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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이야기] 졸업식

강샘 | 기사입력 2010/10/26 [10:20]

[대학 이야기] 졸업식

강샘 | 입력 : 2010/10/26 [10:20]

[대학 이야기] 졸업식?

먼저 졸업식 이야기부터 시작합니다.

순서를 좀 바꾸어 다음에 학교 다니면서 겪은 이야기들을 이어가겠습니다.

강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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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식을 하는 날이다. 아침 열시에 예행연습이 있어 준비를 하고 집을 나왔다. 엘리베이터가 고장이 나 아파트 수리인 들의 도움으로 힘겹게 내려와 보니 아홉시 반이다. 버스로 갈 수 있는 시간이 되지를 않는다. 나는 그들에게 차에 태워 달라고 부탁을 했다. 아파트 메니저의 승낙을 받은 그네들은 휠체어를 싣고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학교를 향했다.

학교에 도착하니 9시 오십 오분, 나는 급히 휠체어를 몰아 연습장 안에 들어섰다. 친구들과 만나 잠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모두들 다소 흥분해 있었다. 곧 예행 연습이 시작됐다. 행사 진행 순서와 주의 사항등을 듣고 우리는 졸업식장으로 정해진 학교 햄버거 빌딩(천체학 수강실 햄버거와 비슷해서 우리는 이렇게 부른다.) 앞 잔디밭으로 모였다. 저녁에 진행될 순서를 주요 부분만 연습했다.

?안내자가 행진 시에 내가 선두라고 지정해 주었다. 처음하는 졸업에 내가 선두가 되다니... 적잖이 부담이 된다. 다른 애들이야 대학은 아니라도 초중고등학교에서 익숙해 있을 테고 또한 미국 문화에 익숙해 있어 부담이 덜할 텐데 하필 외국에서 온 장애인인 나를 선두로 내 보내다니... 행진의 속도며 이름이 적힌 쪽지를 단상에 오르며 교수에게 건네 주는 것이나 내려오면서 표를 전해 주는 것 등이 부담이 되었으나 분위기 상으로 거절할 입장도 아니다.

안내를 맡은 교직원이 좌석 배치 카드, 이름표, 주소 쪽지가 바뀌면 큰일난다고 엄포를 놓았다. 뒤 따라 간다면 남들에 건네 주는 것을 보면서 나도 똑 같은 것을 주면 되거나 속도 등도 앞사람의 보조에 맞추면 되지만 앞서가면서 실수하면 큰일이다 싶어서 더더욱 부담된다.

긴 예행연습에 학생들은 햇빛 때문에 쓰러지겠다며 불평을 했다. 오늘 저녁 졸업식을 마치고 깜짝 놀랄 리셉션이 있을 거라는 말을 끝으로 예행 연습은 끝이 났다.

연습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아내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점심을 먹고 잠시 휴식을 취한 후에 다시 학교로 향했다. 행사가 시작되기에는 아직 시간이 넉넉해 학교 안을 여기저기 돌아 다녔다. 도서관, 교정, 카페테리아... 학교에서만 가질 수 있는 휠체어 바퀴에 전해 오는 독특한 느낌을 전해 받으며 만감에 사로잡힌다. 이제 오늘이 이 학교의 정식 학생으로서의 마지막 날인 것이다. 앞으로도 성적 증명서며, 친구들을 보기 위해 몇 차례 올 일이 있기는 하겠지만 그때는 학생 신분이 아니기 때문에 손님이라는 느낌 밖에는 들지 않을 것이다.

친구의 도움으로 졸업 가운을 입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졸업 가운 하나만 걸치는데 나는 장학생 그룹의 노란 띠를 두르고 또한 졸업생에게 최고의 영예인 student distinguished honor를 표시하는 노란색과 파란 색의 얇은 밧줄 두 개를 목에 걸었다. 시간이 되어 행진의 출발지인 강당으로 들어갔다. 졸업생들이 속속 들어오고 있었다. 머지 않아 강당 졸업생들로 가득 찼다. 졸업 모자가 불안해 화장실로 가 보았다.

학사모 쓴 모습이 영 어울리지를 않는다. 몇 번을 만져 보았지만 이상하긴 마찬 가지였다. 제대로 보이기는 어차피 틀렸다는 생각에 포기하고 나오는 데 모자가 벗겨져 버렸다. 화장실을 나와 친구의 도움으로 다시 쓰고는 더 이상 손대지 않았다. 갑자기 쪽지의 순서가 전혀 생각나지 않는다. 나는 어이가 없었다.

시험 문제로 보자면 세 개가 나열된 줄로 연결되는 간단한 문제인데 그걸 잊다니... 옆에 않은 친구에서 순서를 물었다. 잠시 나를 쳐다보는 눈빛이 '너 최고 성적으로 졸업하는 학생 맞아' 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그가 친절하게 가르쳐 주었으나 잠시 후에 또 잊어버렸다. 더 이상 물어 볼 수가 없어서 포기해 버렸다. 이런 머리로 어떻게 공부를 했는지... 아내와 모젤이 올라온다. 잠시 함께 사진을 찍고 졸업생 외에는 나가 달라는 요구가 있어 아내와 아들은 내려갔다.

행진 시각이 되어 내려와 보니 총장과 교수들이 줄을 서고 있었다. 총장을 비롯한 대부분의 교수들과 가까이 지냈기 때문에 내게 각별한 눈빛을 보내고 있다. 축하와 함께 아쉬움이 담긴... 그들에게 보내는 나의 눈빛도 그랬으리라. 졸업은 시원섭섭하다고 말들 하는데 시원한 것보다는 서운한 쪽이 월등히 크다.

10여 분 동안 기다렸을까, 곳 안내자의 수신호에 따라 행진이 시작됐다. 총장과 교수들이 앞서가고 곧 학생들이 뒤따랐다. 바리케이트로 밖의 학생의 가족과 친지들이 목이 터져라고 고함을 질러댄다. 교수들이 양옆으로 나란히 갈라져 서고 그 뒤로 학생들이 교수의 인사를 받으며 계속 앞을 향해 걸어간다.

입장을 모두 마치고 모두 자리에 앉자 식이 시작됐다. 식이 진행되는 동안 아는 내 목에 걸려 앞으로 늘어져 있는 장학생 노란 띠와 작은 밧줄을 다시 한번 내려다보았다. 올해에는 다른 해에 비해 졸업생 수가 월등히 많다. 천명이 넘는 졸업생 중에 전 학기 동안 한번도 4.0 만점에 3.7 이하로 떨어지지 않은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상이다. 보통 8명 정도가 나오지만 평소보다 세배나 많은 졸업생을 배출하기 때문에 올해는 34명에게 주어진다. 그 중에서도 내 편입과정 성적은 4.0 만점으로 공동 수석이다. 얼마나 간절한 바램이었던가. 이것 하나를 걸치기 위해 쏟은 열정은 또 얼마나 지독한 것이었나. 그 지독한 열심에 하나님은 내 목에 이 영예를 걸어 주신 것이다. 제일 앞자리에 앉아 상을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도 보고 계실 것이다. 아버지, 드디어 해냈습니다. 그렇게 바라시던 최우수 졸업과 미 명문대 합격을 이루었습니다.

기쁘시죠  이 자리에 함께 계셨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이 졸업식을 가장 보여드리고 싶었던 분들은 부모님이었는데 어머니는 연로하신 몸을 이끌고 아들을 보러 태평양을 건너 오셨지만 아버지께서는 끝내 조금을 못 기다리고 하늘나라에 먼저 가셨습니다. 그래요. 이 세상에서는 보시지 못하지만 하늘 나라에서 마음껏 기뻐하세요.

드디어 president distinguished honor 시상식이 시작되었다. 내 이름을 호명했을 때 사람들의 환호성이 터졌다. 박수와 환호를 받으며 천천히 단상에 올라 총장님으로부터 상장을 건네 받았다. "축하해요." 상장을 건네 주며 보여주는 총장님의 미소에는 남다른 따뜻함이 담겨 있었다. 학교에 다니는 동안 총장으로부터 수여되는 학업 우수상은 한번도 거름 없이 받았고 횟수가 더해갈수록 느껴지는 정감도 더해갔다.

총장님으로부터 받는 마지막 상을 받았다. 실로 짜릿한 감동이었다. 휠체어를 굴려 단을 내려오는 동안 박수와 환호는 계속됐다. 잠시 교수석과 관중석을 둘러보았다. 외국에서 온 이방인의 고된 인내 끝에 얻은 단 열매에 보내 주는 저 따뜻하고, 나 못지 않게 감격스러워하는 저들의 표정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울퉁불퉁한 잔디밭을 천천히 지나와 내 자리에 돌아오는 동안 주체하기 어려운 감동에 소리라도 질러보고 싶었지만 꾹 참고 내 자리로 돌아와 휠체어를 세웠다. 뒤와 옆에서 친구들이 축하한다는 말을 계속했다. 몇 번씩이나 눈물이 터지려는 것을 억제했다.

머지않아 졸업증서 수여식이 시작되었다. 수여식을 알리는 사회자의 말이 끝나자마자 첫 번째로 천천히 단에 올라갔다. 졸업증서를 받고 총장님과 악수를 하고 표들을 전해 주는 일들을 착오 없이 진행했다. 내 자리에 돌아와 앉자 조금 전의 감동들은 어느새 사라지고 갑자기 말로 표현하기 힘든 허탈감과 아쉬움 같은 감정들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그래, 이제 이 학교 학생으로서의 마지막 시간이지. 저 정든 얼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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