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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평화의 기술, 그리고 삶에 대한 통찰

전태수 기자 | 기사입력 2024/12/24 [08:46]

전쟁과 평화의 기술, 그리고 삶에 대한 통찰

전태수 기자 | 입력 : 2024/12/24 [08:46]

“평화는 군인의 무덤이다.” 제2차 세계대전의 영웅인 조지 패튼 장군의 이 말은 전쟁의 현실을 극적으로 묘사한다. 이와 달리 몽고메리 장군은 “패튼의 존재로 적들은 반드시 패배하지만, 나 몽고메리가 있는 한 적들은 전쟁을 시작할 생각조차 하지 못할 것이다”라며 다른 관점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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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지 스미스 패튼 주니어(George Smith Patton Jr., 1885년 11월 11일~1945년 12월 21일)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미국 육군의 장군으로, 기갑 부대를 이끌며 뛰어난 전과를 올린 명장으로 알려져 있다.패튼 장군은 미국 남부의 부유한 군인 가문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군인의 길을 꿈꿨습니다. 1909년 미국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후, 제1차 세계 대전과 제2차 세계 대전에 참전하여 두각을 나타냈다. 특히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북아프리카와 유럽 전선에서 기갑 부대를 지휘하며 신속한 기동전으로 유명해졌다    

 

두 장군의 상반된 태도는 전쟁과 평화에 대한 깊은 통찰을 불러일으킨다. 그중에서도 손자병법에 나오는 문장은 이 논쟁에 무게를 더한다. “최상의 승리는 적이 전쟁을 일으킬 생각조차 못하게 하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군사 전략을 넘어 외교적 노력으로 적의 힘을 약화시키고 전쟁을 방지하는 지혜를 강조한다.

 

전쟁의 무게를 논하는 데 있어 손자병법은 날카로운 경고를 던진다. “10만 명의 군사를 천 리 밖으로 보내는 데 하루에 천 금이 든다.” 이는 단순히 전쟁 비용만을 뜻하지 않는다. 도로를 오가는 물류의 혼란, 농사에 지장을 받는 백성들, 무너지는 경제 구조를 고려하면 전쟁은 국가와 백성 모두에게 치명적이다. 따라서 전쟁을 피하려는 노력은 당연하다.

 

그러나 전쟁이 불가피하다면 반드시 승리해야 하며, 이를 위해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아야 한다고 한다. 마오쩌둥은 “전쟁에서 예의를 차리는 것은 멧돼지에게 인의도덕을 말하는 것과 같다”고 일축했다. 클라우제비츠 또한 “전쟁은 내 의지를 강요하기 위한 폭력 행위”라며 상대를 완전히 굴복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이처럼 전쟁에서 냉혹함과 전략은 필수적이지만, 승리를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손자병법은 “전쟁에서는 속임수도 마다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과도한 잔혹 행위가 남기는 뒷마무리에 대해 경고한다.

 

전쟁 후 노략질과 분탕질로 적의 마음속에 원망과 미움이 가득 차게 되면 승리를 온전히 지켜내기 어렵다. 이에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의 목적은 상대를 짓밟는 데 있지 않다. 내가 원하는 바를 손에 넣는 데 있다”며, 전쟁은 정치의 연장선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전쟁이 단순한 힘의 대결이 아닌 설득과 전략의 연속임을 말한다.

 

지휘관의 자질 역시 전쟁의 결과를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다. 병사들에게는 육체적 용기가 필수적이라면, 지휘관에게는 정신적 용기가 요구된다. 이는 단순히 무모한 용기가 아니라, 침착하고 냉철하게 판단하며 모든 결과를 책임질 수 있는 태도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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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자병법에서 "현명한 지휘관은 오직 국가에 이익이 있을 때만 전쟁을 벌인다"는 가르침은, 전쟁을 시작하기 전에 그로 인한 이익과 손실을 신중하게 고려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러한 철학은 불필요한 분쟁을 피하고, 국가와 국민의 안위를 최우선으로 삼는 지혜를 강조합니다.이러한 가르침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이미지를 찾는다면, 손자병법의 명언이나 전쟁과 평화에 대한 고대 중국의 예술 작품, 또는 손자병법의 내용을 담은 서예 작품 등을 고려해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손자병법의 한 구절이 적힌 두루마리나, 전쟁을 신중하게 계획하는 지휘관의 모습을 그린 동양화 등이 해당될 수 있다.    

 

손자병법 역시 “현명한 지휘관은 오직 국가에 이익이 있을 때만 전쟁을 벌인다”고 가르친다. 이익이 없는 다툼은 곧바로 중단해야 한다는 신중함의 철학이다.

 

현대는 무한 경쟁 시대다. 세상은 전쟁터와 다를 바 없으며, “전략”과 “전술” 같은 단어가 일상에서 흔히 쓰인다. 하지만 전쟁의 기술이 삶에 무조건적으로 적용될 수 있을까? 이탈리아의 사상가 마키아벨리는 이에 의문을 제기하며 “병법을 일상에 끌어들인다면 삶은 지옥이 될 것이다”고 경고했다. 전쟁은 결국 상대의 약점을 파고드는 기술이다.

 

뛰어난 지휘관은 상대의 약한 고리를 정확히 짚어내며, 이를 통해 자신의 목표를 달성한다. 그러나 일상에서 이를 모방한다면 관계와 신뢰를 파괴하며 지치고 고립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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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디가 단식 투쟁을 벌이는 동안의 사진으로, 그의 비폭력 저항 운동의 일환으로 단식을 활용한 모습을 담고 있다.    

 

전쟁의 기술이 아닌 평화의 기술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간디의 사례에서 명확히 드러난다. 윈스턴 처칠이 간디를 “벌거벗은 거지 승려”라며 조롱했지만, 결국 영국은 간디를 이길 수 없었다. 간디는 비폭력과 사랑으로 영국의 폭력에 맞섰으며, 상대를 공격하기보다는 부끄럽게 만들며 승리를 거두었다.

 

전쟁에서 영원한 승리자는 없다. 힘이 약해지고 지치면 또 다른 경쟁자가 나타나 승리를 빼앗아 갈 것이다. 정글에서도 영원한 강자가 없듯이, 전쟁 같은 삶에서는 누구도 행복할 수 없다.

 

 

결국, 전쟁의 기술을 넘어선 평화의 기술이야말로 진정한 승리를 가져온다. 날로 전쟁터처럼 변해가는 세상에서, 우리 모두가 승리자가 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상대를 짓밟는 기술이 아닌,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찾는 기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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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기후변화 발행인
내외신문 대표 기자
금융감독원, 공수처 출입기자
사단법인 환경과미래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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