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7대도시에서 사라진 도시..마산, 삼천포, 충무: 사라진 이름에 담긴 역사와 상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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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산시는 2010년 창원시와 진해시와의 통합으로 현재 창원시의 마산합포구와 마산회원구로 재편되었다. 이전의 마산시를 담은 사진들은 당시의 도시 풍경과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다. |
특히 마산시는 경상남도를 대표하는 도시로 성장했으나, 창원시의 급격한 발전과 섬유 산업의 쇠퇴로 인해 쇠퇴했다. 마산은 과거 부산과 함께 경상남도를 대표하는 도시로, 경상도 지역에서 부산과 대구를 제외하고 가장 큰 도시였다. 제1호 수출 자유 지역으로 지정된 마산은 국내 단일 기업 최초로 1억 달러 수출탑을 세운 섬유 업체가 있었고, 많은 젊은 인구가 몰렸다.
1899년 마산항이 개항장으로 지정된 이후 조선과 일본을 오가는 사람들과 물자가 북적이는 항구 도시로 성장했으며, 일제강점기에는 인구 54,000명을 기록하며 경남 도청 소재인 진주시의 인구를 초과하는 높은 성장을 이뤘다. 그러나 2010년 통합창원시가 출범하며 마산시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고, 창원시가 50만, 마산시가 40만, 진해시가 20만의 인구를 기록한 채 통합되었다.
마산시의 쇠퇴 원인 중 하나는 창원시의 급격한 성장이다. 창원시는 1970년대 중화학 공업을 육성하기 위해 개발된 신흥 공업 도시로, 쾌적한 주거환경과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며 주변 도시에서 인구를 폭발적으로 유입했다. 또 다른 원인은 섬유 공업의 몰락이었다.
과거 마산시는 한일합섬 덕분에 경제적으로 큰 영향을 받았으나, 1990년대 이후 섬유 공업의 쇠퇴와 1998년 IMF 외환 위기로 한일합섬이 파산하며 성장 동력을 잃었다.
통합 과정에서 마산은 창원군에 속했던 마산포에서 시작해 일제강점기 창원부로 개칭되며 처음 행정 구역으로 사용된 지명을 다시 되찾았다. 해방 이후 마산부에서 마산시로 승격된 마산은 창원군, 의창군, 진해시로 분리된 뒤 다시 통합되었다. 현재 마산의 이름은 창원시 산하의 마산 회원구와 마산 합포구로 남아 있으며, 이는 창원시 발전의 근간이 된 마산의 상징성을 나타낸다.
마산 외에도 삼천포시, 충무시, 익산시 등 여러 도시가 통합과정을 거치며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삼천포시는 어획량이 풍부하고 청정 해역으로 유명한 어항으로, 고려 성종 시대에 요새에서 수송된 쌀을 보관하는 홍양 창을 중심으로 조성된 마을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나 삼천포시는 1995년 사천군과 통합되어 사천시가 출범하며 역사적 이름을 잃었다. 충무시는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과 관련된 지역명으로, 1995년 충무시와 통영군의 통합으로 사라졌다. 과거 충무시는 면적이 작지만 역사적 상징성이 높은 도시였으며, 현재 통영시로 통합된 이후에도 충무의 이름은 일부 지명에 남아 있다.
익산시는 과거 위시로 알려진 철도의 중심 도시로, 호남선, 전라선, 군산선이 교차하며 발전했다. 1947년 익산군에서 분리된 익산시는 1995년 시군 통합으로 다시 익산시로 통합되었다.
문경시는 과거 영남대로 중심 도시로, 조선시대까지 많은 인구를 보유했으나, 고속도로 발달로 교통 중심지 기능을 잃으며 도시의 위상이 크게 저하됐다. 현재 문경시는 기초자치단체 중 인구가 적은 편이며, 과거의 점촌시와 통합되면서 새로운 역사를 시작했다.
온양시는 과거 온양 온천으로 유명했으며, 1995년 아산시와 통합되었다. 현재도 온양 온천역과 온양 고속버스 터미널 등 온양이라는 명칭은 아산시 내에 남아 있다. 남양주시는 과거 미금시와 통합된 도시로, 짧은 기간 동안 존재했던 미금시는 구리시와의 통합을 고려했으나 남양주시와의 통합이 이루어졌다. 광양시는 과거 동광양시와 광양군으로 나뉘어 있었으며, 현재 광양시로 통합된 이후 동광양 지역이 주요 개발 중심지가 되었다.
도시 통합 과정에서 과거 중심지 역할을 하던 읍이나 군 지역의 명칭이 통합된 뒤에도 사용된 사례가 많다. 이는 지역 대표성을 높이고, 과거 도시의 정체성을 계승하기 위함이다. 예를 들어 장승포시는 대우 조선소 건설 이후 시로 승격되었으나, 6년 만에 거제시와 통합되며 과거 지명을 잃었다.
대부분의 통합 사례에서 군 지역이 더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었기에 군 지역명을 사용한 경우가 많다. 또한, 중심지가 분리된 뒤 다시 통합될 때 과거 명칭으로 돌아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분석된다. 이러한 통합 과정은 도시의 역사적 상징성을 보존하면서도 행정적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방안으로 이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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