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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핵과 탄저균, 생물학이 만든 또 다른 ‘차별’

결핵은 빈자의병

김누리 기자 | 기사입력 2025/04/02 [05:37]

결핵과 탄저균, 생물학이 만든 또 다른 ‘차별’

결핵은 빈자의병

김누리 기자 | 입력 : 2025/04/02 [05:37]

결핵은 19세기 산업혁명 시기 인류가 직면한 가장 치명적이며 동시에 사회적으로도 깊은 상처를 남긴 감염병 중 하나였다. 이 질병은 단순한 병리학적 질환을 넘어 인간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여실히 드러낸 사례로 기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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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의 세균학자 로베르트 코(Robert Koch)의 연구였다. 1882년 그는 결핵의 원인이 되는 세균, 즉 결핵균(Mycobacterium tuberculosis)을 발견하면서 세균학의 길을 열었고, 질병에 대한 과학적 이해를 가능하게 했다.    

 

산업혁명으로 도시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수많은 노동자 계층이 공장 근처의 열악한 거주 환경에 밀집되기 시작했고, 이는 곧 전염병의 이상적인 온상이 되었다. 결핵은 오염된 공기, 비좁은 주거공간, 영양 부족, 위생 미비 등 가난한 자들에게 치명적인 형태로 퍼져나갔다.

 

이 병은 자연스럽게 ‘빈자의 병’이라 불리게 되었고, 이는 곧 사회적 낙인으로 고착되었다. 감염자는 질병을 옮긴다는 이유로 사회적으로 배제되고 격리되었으며, 그들의 질병은 도덕적 결함이나 위생 불결과 같은 편견과 맞물려 더욱 강한 차별을 불러일으켰다.

 

이는 단순한 건강의 문제가 아닌 계급, 위생, 노동력의 문제로 치환되었고, 사회는 병든 자를 치료할 대상이 아니라 배제해야 할 존재로 규정했다. 결핵이라는 질병 자체보다도, 그 병을 둘러싼 사회적 인식과 제도는 훨씬 더 치명적이었다.

 

병에 걸렸다는 이유로 직장에서 해고당하고, 거주지에서 쫓겨나며, 공동체 내에서 고립되는 사람들은 차라리 병 자체보다 그로 인한 사회적 사망에 먼저 직면하곤 했다. 결핵은 그렇게 육체의 병을 넘어서 ‘사회적 죽음’을 선고하는 구조적 도구로 기능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등장한 것이 바로 독일의 세균학자 로베르트 코(Robert Koch)의 연구였다. 1882년 그는 결핵의 원인이 되는 세균, 즉 결핵균(Mycobacterium tuberculosis)을 발견하면서 세균학의 길을 열었고, 질병에 대한 과학적 이해를 가능하게 했다.

 

코의 연구는 당시 의학계에 혁명을 일으켰으며, 그 공로로 그는 1905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이는 인류가 질병의 원인을 귀신이나 저주가 아닌 과학적 관점에서 이해하게 된 중요한 분기점이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세균학의 발전은 또 다른 방향으로 인류에게 ‘위협’이 되기 시작했다.

 

과학은 언제나 도구일 뿐이며, 그것이 어떻게 사용되느냐에 따라 구원의 열쇠가 되기도 하고, 억압의 무기가 되기도 한다. 결핵균의 발견은 치료제와 백신 개발로 이어지기보다는 오히려 초기에는 감염자를 더욱 명확히 구분하고 격리하는 데 사용되었고, 이는 질병의 의학적 관리가 아닌 통제 수단으로 작동했다.

 

국가와 사회는 세균학적 근거를 내세워 환자들을 병원 아닌 수용소나 격리시설로 내몰았고, 이러한 정책은 보건정책이라는 이름으로 인간을 비인간화하는 기제로 작동했다.

 

그런 가운데 또 하나의 생물학적 존재가 인류 사회의 차별과 억압, 나아가 군사적 위협의 대상으로 부상하게 되었으니, 그것이 바로 탄저균(Bacillus anthracis)이다. 탄저균은 원래 가축에 발생하는 병원균으로 알려져 있었으나, 인간에게도 감염되면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생물학적 병원체로 분류되었다.

 

코는 결핵균을 발견하기 전에 바로 이 탄저균을 연구하면서 세균학적 방법론을 정립했는데, 이 병원균이야말로 과학이 인간을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통제와 파괴의 수단이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전조였다고 할 수 있다.

 

특히 탄저균은 그 강력한 치사율과 공기 및 접촉을 통한 전염성, 그리고 낮은 제작 비용과 보관 용이성 때문에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 사이에 군사적 연구의 주요 대상으로 떠오르게 되었다.

 

실제로 영국, 미국, 일본, 독일 등은 비밀리에 탄저균을 무기화하는 연구를 진행했으며, 이 과정에서 실험대상이 된 것은 다름 아닌 식민지 국민들이었다. 일본 제국의 731부대는 만주에서 탄저균을 포함한 다양한 생물무기를 중국 민간인에게 실험하면서 끔찍한 인체실험을 자행했고, 이는 생물학이 얼마나 빠르게 전쟁과 인종주의의 도구로 전락할 수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였다.

 

그 극단적 사례가 2001년 미국에서 발생한 ‘탄저균 테러 사건’이다. 당시 미국의 여러 주요 언론사와 상원의원들에게 탄저균이 담긴 편지가 발송되었고, 이로 인해 다수가 감염되고 일부는 사망에 이르렀다. 이 사건은 단순한 테러가 아닌, 생물학적 지식이 무기화된 상태에서 사회 전체에 어떤 공포와 혼란을 야기할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탄저균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냄새도 없지만, 편지 한 장에 담겨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을 수 있다는 점에서 현대 사회의 또 다른 ‘비가시적 전쟁’의 상징이 되었다.

 

이 사건 이후 미국 정부는 생물테러에 대응하는 국가안보전략을 본격화했으며, 동시에 생물학 연구에 대한 통제가 더욱 강화되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언제든 다시 이 지식이 소수의 손에 들어가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삼거나, 혹은 정치적 목적의 테러 수단으로 이용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상존하게 되었다.

 

결국 결핵균과 탄저균, 이 두 세균의 역사는 단순히 의학적 발견이나 질병 치료의 진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가 과학이라는 도구를 어떻게 사용했는지에 대한 윤리적 질문을 남긴다. 우리는 과학기술을 통해 병을 이해하고 치료했지만, 동시에 그 기술로 타인을 분리하고 통제하며 억압하는 또 다른 ‘차별의 도구’를 만들어냈다.

 

생물학은 생명의 본질을 이해하려는 학문이지만, 그것이 국가의 정책이나 군사 전략, 사회 구조와 결합될 때, 오히려 생명을 위협하는 수단으로 변질되기 쉬운 특성을 가진다. 따라서 생물학은 결코 윤리와 정치, 인권의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며, 그 지식의 활용과 응용은 항상 인류 공동체 전체의 생명권과 존엄성을 기준으로 재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이는 과학자만의 책임이 아니라, 그 지식을 통해 만들어지는 제도와 사회를 설계하는 모든 인간 공동체의 책임이다. 결핵 환자를 향한 차별, 탄저균을 통한 생물무기 실험, 생물학적 테러로 이어지는 인류의 궤적은 그 자체로 ‘차별의 생물학’이 어떻게 탄생하고 진화해왔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오늘날에도 유전자 편집, 바이러스 연구, 생물정보학 등에서 유사한 윤리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역사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생명과학의 발전은 그 자체로 축복이 될 수도 있고, 저주가 될 수도 있다. 그 갈림길에서 우리는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그 지식을 사용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결코 멈추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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