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의 대선 출마자들의 착각.신돈과 궁예와 윤석열 정권“아전인수(我田引水)” 끝판왕 한덕수 출마설
“이번 대선은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누가 윤석열 정권에 잘못에 대한 책임을 질것이냐에 대한 평가'가 훨씬 더 중요합니다.”
유권자들은 이미 그렇게 판단하고 있다. 문제는 정작 국민의힘만 모른다는 것이다.
여전히 '정권 재창출'이라는 주문을 외우며 땅속에서 썩은 묘목을 다시 심겠다는 분위기다. 그 착각은 최근 경남 거제시장 보궐선거에서 민심이 어떻게 흘러가는지조차 읽지 못하는 데서 잘 드러난다.
거제는 보수의 심장 중 하나였고, 윤석열 정부 이후에도 여당 지지세가 비교적 단단했던 지역이다.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국민의힘 후보는 외면당했고,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승리했다. 민심은 지역 공약이나 조직력보다 더 근본적인 것을 심판했다.
이름하여 정권의 잔여물에 대한 불신이다.
문제는 더 심각하다. 국민의힘은 이를 ‘후보 경쟁력이 부족했다’, ‘조직이 안 돌아갔다’는 식으로만 해석한다. 민심의 근본적 흐름은 보지 않고, 여전히 ‘아전인수(我田引水)’의 해석만 반복한다.
심지어 한덕수 총리까지 대선 출마를 검토 중이라는 보도까지 나왔다.
이는 민심을 해석하는 능력의 한계가 아니라, 애초에 해석할 의지가 없는 정당의 태도다. “국민은 잊지만 우린 기억해요”가 아니라, “국민은 기억하지만 우린 잊었어요”에 가깝다.
더욱 가관인 건, 당 내부의 움직임이다.
20명이 넘는 인사들이 차기 대선 출마를 저울질 중이다. 누구는 윤석열의 적자라 주장하고, 누구는 윤석열을 반면교사 삼아 나라를 구하겠다고 외친다. 그런데 그들 중 누구 하나, “윤석열 정권의 실패에 대해 내가 책임지겠다”고 말하는 이는 없다.
모두가 영광의 계승자거나, 실패의 해설자일 뿐이다. 누가 도와달라고 한 것도 아닌데, 자처해서 무대에 오르려는 이들이 넘친다. 유권자들이 “이 정권에 책임질 사람은 누구냐”고 묻고 있는데, 이들은 “내가 다음 주인이다”라며 손을 든다. 주인 없는 잔칫상에 몰려든 권력의 손님들이다.
역사적 장면은 되풀이된다. 고려 말기, 신돈은 미천한 출신의 승려였으나 공민왕의 총애 속에 권력의 정점에 섰다.
불교의 권위를 등에 업고 전민변정도감을 통해 권문세족의 토지를 몰수하고, 민생 개혁을 밀어붙였다. ‘살아있는 미륵보살’이라는 찬사 속에서 절대 권력을 행사했지만, 개혁은 왕권에만 의존했고, 귀족과의 협치를 무시한 채 힘으로 밀어붙였다.
결국 그는 “모든 적을 만든 개혁가”가 되었고, 공민왕이 그를 버리자 역모 혐의로 참형당했다. 칼이 손을 떠나는 순간, 신돈은 목숨도 떠났다. 혁명가는 체제와 함께 무너졌고, 백성의 신망은 결국 남지 않았다.
궁예 역시 불교를 정치 도구로 활용한 인물이었다. 미륵보살을 자처하며 신라 말기의 민심을 끌어모았지만, 그의 정치는 곧 광기와 폭정으로 변질되었다.
초기엔 예언자, 구세주, 하늘의 아들이었지만, 후반엔 왕권을 사유화하고 반대파를 숙청하며 내부 반란으로 축출되었다. 결국 그는 신격화된 폭군이라는 비극적 상징이 되었고, 민심은 더는 신비주의의 포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리고 오늘날, 윤석열 정권도 비슷한 궤적을 밟았다. ‘공정과 상식’을 내세우며 기대 속에 출범했지만, 정무 감각의 부재, 검찰 인사 편중, 정치 보복성 수사, 그리고 이념 편향의 기조는 국민의 피로감을 넘어 분노로 바뀌었다. ‘공정’은 조롱의 대상이 되었고, ‘상식’은 완전히 실종됐다.
급기야 계엄령 논의, 탄핵 국면까지 거치며 정권은 무너졌고, 그 정권을 구성한 인물들은 여전히 책임이 없다고 말한다. 총선 참패조차도 “지역 전략 실패”로 치부하며 스스로를 정당화하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정권 책임 없음’의 황혼기다.
이 와중에 나타나는 출마 러시는, 마치 신라 말 각지의 호족들이 스스로를 왕이라 선포하던 풍경을 연상시킨다. 궁예가 왕이 되고, 견훤이 나라를 세우고, 후백제와 후고구려가 번성하던 그 무질서의 시기 말이다.
지금 국민의힘 안팎에서 벌어지는 일도 다르지 않다. 윤석열 탄핵 직후, 10명이 넘는 보수 대권주자들이 일제히 등판을 선언했다.
전광훈의 교회, 구 국정농단 세력, 신보수 인사들까지 각양각색의 정치인들이 자신이 ‘미래’라 주장한다. 윤석열의 그림자 속에서 함께 권력을 나눠 가졌던 이들조차, 이제는 자신이 구세주라며 돌아온다.
하지만 정작 그들 누구도 말하지 않는다. 그들이 윤석열 정권을 가능하게 했던 바로 그 구조의 일원이었음을. 그들이 내세운 미래가, 과거와 완벽히 단절되지 않았음을. 결국 유권자들은 ‘누가 적임자인가’가 아니라, ‘누가 책임자인가’를 묻는다. ‘미래를 말하는 자’보다, ‘지난 3년을 반성하는 자’를 찾고 있다.
정치적 세기말에는 언제나 허상이 넘쳐난다. 출마자는 많고, 비전은 없으며, 책임자는 실종된다. 누구나 적임자라 말하지만, 아무도 죄인이라 말하지 않는다. 그런 정치에 대한 국민의 분노는, 단순한 심판이 아니라 정치 체제를 갈아엎는 거대한 쓰나미로 번질 수 있다.
그리고 역사는 늘 그 허상을 먼저 무너뜨린다. 역사는 반복되되, 오만한 자들만이 그 반복의 희생양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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