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없는 나라 볼리비아, 해군을 유지하는 이유태평양을 잃은 나라, 티티카카 호수에서 해군을 꿈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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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리비아는 남미의 안데스 산맥에 위치해 풍부한 자원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정치적 불안정과 외교적 실패로 인해 주변국에 많은 영토를 빼앗겼다. 19세기 초 독립 당시 볼리비아는 아타카마 사막에 위치한 비료 자원 우아노와 같은 막대한 자원을 바탕으로 농업과 산업 발전의 기회를 누릴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그러나 독립 이후 볼리비아는 주변국들과의 전쟁에서 패배를 거듭하며 아타카마 사막과 그곳에 연결된 태평양 연안을 포함한 중요한 영토를 상실했다. 특히, 1879년 발발한 태평양 전쟁은 볼리비아에게 치명적이었다. 이 전쟁으로 인해 볼리비아는 칠레에 안토파가스타 지역을 빼앗기며 바다로의 유일한 출구를 잃었다. 이후 경제적 어려움과 정치적 혼란이 이어졌고, 볼리비아는 세계에서 바다가 없는 내륙국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볼리비아의 해군 유지에는 상징적 의미가 크다. 매년 3월 23일을 ‘바다의 날’로 지정해 태평양 연안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고, 잃어버린 영토를 되찾겠다는 의지를 다지고 있다. 이러한 해군의 존재는 단순히 군사력 과시가 아니라, 국가 정체성과 주권 회복을 위한 지속적인 상징적 행위라 할 수 있다. 티티카카 호수에 주둔 중인 해군은 전략적으로 큰 의미를 갖고 있지 않지만, 이는 볼리비아 국민들에게 국가적 자부심을 일깨우고, 국제사회에 볼리비아의 역사적 상처를 알리는 역할을 하고 있다.
볼리비아의 독립 과정과 자원 개발 역사도 해군 유지의 배경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요소다. 볼리비아는 19세기 독립 이후 은, 주석, 아연, 구리 등 안데스 산맥에 풍부하게 매장된 자원 덕분에 경제적 잠재력이 컸다.
특히, 아타카마 사막의 우아노는 질소 비료와 화약의 주요 원료로 사용되며 농업과 산업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중요한 자원이었다. 하지만 독립 이후 볼리비아는 내부적인 정치적 혼란과 외교적 실책으로 인해 자원 개발의 기회를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 19세기 중반 볼리비아는 칠레와 협약을 맺어 안토파가스타 지역의 자원을 개발하려 했으나, 협약 위반으로 갈등이 발생하며 전쟁으로 이어졌다.
이 전쟁의 결과로 태평양 연안을 상실한 볼리비아는 이후 경제적 어려움 속에서 자원 개발 전략과 외교 정책을 제대로 수립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영토와 자원을 잃게 된다.
볼리비아의 정치적 불안정은 독립 이후 더욱 심화되었다. 정권 교체가 잦았고, 국가는 해외 자본에 의존하며 자체적인 경제 기반을 마련하지 못했다. 이는 브라질과의 협약에서도 드러난다. 볼리비아는 아크레 지역의 고무 자원을 개발하려 했으나, 결국 브라질과의 분쟁 끝에 1903년 페트로폴리스 조약을 통해 이 지역을 포기해야 했다.
또한, 1932년 발발한 차코 전쟁에서도 볼리비아는 거의 70%의 영토를 파라과이에 내주며 더 이상 바다와 연결될 가능성을 상실했다. 이러한 연이은 패배와 영토 상실은 오늘날 볼리비아를 남미 최빈국 중 하나로 만드는 요인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볼리비아는 해군을 유지하며 태평양으로의 접근권을 끊임없이 주장하고 있다. 티티카카 호수의 해군은 실질적인 전투력을 갖추고 있지 않지만, 볼리비아 정부는 이를 통해 국제사회에 메시지를 전달하려 한다. 이는 역사적 비극을 단순히 과거로 묻지 않고, 미래를 위한 외교적 교훈과 전략적 준비로 삼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바다의 날은 그러한 노력의 상징이며, 볼리비아 국민들에게 국가의 결속력을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
볼리비아의 사례는 국력을 유지하고 영토를 지키는 데 있어 중요한 교훈을 제공한다. 강대국과의 외교적 협상에서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준다. 또한, 내부적으로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자립을 이루지 못할 경우, 국제사회에서 국가의 입지가 얼마나 약화될 수 있는지도 명확히 드러낸다. 볼리비아의 해군은 잃어버린 영토를 상징적으로 지키고자 하는 작은 움직임일지 모르지만, 이는 국가 정체성을 재확립하고 주권 회복을 위한 장기적 노력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