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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장국에서 미역국까지 이어진 음식의 문화사

소 피로부터 시작된 건강과 복원의 음식

복어 요리가 남긴 미식과 위험의 역설

산후조리에서 세계로 이어지는 건강 음식

김누리 기자 | 기사입력 2024/11/26 [08:30]

해장국에서 미역국까지 이어진 음식의 문화사

소 피로부터 시작된 건강과 복원의 음식

복어 요리가 남긴 미식과 위험의 역설

산후조리에서 세계로 이어지는 건강 음식

김누리 기자 | 입력 : 2024/11/26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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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짓국이라는 이름이 피의 이미지 때문인지 현재는 잘 쓰이지 않지만, 유명한 청진동 해장국이나 양평 해장국의 주재료가 여전히 선지인 것을 보면 많은 이들이 여전히 속을 풀어주는 음식으로 선짓국을 찾고 있다.    

 

선지와 미역, 복어 등 다양한 재료로 만들어진 음식은 우리 식문화 속에서 깊이 자리 잡고 있다. 그중에서도 선짓국은 오랜 역사를 가진 대표적인 해장국으로, 지금은 가정에서 선짓국을 끓이는 일이 드물지만 과거에는 흔히 선지를 사다가 집에서 해장국을 끓여 먹곤 했다. 1930년대 신문에서도 선짓국 레시피가 '오늘의 요리'로 소개될 정도로 대중적이었다.

 

당시 신문에는 선짓국을 소의 피로 끓인 '우혈탕'이라고 소개하며, 고기와 곱창을 먼저 넣고 파와 후춧가루를 뿌린 뒤, 두부와 선지를 순서대로 넣어 완성하는 방식이 설명되어 있다. 선짓국이라는 이름이 피의 이미지 때문인지 현재는 잘 쓰이지 않지만, 유명한 청진동 해장국이나 양평 해장국의 주재료가 여전히 선지인 것을 보면 많은 이들이 여전히 속을 풀어주는 음식으로 선짓국을 찾고 있다.

 

선지는 짐승의 피로 만든 것으로, 영양이 풍부한 공급원일 뿐만 아니라 예로부터 나쁜 기운을 물리친다는 믿음도 있었다. 고대 주나라의 예법서 <주례>에서도 동물의 피로 제사를 지낸다는 기록이 있어 피를 신성시한 것을 알 수 있다. 선지는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인류의 중요한 식재료이자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흥미로운 점은 선지 음식이 각 나라와 민족의 환경에 따라 다르게 발전했다는 사실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선짓국과 순대에 소와 돼지의 선지를 사용하지만, 중앙아시아의 유목민들은 말의 피를 마셨고, 중국에서는 주로 오리 피로 선지를 만든다.

 

특히 칭기즈칸이 이끄는 몽골군이 광활한 영토를 점령할 수 있었던 비결 중 하나로 선지가 꼽히기도 한다. 몽골군은 장거리 이동 시 말을 이용해 식량으로 피를 얻었고, 말 한 마리에서 얻은 0.5리터의 혈액으로 병사들의 체력을 유지했다. 이는 말의 체력에도 큰 영향을 주지 않아 기동력을 유지할 수 있었고, 요리 도중 불빛으로 적군에게 발각되는 위험도 막을 수 있었다. 이러한 점에서 선지는 '살아 있는 병참 지원'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중국에서는 오리 피로 만든 선지가 두부처럼 만들어져 해장용으로 많이 사용된다. 청나라 때의 의학서 <본초편독>에는 오리 선지두부가 성질이 차갑고 기운을 보충하며 해독 효과가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우리나라의 선짓국과는 다른 형태로 발전한 선지 요리지만, 두 나라 모두 선지를 해장 음식으로 활용한 공통점이 있다.

한편, 복어는 선지와는 다른 양상의 식재료로, 과거와 현재를 관통하며 미식과 위험의 상징으로 자리 잡고 있다. 복어 요리는 맛이 뛰어나지만 독성이 강해 조심스럽게 다뤄야 한다는 점에서 많은 고민과 갈등을 불러일으켰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이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라고 절규한 것처럼, 복어를 먹을 것인가 말 것인가를 두고 수많은 사람들이 망설였다. 중국 송나라 시인 매요신은 복어가 많이 잡히는 계절에는 다른 생선이나 새우는 음식으로 치지도 않았다고 노래했고, 조선 후기 <동국세시기>에서도 복국을 진미로 평가했다.

 

그러나 복어의 치명적인 독성과 금지된 욕망이 오히려 복어 요리를 더 매력적으로 만들었을 가능성도 크다. 일본에서도 복어를 둘러싼 논란이 많았는데,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복어 중독으로 인한 사망자가 많아 복어 섭취를 금지하기도 했다. 복어는 위험과 맛의 경계선에서 계속 사람들의 욕망을 자극하며 미식의 별미로 남아 있다.

 

미역은 선지나 복어와는 다른 차원의 재료로, 한국인의 식문화에서 특히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산후조리 음식으로 대표되는 미역국은 산모에게 약만큼이나 좋은 음식으로 여겨졌고, 조선 왕실에서도 왕비나 공주가 출산한 후 미역국을 먹었다는 기록이 있다.

 

중국의 의학서 <본초강목>에도 미역이 산모에게 좋다는 기록이 있지만, 중국에서는 미역이 귀해서 일반화되지 못했다. 대신 중국의 산모들은 닭고깃국을 먹는 풍습이 있었다. 한국에서는 미역이 풍부하게 생산되고 품질이 좋았기 때문에 미역국이 산후조리 음식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고려와 조선 시대에도 미역은 중요한 교역 품목으로, 중국 사신들에게 선물로 주어지기도 했다.

 

 

 

선짓국, 복어 요리, 그리고 미역국은 각기 다른 역사와 문화를 반영하며 발전해왔다. 선짓국은 나쁜 기운을 물리치고 체력을 보충하는 음식으로, 복어는 금지된 욕망과 맛의 갈등을 상징하는 별미로, 미역은 생명과 건강을 돌보는 음식으로서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러한 음식들은 단순히 맛있는 요리를 넘어 우리의 삶과 역사, 문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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