 여름이 길어지고, 해충 번식 환경이 좋아지면서 ‘방충망을 설치하자’는 목소리도 곳곳에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오스트리아, 독일, 프랑스 남부 등지에서는 벌레 차단용 임시 덧문이나 탈부착 방충망을 도입한 가정도 늘고 있다. 단순히 ‘불편하다’는 감정이 아니라, 구조와 기후, 역사와 문화가 한데 얽힌 복합적인 문제로써 이해해야 할 맥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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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금을 받는 화장실은 기본인데 이런 화장실도 많이 있지 않다    

 

이러한 불편함은 화장실에서도 마찬가지다.

 

유럽을 찾은 여행자들이 가장 자주 마주하는 불만 중 하나는 화장실 부족과 유료화 시스템이다. 독일 방송 MDR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도심에서 공공 화장실이 부족하다고 느낀 시민이 전체 응답자의 80%에 이른다. 특히 여성, 노인, 어린이에게 이러한 부족 현상은 단순한 불편을 넘어선 생활 불안 요소가 되기도 한다. 이러한 현상은 단순히 예산 부족 때문만은 아니다.

 

그 뿌리는 중세 금욕주의 사상과 복잡한 도시 운영 규제, 그리고 현대적 문제인 노숙자 문제와 범죄 예방 논리까지 엮여 있다. 로마 제국 시절만 해도 유럽은 고대 수세식 화장실 문명의 중심지였다. 로마의 공공 욕장과 오수 처리 시스템은 오늘날에도 경외의 대상이다.

 

하지만 중세에 접어들며 카톨릭 금욕주의와 종교적 위계 구조가 일상에 깊숙이 침투하면서, 인간의 신체와 배설을 외부로 드러내는 공간은 ‘은밀한 것’으로 규정되었다. 그 결과 공공 위생 시설은 제도적 뒷전으로 밀렸고, 20세기까지도 대부분의 도시가 공공 화장실 확충을 미루었다. 현대에 와서야 이런 문제를 재정비하려 했지만, 유럽의 고도화된 도시 구조는 쉽게 변하지 않았다.

 

여기에 현대 유럽이 적용하고 있는 ‘사용자 부담 원칙’은 또 다른 함정이다. 공공 화장실의 설치·관리 비용을 이용자에게 전가하면서, 자연스럽게 유료 시스템이 정착되었다. 게다가 도심 내 공공 시설이 노숙자의 쉼터로 악용되거나, 약물 중독자 및 성범죄 사건의 발생지로 전락하는 경우도 빈번해지자, 지방 정부들은 신규 설치에 더욱 소극적이 되었다.

 

대신 쇼핑몰, 카페, 레스토랑 등의 사설 공간이 화장실을 개방하고, 이 공간을 이용하기 위한 조건으로 음료 구매나 소액 결제를 요구하는 방식이 확산됐다. 결국 화장실이라는 일상적 필요조차 ‘시장 논리’에 따라 운영되는 유럽의 현실은, 불편함 그 이상의 사회 철학과 제도 문제를 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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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럽은 혼술문화에 안주를 먹지 않는다.    

 

이러한 실용성과 개인주의가 강조된 유럽 생활 문화는 술 문화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한국을 포함한 동양권에서는 술이 단순한 음료가 아닌 ‘의례적 도구’에 가깝다. 상급자가 술잔을 따르고, 동석자가 건배사를 외치는 순간 술은 공동체 유대와 위계를 나누는 매개체가 된다.

 

그리고 여기에 반드시 따라붙는 것이 ‘안주’다. 탕, 볶음, 찜, 구이까지 술과 함께 식탁을 차리는 문화는 음식과 음료가 분리되지 않은 통합형 잔치 문화의 산물이다. 이는 곧 술이 ‘기호’가 아니라 ‘의례’의 일부로 자리 잡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반면 유럽의 술 문화는 이와 다르다. 이들은 오히려 ‘혼술’과 ‘무안주’를 문화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강하다.

 

그 이유는 단지 입맛의 차이나 전통의 문제가 아니다. 석회질이 많은 유럽의 물은 오래전부터 음용에 적합하지 않았고, 이에 따라 맥주와 포도주가 대체 음료로 널리 소비되었다.

 

독일이나 체코에서는 물 대신 맥주를 식사 중에 마시는 풍경이 일반화되어 있으며,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는 포도주가 매일의 식탁을 구성하는 요소다.

 

이는 술이 자연스럽게 ‘기호식품’으로 편입된 구조이며, 그만큼 식사와 음주의 경계가 흐려진다. 술은 더 이상 특별한 의식이나 유대의 매개가 아닌, 일상의 일부가 되었다.

 

14세기 페스트 유행 이후 유럽 사회는 생존 중심 가치관으로 급격히 전환되었다. 이때부터 증류 기술이 퍼지며 고도주가 유행했고, 술은 사교의 도구라기보다 스트레스를 풀고, 현실을 잠시 잊기 위한 기호품으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영국의 진(Gin), 러시아의 보드카 같은 강한 술들이 유행하며 ‘짧고 강한 음주’가 문화로 굳어졌다. 유럽의 술잔은 건배를 위한 것이 아니라, 일상의 피로를 흘려보내는 도구였다. 안주 없는 술, 혼자 마시는 술이 이상하지 않은 이유다. 카페에서 책 한 권과 함께 와인을 홀짝이는 장면이 영화처럼 낭만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그들이 그것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유럽의 창문, 화장실, 술잔 하나에도 그들의 역사와 구조, 제도와 기후, 철학과 경제 논리가 응축되어 있다. 한국인들이 느끼는 유럽의 불편함은 사실 불편함이 아니라, 상대 문화의 깊이와 맥락을 미처 체화하지 못한 낯섦이다.

 

그것은 더 배워야 할 지점이기도 하고, 동시에 우리 일상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문화적 거울이기도 하다. 여행자가 진정한 의미에서 유럽을 이해하는 길은 낯선 불편함 속에서 ‘왜’라는 질문을 멈추지 않는 데 있다. 그리고 그 질문 끝에서 우리는 조금 더 넓은 시야를 갖게 된다. 유럽은 언제나 그렇게 ‘익숙한 낯선 세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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