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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군대, 교도소는 왜 닮은꼴인가?

학교와 근대적 규율

군대와 규율의 표준화

감옥과 교정의 철학

전용욱 기자 | 기사입력 2024/12/06 [10:24]

학교, 군대, 교도소는 왜 닮은꼴인가?

학교와 근대적 규율

군대와 규율의 표준화

감옥과 교정의 철학

전용욱 기자 | 입력 : 2024/12/06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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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오픈아카이브에서는 개설 17년 만에 최초로 공개된 청송교도소 내 독거실 사진을 제공    

 

학교, 군대, 교도소는 언뜻 보면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진 조직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세 조직은 사람을 체계적으로 길들이고 표준화하는 근대 문명의 특징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닮아 있다.

 

이러한 유사성은 미셸 푸코 같은 철학자가 근대 문명의 작동 원리를 분석할 때 중요한 사례로 활용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이들 조직은 각각 다른 방식으로 사람들을 규율하고 사회의 틀 안에서 기능하도록 만든다. 그 과정에서 규칙과 규율, 그리고 체계적 훈련이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조선 말기, 서양 문물이 들어오면서 체조는 문명개화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당시 고종이 학생들에게 체조를 배워 더 열심히 노력하라며 부채를 선물했다는 일화는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체조는 단순히 신체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운동이 아니라, 규칙적인 움직임을 통해 개인을 길들이는 수단이었다. 서양에서는 이미 체조가 군사 훈련의 기초로 자리 잡고 있었으며, 이러한 훈련 방식은 사람들을 표준화하고 체계적으로 통제하는 근대적 사고의 연장선에 있었다.

 

조선은 서양 열강과의 경쟁 속에서 국력을 키우기 위해 체조를 비롯한 근대적 훈련을 적극 도입했다. 이는 학교의 체계에도 깊이 영향을 미쳤다. 학교는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공간이 아니라, 학생들을 길들이고 사회의 요구에 맞게 표준화된 인재로 만드는 장치로 작동했다.

 

학교에서의 모든 활동은 시간표에 따라 엄격히 진행되었으며, 학생들은 정해진 규율과 목표에 따라 행동해야 했다. 예컨대 복장과 두발 규정, 정해진 자세와 태도를 요구하는 규율은 군대나 감옥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군대는 근대 문명의 또 다른 중요한 조직이다. 과거 전쟁에서는 뛰어난 장수나 용맹한 기사들이 전쟁의 승패를 좌우했다. 하지만 근대 전쟁은 다르다. 개인의 능력보다는 조직의 효율성과 체계적 훈련이 중요한 시대가 된 것이다. 군대에서는 신병이 입대하면 앉고 서는 법부터 총을 쥐는 법, 경례하는 방식까지 모든 행동을 표준화된 방식으로 훈련받는다. 군인은 더 이상 자신의 방식대로 싸우는 영웅이 아니라, 규칙에 따라 행동하는 체계적 구성원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체조와 같은 훈련 방식은 군사 훈련의 핵심이 되었다. 체조는 동작 하나하나를 나누어 세세하게 고쳐 나가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는 군대의 훈련 방식과 동일하다. 군인들은 체계적으로 길들여지고 표준화된 행동을 익혀야만 조직의 일원이 될 수 있다.

 

훈련소에서 이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끝없이 훈련을 반복해야 한다. 이러한 방식은 단순히 군사력을 강화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근대적 사고방식을 개인에게 내재화시키는 역할을 했다.

 

감옥 역시 근대 문명을 상징하는 대표적 조직이다. 전통적으로 감옥은 처벌과 복수의 공간이었다. 죄를 지은 사람은 호되게 벌을 받고, 때로는 죽음을 통해 죗값을 치렀다. 하지만 근대 사회에서 감옥의 목적은 복수에서 교정으로 바뀌었다. 죄인을 단순히 벌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길들여 착하고 생산적인 시민으로 만드는 것이 감옥의 목표가 되었다.

 

이 과정에서 감옥은 군대와 비슷한 방식으로 작동했다. 죄수들은 시간표에 따라 규칙적으로 생활하며, 세세한 행동 하나까지도 통제받는다. 이와 같은 체계는 사람들을 규율하고 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 존재로 변화시키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푸코는 이를 통해 근대적 권력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분석했다. 그는 국가가 죄인을 벌하는 방식이 단순히 물리적 폭력에서 심리적 통제와 규율로 바뀌었다고 지적했다. 이런 변화는 감옥뿐만 아니라 학교와 군대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학교, 군대, 감옥은 모두 시간표에 따라 엄격하게 운영된다. 이들은 사람들을 체계적으로 길들이고 표준화된 방식으로 행동하도록 만드는 데 주력한다.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학업 성취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특별 교육을 받는 것처럼, 군대에서는 규율에 어긋나는 행동을 한 군인들이 반복 훈련을 받는다. 감옥에서도 죄수들은 규율에 따라 행동하며 교정 프로그램을 통해 변화해야 한다.

 

이 세 조직은 모두 사람들을 규율하는 방식에서 비슷한 구조를 가진다. 학교는 군대와 감옥의 혼합형태라고 볼 수 있다. 담장으로 둘러싸인 학교는 외형적으로 감옥과 닮았으며, 교실은 감방을 연상시킨다. 다만, 교사는 간수가 아니라 학생들을 보호하고 교육하는 역할을 맡는다. 하지만 교사가 학생들을 통제하고 관리하는 점에서 감옥과 크게 다르지 않다. 또한, 학생들이 정해진 규칙과 시간표에 따라 생활해야 한다는 점은 군대와 유사하다.

 

근대적 사고방식은 사람들을 길들이고 표준화된 인재로 만드는 데 초점을 맞췄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은 오늘날 한계에 봉착했다. 과거에는 학교에서 길들여진 학생들이 밝은 미래를 기대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규칙에 잘 적응했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일자리가 보장되지는 않는다. 이는 식민지 시대 조선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났던 문제다. 당시 고등교육을 받은 많은 엘리트들이 실업자로 남았으며, 지금도 대학 졸업자들이 같은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과거 위인전에서 강조되던 인물들은 오랜 인격 수양을 통해 조직에 충성하는 자세를 갖춘 이들이었다. 하지만 현대의 위인들은 창의성과 독창성을 지닌 인물로 바뀌었다. 이는 시대가 변하면서 바라는 인재상이 달라졌음을 보여준다. 이제 학교는 더 이상 군대나 감옥의 모델을 따라가기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

 

현대 사회는 표준화된 삶에서 벗어난 자유를 추구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그 자유를 버거워한다. 에리히 프롬은 자신의 저서 자유로부터의 도피에서 사람들이 자유를 두려워하고 스스로를 규율의 틀 안에 가두는 경향을 지적했다. 이는 학교, 군대, 감옥과 같은 근대적 조직에서 길들여진 사람들이 자유를 제대로 누릴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자유를 얻은 은퇴자들이 삶의 공허함을 느끼는 것도 같은 이유다. 그들은 조직에서 벗어난 자유를 누리기보다는 오히려 불안해하며 이전의 틀을 그리워한다. 이는 근대적 길들이기의 결과로, 사람들은 조직의 규율 안에서만 안정을 느끼도록 조건화되었다. 이러한 상황은 근대적 사고방식이 더 이상 현대 사회에서 유효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결국 학교, 군대, 교도소의 닮은꼴은 단순히 조직 구조의 유사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이는 근대 문명이 사람들을 길들이고 표준화하는 방식의 연장선에 있다. 하지만 오늘날 사회는 더 이상 이러한 표준화된 사고방식으로 해결할 수 없는 새로운 문제들에 직면하고 있다. 이는 학교와 같은 근대적 조직이 본질적으로 변화를 모색해야 함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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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과미래연구소 이사
시민포털지원센터 이사
월간 기후변화 기자
내외신문 전북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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