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을 찾아가는 50년....강간범으로 억울하게 살아온 삶조작된 증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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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원섭 씨는 1972년 강원도 춘천에서 발생한 사건으로 억울한 누명을 쓰고 15년간 옥고를 치렀으며, 그의 이야기는 영화 '7번방의 선물'의 모티브가 되었다. 그의 사진은 아래와 같은 출처에서 확인하실 수 있다 |
만화가게 주인과 주변 인물들의 증언이 핵심적인 역할을 했으나, 그 증언은 대부분 신빙성이 결여된 상태였다. 만화가게 여종업원은 사건과 관련된 증거를 제시했지만, 이는 경찰의 압박에 의해 조작된 것으로 나타났다. 옆집 아줌마와 같은 다른 증인들은 경찰의 설득에 의해 진술을 바꿨고, 이는 정원섭 씨를 범인으로 몰아가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 결과 정원섭 씨는 가족과 함께 커다란 고통을 겪게 되었다. 그는 사건을 부인하며 억울함을 호소했으나, 경찰과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정원섭 씨의 재판 과정은 더욱 기이한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변호사는 사건의 문제점을 제기하며 경찰 수사의 비합리성을 지적했으나, 이는 묵살되었다.
경찰은 정원섭 씨를 체포한 뒤 고문을 가하며 자백을 강요했고, 그는 결국 강요된 진술을 토대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후 15년 2개월간의 교도소 생활은 그의 삶을 완전히 뒤바꾸어 놓았다. 그는 모범수로 인정받아 성탄절 특사로 조기 석방되었지만, 그동안의 고통과 상처는 쉽게 치유될 수 없었다. 출소 후 그는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변호사들과 협력하며 재심을 준비했다. 1999년, 재심을 준비하던 과정에서 충격적인 사실이 밝혀졌다.
당시 증언을 했던 소녀들이 경찰의 협박에 의해 허위 진술을 했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이들은 성폭행을 당했다고 진술하지 않으면 집에 돌아갈 수 없다는 협박을 받았고, 결국 거짓 증언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양심의 가책을 느낀 이들은 진술을 번복하며 사건의 진실을 밝히고자 했다.
이 과정에서 위증 혐의로 구속된 인물도 있었지만, 이들의 노력은 결국 정원섭 씨의 무죄를 밝히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재심 청구는 2008년에야 받아들여졌고, 긴 법정 공방 끝에 정원섭 씨는 마침내 무죄 판결을 받을 수 있었다.
법원은 그에게 형사 보상금을 지급하도록 판결했으나, 이 또한 쉽지 않은 과정이었다. 보상금 지급이 국가의 재정 문제로 여러 번 나뉘어 지급되었고, 정원섭 씨는 생활고에 시달리며 빚을 더해갔다. 이후 그는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으나, 항소심에서 소멸시효 문제가 발생하며 배상받지 못했다. 이는 국가 재정 부담을 이유로 한 제도적 변경 때문이었다.
정원섭 씨는 이후 뇌출혈과 치매로 고통받으며 과거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는 억울함 속에서도 삶을 이어가며 자신과 비슷한 피해자들이 더 이상 발생하지 않기를 바랐다. 그의 이야기는 한 개인의 고통을 넘어 한국 사회의 법과 정의, 그리고 사법제도의 문제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이번 사건을 다룬 책과 방송은 그 과정에서 드러난 진실과 고통을 대중에게 알리며,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성찰을 촉구했다. 정원섭 씨의 억울한 50년은 단순히 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반드시 기억하고 교훈으로 삼아야 할 역사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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