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돈, 그리고 삶의 가치에 대하여돈의 평등성과 자본주의의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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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 1912년 7월 31일 ~ 2006년 11월 16일)은 미국의 경제학자로, 자유시장 경제와 통화주의를 주창한 인물이다. 그는 1976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하였으며, 그의 연구와 이론은 현대 경제학에 큰 영향을 미쳤다. |
누구나 돈을 많이 벌기 위해 노력하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높은 자리로 올라갈 수 있다는 믿음이 널리 퍼져 있다. 돈 벌기가 전 국민의 스포츠처럼 되어버린 현대 사회는 이러한 자본주의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그러나 돈은 인생의 목적이 아니다. 돈은 항상 다른 무엇인가를 위해 필요하다.
내 집 마련을 위한 적금은 소소한 희망을 준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일하는 가장에게 목돈은 큰 위로가 된다. 하지만 필요 이상으로 많은 돈은 낭비를 부추긴다. 필요를 넘어선 소비는 헛헛함만 남길 뿐이다. 최고급 제품을 소유하고도 마음의 허기는 채워지지 않는다. 필요 이상으로 쌓인 돈은 삶의 균형을 무너뜨릴 수도 있다. 과도한 부는 결국 불행을 가져올 가능성이 크다.
예전에는 사람들 간의 정이 돈보다 앞섰다. 이웃과 함께 놀고, 일을 나누며 결혼식과 장례식을 치렀다. 품앗이라는 공동체적 문화는 사람들 사이에 자연스러운 유대를 만들었다. 그러나 지금은 돈이 인간관계를 지배한다.
우리는 병원에서 돈을 지불하고 태어나고, 돈을 내고 학교에 다니며, 돈을 벌기 위해 각자 다른 직업을 찾는다. 결혼식이나 장례식조차 돈으로 해결한다. 돈만 오가는 관계 속에서 정은 설 자리를 잃어간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돈이 있어야 행복할까?”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는다. 그저 더 많은 돈을 외칠 뿐이다.
돈만 바라보며 살아가는 삶은 결국 스크루지 같은 외롭고 고독한 삶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옛사람들이 돈을 천하게 여긴 이유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옛 그리스인에게 돈은 자유인이 탐낼 만한 것이 아니었다. 인간다운 삶은 생계를 위한 일이 아닌, 여유를 누리는 데 있었다. 자유인은 여유를 통해 자신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었다. 한나 아렌트가 말한 ‘인간다운 삶’은 바로 이러한 여유 속에서 가능했다.
그러나 현대인은 대부분 돈 버는 일에 매달리며 여유를 잃어버렸다. 돈이 충분히 모였음에도 계속 돈에 집착하는 삶은 노예와 다를 바 없다. 한나 아렌트는 현대 사회를 “노동이 사라진 노동자의 사회”로 규정한다. 일 외에는 모르는 사람들이 일을 잃었을 때 찾아오는 고통은 단순히 경제적 어려움에 그치지 않는다. 노동이 곧 자존심이 된 사회에서 노동을 잃는 것은 곧 삶의 의미를 잃는 것과 같다.
삶의 가치를 스스로 찾지 못하는 사람들은 기댈 대상을 찾기 마련이다. 1차 세계대전 당시 유럽의 젊은이들이 전쟁 소식에 열광했던 이유도 이와 같다. 전쟁은 그들에게 일상의 비루함을 벗어나 삶의 목적을 제공하는 수단이었다. 독재자가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이유 역시 마찬가지다. 삶의 목적을 제시해주는 누군가의 확신에 사람들은 쉽게 매료된다. 하지만 이는 자신의 삶을 타인의 목적을 위해 내어주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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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아렌트는 “생각하지 않는 것이 인생의 가장 큰 죄”라고 말했다. 현대인은 텔레비전, 인터넷, 스마트폰 등으로 가득 찬 세상에서 생각할 시간을 잃어가고 있다. 노예에게 노동 없는 시간이 고통이듯, 현대인은 여유를 두려워하며 끊임없이 무언가에 몰두한다. 돈에 매달리는 현대인의 삶이 과연 노예의 삶과 얼마나 다를까.
자본주의가 인간의 욕망을 자극하며 성장해왔지만, 인간다운 삶은 단순히 돈을 많이 버는 데 있지 않다. 인간다운 삶은 여유와 깊은 성찰, 그리고 타인과의 정에서 비롯된다. 돈은 삶의 도구일 뿐, 목적이 될 수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돈이 아니라, 인간다운 삶을 꾸리는 데 필요한 지혜와 용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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