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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의 여인, 역사를 꿰뚫다” – 마거릿 대처의 성공과 몰락

냉전의 회오리 속에 선 영국, ‘대처리즘’의 탄생과 철강보다 강한 리더십
포클랜드 전쟁의 승자, 그러나 광산촌의 눈물을 잊은 리더
권력의 정점에서 퇴진의 절벽까지, ‘철의 여인’의 쓸쓸한 퇴장

김누리 기자 | 기사입력 2025/04/14 [10:44]

“철의 여인, 역사를 꿰뚫다” – 마거릿 대처의 성공과 몰락

냉전의 회오리 속에 선 영국, ‘대처리즘’의 탄생과 철강보다 강한 리더십
포클랜드 전쟁의 승자, 그러나 광산촌의 눈물을 잊은 리더
권력의 정점에서 퇴진의 절벽까지, ‘철의 여인’의 쓸쓸한 퇴장

김누리 기자 | 입력 : 2025/04/14 [10:44]

“철의 여인”이라는 별명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마거릿 대처는 영국 역사상 최초의 여성 총리로 1979년부터 1990년까지 총 11년간 영국을 통치했다. 그러나 그 ‘철의 여인(Iron Lady)’이라는 별명은 영국 국내에서 붙여진 것이 아니라, 아이러니하게도 구소련의 군사 전문지 《레드 스타》에서 등장한 표현이었다.

 

냉전기, 대처는 강경한 반공 정책과 확고한 군사력 증강 의지를 내세우며 서방 진영의 단호한 수호자로 자리 잡았다. 이를 본 소련은 그녀의 단호한 대외 정책을 경계하며 “철로 만든 여자”라고 묘사했고, 이 표현은 곧 전 세계 언론과 영국 국민에게 상징적인 명칭으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대처는 “나라를 부흥시키는 방법은 기업가 정신에 있다”는 신념을 바탕으로, 국영기업 민영화, 노조 권한 축소, 복지 축소와 같은 대대적인 경제 개혁을 단행했다. 이는 '대처리즘(Thatcherism)'이라 불리며, 이후 영국은 저성장과 고물가, 만성적인 파업의 악순환에서 벗어나는 듯한 조짐을 보였다.

 

그녀는 경제정책만이 아니라 외교와 안보에서도 매우 강경한 입장을 고수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1982년 아르헨티나와의 포클랜드 전쟁이었다. 대처는 군사작전을 단행해 포클랜드를 성공적으로 수복하며, 리더십과 결단력을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다. 이 전쟁의 승리는 당시 여론의 급격한 반전을 이끌었고, 그녀의 총리 재선에도 결정적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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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철의여인의 별명을 가진 마거릿대처    

 

하지만 ‘철의 여인’의 리더십은 시간이 지날수록 균열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경제가 성장하는 동안에도 산업 구조 재편 과정에서 수많은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었고, 특히 탄광 폐쇄로 인한 광산촌의 붕괴는 대처 정권에 대한 국민적 분노를 키웠다. 강력한 노동조합과의 충돌은 1984년 광부 파업에서 극에 달했으며, 대처는 강경 대응을 선택함으로써 갈등의 골을 더욱 깊게 만들었다. 결과적으로 대처는 ‘분열의 지도자’라는 평가도 함께 받았다.

 

또한 그녀의 정책 중 가장 큰 반발을 일으킨 것은 1990년에 시행된 ‘인두세(Poll Tax)’였다. 전국민에게 동일하게 세금을 부과하는 이 제도는 저소득층에게는 지나치게 가혹한 부담이 되었고, 런던에서는 대규모 폭동이 일어날 만큼 격렬한 저항을 불러왔다.

 

이는 여당 내에서도 분열을 초래했고, 오랜 동지들이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결국 같은 해, 당내 쿠데타에 가까운 방식으로 대처는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는 퇴진 이후에도 강단 있는 정치적 신념을 끝까지 유지했다. 자신의 회고록과 연설을 통해 여전히 ‘소신’을 이야기했고, 보수주의에 대한 확고한 철학을 공유했다.

 

그러나 대중과의 거리감은 끝내 좁혀지지 않았고, 생전에도 사후에도 그녀는 “영국을 개혁한 위대한 지도자”라는 평가와 “사회적 약자를 무너뜨린 독재자”라는 상반된 인식을 동시에 안고 있었다.

 

2013년 4월, 그녀가 세상을 떠났을 때 영국 전역은 조용한 애도와 함께 논쟁이 재점화되었다. 그를 기리는 동상과 전기들이 발표되는한편, 어떤 도시에서는 그의 사망을 축하한다는 퍼레이드까지 벌어졌다.

 

대처의 삶은 성공과 실패, 존경과 증오, 혁신과 분열이라는 모든 요소가 응축된 20세기 정치사의 복합적 상징이라 할 수 있다.

 

결국, 마거릿 대처의 ‘철’은 단단함의 상징인 동시에, 굽힐 줄 모르는 고집의 상징이기도 했다. 역사는 그녀의 행보를 단순히 칭송하거나 비판할 수 없다. 대처의 이름은 강철처럼 빛나는 리더십이 남긴 복잡한 그림자로, 오늘날에도 여전히 세계 정치의 거울로 비춰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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