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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제국의 상징, 나치와 파시즘의 도구로 사용되다

제3제국과 신 로마제국: 히틀러와 무솔리니의 역사적 정당화

로마의 관용과 나치의 배타성: 상징적 차용의 아이러니

로마의 통합 정신, 유럽연합까지 이어지다

전용현 기자 | 기사입력 2024/11/20 [09:05]

로마제국의 상징, 나치와 파시즘의 도구로 사용되다

제3제국과 신 로마제국: 히틀러와 무솔리니의 역사적 정당화

로마의 관용과 나치의 배타성: 상징적 차용의 아이러니

로마의 통합 정신, 유럽연합까지 이어지다

전용현 기자 | 입력 : 2024/11/20 [09:05]

히틀러와 무솔리니가 로마제국을 따라잡으려 한 시도는 단순히 역사적 영감을 넘어서 그들의 이념과 정치적 목표를 정당화하려는 목적에서 비롯됐다. 1939년 5월, 독일의 아돌프 히틀러와 이탈리아의 베니토 무솔리니는 동맹을 맺고 일본과 함께 국제 파시즘 진영을 형성하며 제2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을 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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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픽사베이) 독일 민족의 우월성을 강조하며 고대 로마제국과의 연관성을 내세운 히틀러는 로마제국의 독수리 문양과 나치식 경례를 차용하며 이를 주요 상징으로 활용했다.    

 

히틀러의 폴란드 침공으로 전쟁이 발발하고, 이듬해 이탈리아도 참전하면서 파시즘 대 반파시즘의 구도가 명확해졌다. 이 과정에서 히틀러와 무솔리니가 로마제국을 모델로 삼은 이유는 단순히 고대 제국의 위용을 계승하려는 상징적 목적을 넘어, 자신들의 권력을 정당화하고 대중에게 역사적 연속성을 부여하기 위함이었다.

 

히틀러가 나치를 통해 내세운 ‘제3제국’의 개념은 신성로마제국을 독일인이 세운 제1제국으로 간주한 데에서 출발한다. 독일 민족의 우월성을 강조하며 고대 로마제국과의 연관성을 내세운 히틀러는 로마제국의 독수리 문양과 나치식 경례를 차용하며 이를 주요 상징으로 활용했다.

 

히틀러의 이러한 접근은 단순한 상징적 도용이 아니라, 독일 민족주의를 고대 로마의 영광과 연결해 국제적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의도였다. 한편 무솔리니는 이탈리아의 로마제국 부흥을 앞세워 1936년 에티오피아를 점령한 후 스스로를 ‘신 로마제국’의 건설자로 칭하며 제국주의적 야망을 드러냈다. 

 

로마제국은 유럽의 역사에서 단순한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정치적 정통성과 이상향의 원형으로 자리 잡았다. 5세기 서로마제국의 멸망 이후 1,500년이 지난 현대에도 로마의 영향은 지속되고 있다. 유럽연합의 출범 배경에도 로마제국의 통합 정신이 깔려 있다는 점은 이를 뒷받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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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픽사베이) 나치가 만든 포로수용소 로마와 나치는 유태인들을 탄압한 공통점이 있다.    

 

1957년 유럽경제공동체의 조약이 로마에서 체결된 점, 영국이 유럽 통합에 소극적 태도를 보이는 점, 터키가 유럽연합 가입을 지속적으로 시도하는 점 등은 모두 로마제국이 유럽인들의 무의식에 남긴 흔적이라고 볼 수 있다. 로마는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 즉 그리스 철학과 유대교-기독교 전통이라는 유럽 문명의 두 뿌리를 통합해 전파하며 유럽 문명의 초석을 마련했다.

 

동아시아에서 중국이 이러한 역할을 했다면, 유럽에서는 로마가 이를 수행한 것이다. 로마는 정복한 지역의 문화와 관습에 간섭하지 않고 자치권을 최대한 보장하며, 세금도 많이 걷지 않았다. 이러한 관용과 개방성은 로마가 단순한 정복 국가를 넘어선 진정한 세계국가로 자리 잡게 한 핵심 요인이었다.

 

로마는 속주민을 로마 시민으로 받아들이고 그들에게 정치적 권리를 부여하며, 자국의 원로원 자리까지 개방했다. 이러한 시스템은 속주민들에게 로마에 대한 주인의식을 심어주었고, 결과적으로 제국의 안정과 통합을 강화했다.

 

히틀러와 무솔리니가 이처럼 로마를 모델로 삼은 이유는 로마제국이 유럽에서 가진 상징적 의미와 그들이 추구하는 정치적 목표가 맞닿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치와 파시즘은 로마제국의 관용과 개방성과는 본질적으로 대치되는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로마제국은 정복 지역의 문화를 파괴하거나 자국 문화를 강요하지 않았지만, 나치 독일과 이탈리아는 이와 대조적으로 인종주의와 제국주의적 폭력을 통해 자신들의 이념을 관철하려 했다. 로마제국이 유럽 문명에 남긴 또 다른 중요한 유산은 공공건축물과 도로망, 상하수도 시스템 등 선진적인 사회간접자본이었다.

 

이들 중 일부는 2,000년이 지난 지금도 사용되고 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은 단순히 로마의 중심성을 상징할 뿐만 아니라, 서유럽 대부분과 독일 일부 지역까지 연결하는 광대한 포장도로망을 구축한 로마의 구체적인 업적을 반영한다.

 

로마는 그리스 철학을 받아들여 이를 유럽 전역에 전파하며, 기독교를 승인하고 국교로 삼음으로써 유럽의 종교적 통합을 이끌었다. 이는 로마가 단순히 정복자나 지배자에 그치지 않고, 유럽 문명을 형성하고 확산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음을 보여준다.

 

 

로마의 영향은 단지 과거의 유물로 남은 것이 아니라, 현대 유럽의 통합과 문명적 뿌리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히틀러와 무솔리니는 로마의 상징과 제도를 자신들의 이념에 활용하려 했지만, 그들의 파시즘적 폭력과 배타적 이념은 결국 로마가 유럽 문명에 남긴 유산과 본질적으로 상반되는 것이었다. 로마제국은 단순한 정복 국가를 넘어선 개방적이고 관용적인 세계국가로서 유럽 문명의 초석을 놓았고, 이는 지금도 유럽인의 역사적 정체성과 가치관에 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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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포털 지원센터 대표
내외신문 광주전남 본부장
월간 기후변화 기자
사단법인 환경과미래연구소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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