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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악관은 변했는데, 대통령실은 그대로…책상 위 교수와 관료 들만 늘어난 한국

“페이팔 마피아의 백악관 점령, 한국은 여전히 회의실 안 교수들의 보고서에 머문다”

“기술이 외교가 되고, 자본이 안보가 된 시대…실전형 전략가 없는 한국의 공백”

“교수 중심의 자문구조로는 테크 과두정 대응 못 해…‘디지털 패권 전략실’ 시급”

전태수 기자 | 기사입력 2025/04/11 [10:36]

백악관은 변했는데, 대통령실은 그대로…책상 위 교수와 관료 들만 늘어난 한국

“페이팔 마피아의 백악관 점령, 한국은 여전히 회의실 안 교수들의 보고서에 머문다”

“기술이 외교가 되고, 자본이 안보가 된 시대…실전형 전략가 없는 한국의 공백”

“교수 중심의 자문구조로는 테크 과두정 대응 못 해…‘디지털 패권 전략실’ 시급”

전태수 기자 | 입력 : 2025/04/11 [10:36]

2025년 현재, 미국 백악관 내부는 과거와는 전혀 다른 권력구조 속에서 작동하고 있다. 전통적 정치 엘리트나 관료가 아니라, 실리콘밸리의 자본 엘리트들이 미국의 정책을 사실상 설계하고 주도하는 체제, 즉 ‘테크 과두정(Tech Oligarchy)’의 시대가 본격화되었다.

 

그 중심에는 ‘페이팔 마피아’라 불리는 일단의 인물들이 있다. 피터 틸(Peter Thiel), 일론 머스크(Elon Musk), 리드 호프먼(Reid Hoffman), 키스 라보이스(Keith Rabois) 등 페이팔 출신의 테크 거물들은 이제 단순한 기업인이 아니라 백악관의 전략 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실상의 정책 브레인이다.

 

이들의 영향력은 로비스트 수준을 넘어선다.

 

틸은 트럼프 행정부 시절부터 백악관 내부 안보·기술 자문그룹을 통해 국방·기술 정책을 좌지우지했고, 머스크는 NASA와 펜타곤의 계약, 우크라이나·이스라엘 분쟁에 위성망을 공급하며 미 외교안보 전략의 도구가 되었다. 이들이 사실상 미국의 ‘국가전략을 민영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은 어떤 대응을 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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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과 미국의 차이는 책상위 전문가가 거의 없어진 미국과 한국은 아직도 책상위 전문가들과 관료들이라는 데 차이가 있다    

 

문제는 한국 내부가 이 같은 현실을 정확히 인식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 ‘페이팔 마피아’라는 단어조차 아직 정책담당자나 언론인 사이에서 충분히 공유되지 않고 있으며, 그들이 미국 권력구조 내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작동하는지에 대한 통합적 이해도 전무하다.

 

한국 정부의 기술외교, 산업 전략, 정보·보안 협력 등의 대응은 여전히 분절화된 부처별 대응에 머물러 있으며, 대부분이 미국의 정책을 수동적으로 수용하는 방식에 가깝다.

 

특히 심각한 문제는, 여전히 각종 정책 포럼과 자문위원회를 장악하고 있는 '교수들의 잔치'다. 현실 감각을 잃은 학계 중심의 정책 논의는 오늘날의 데이터 전쟁, 기술 블록화, 산업 생태계 재편이라는 ‘실시간 세계 권력 게임’에서 아무런 기동성도 제공하지 못한다.

 

현재 한국이 마주한 과제는 단순한 산업정책이나 수출 촉진 방안이 아니라, 국가의 기술 주권과 외교 자율성을 유지하면서 미국이라는 동맹국의 ‘사적 권력화된 전략’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에 관한 실전 전략이다.

 

물론 페이팔 마피아는 미국 내에서조차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지만 현실이 그렇다. 

 

특히 공공영역과 사기업의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한 기업의 대표가 미국의 우주정책이나 전쟁 전략을 좌우하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피터 틸이 투자한 팔란티어(Palantir)는 미국 국방부와 CIA, FBI에 빅데이터 분석 시스템을 공급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사실상 정보 권력을 독점하고 있다.

 

이들이 만들어가는 세계 질서는 다국적기업이 주도하고, 국가는 그들의 정책을 추인하는 수단에 불과한 새로운 ‘사이버 제국주의(Cyber Empire)’ 형태다. 이런 체제는 과거처럼 대사 한 명, 장관 한 명의 외교 회담으로는 대응이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은 아직도 ‘4차산업혁명’, ‘디지털 전환’이라는 슬로건 수준의 담론에 머물러 있다. 관료 출신이 자문위원이 되고, 대학 교수가 국가전략위원회에 포진되며, 국내 유수의 싱크탱크는 현실과 동떨어진 전망치를 근거로 미국 정책을 그대로 모방하는 방식의 보고서를 제출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교수들의 잔치’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결정해야 할 전략적 자리는 더 이상 현실을 모르는 교수들의 연구 발표회가 되어선 안 된다. 미국의 기술 권력 구조, 즉 백악관-실리콘밸리-군산복합체 간의 삼각구도를 읽지 못한 채, 무의미한 대입정책 논쟁이나 추상적 기술윤리 논문에 시간을 허비한다면, 한국은 국제사회에서 기술적 종속국가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한국은 지금 즉시 다음과 같은 전략적 대응을 시작해야 한다.

 

백악관 기술 권력의 실체에 대한 종합적 분석을 수행할 전담기구를 구성해야 한다. 기존의 외교부·산업통상자원부 중심 대응은 한계가 있으며, 국가정보원·국가안보실·기획재정부·방위사업청 등과 함께 ‘디지털 패권 전략실’을 신설해 미국 내 권력구조 변화와 기술지형 분석, 국제 표준 전쟁에 대한 실시간 보고 체계를 갖춰야 한다.

 

이어 교수나 연구원이 아닌 실제 기술 기업 창업자, 글로벌 특허전문가, 전략분석가, 정보기관 출신 요원을 중심으로 민관 혼합 전략그룹을 운영해야 한다.

 

다음으로는 한국 기업들이 미·중 기술전쟁에서 어떻게 위치할지를 분석하고, 기술 독립성과 시장 다변화 전략을 구체화해야 한다. 특히 반도체, 인공지능, 클라우드 인프라, 방산기술 등의 분야에서는 미국 기업의 요구를 수용하기 전에 국내 생태계의 자율성을 어떻게 확보할지를 최우선으로 검토해야 한다.

 

페이팔 마피아의 실체는 단순한 자본력만이 아니다.

 

그들은 ‘자본과 기술, 정보와 정치’를 통합한 복합 권력체다. 머스크는 스페이스X로 국방계약을 수주하고, 스타링크로 전 세계 통신을 장악하며, 트위터(現 X)를 통해 글로벌 여론을 실시간으로 조작할 수 있는 플랫폼 권력을 가진다.

 

틸은 팔란티어와 앤드리센 호로위츠를 통해 기술과 금융을 통합하고, 미국 내 이민정책부터 외교 전략까지 개입한다. 이들이 추구하는 세계는 일국 중심의 리버럴 인터내셔널 오더가 아니라, 다국적 민영권력이 설계하는 정보통제 질서다.

 

이런 구도 속에서 한국이 할 수 있는 전략은 단순한 ‘적응’이 아니라 ‘대응’이어야 한다. 기술독립을 위한 자주적 규제권 확보, 데이터 주권을 위한 국제 표준 제정 주도, 동맹 내 기술공조협약에서의 조건부 참여 등이 그 방안이 될 수 있다.

 

 

결국 한국은 이 시점에서 질문을 던져야 한다. 백악관이 아닌 실리콘밸리의 권력이 외교를 지배하고, 한 나라의 대통령보다 더 많은 정보를 가진 테크 재벌이 세계 질서를 구성하는 시대에, 우리는 누구와 협상하고, 무엇을 지키며, 어디서부터 싸움을 시작할 것인가.

 

이제는 국가 전략을 책상 위에 펼쳐놓은 보고서로 대신할 수 없다. 정부는 더 이상 교수들에게 자리를 맡기고, 학회 발표를 정책 결정의 기준으로 삼는 방식으로는 세계 권력 질서 속에서 살아남을 수 없음을 직시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실전 전문가'들의 전략 컨트롤타워이며, 미래 산업을 위한 투자가 아니라, 현재 권력 구조를 이해하고 조정하는 ‘정보주권 국가’로서의 재편이다. 페이팔 마피아는 절대 방심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미 한국의 스타트업, K-콘텐츠, 반도체 협약에 수많은 이해관계를 심어놓았다.

 

한국은 지금 이 순간에도 자율권을 조금씩 잃고 있다. 말뿐인 포용, 신기루 같은 혁신이 아니라, 국가의 생존을 위한 냉정하고 정밀한 전략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지금이야말로 ‘교수들의 잔치’를 끝내고, 전략가의 실전무대를 열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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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기후변화 발행인
내외신문 대표 기자
금융감독원, 공수처 출입기자
사단법인 환경과미래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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